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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은영

충북도 바이오산업과장

얼마 전 아버지께서 허허 웃으시면서 빛바랜 종이 한 장을 보여주셨다. 바야흐로 1978년 당시 군인이었던 아버지께 전달된 진천중학교 학생의 위문편지였다. 군인아저씨 나라를 잘 지켜줘서 감사하다는 뻔한 이야기였지만 한편으로는 재밌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초등학생, 아니 국민학생이었던 지난 날 강제적으로 위문편지를 썼던 기억도 떠올랐다. 이제 곧 학부모 탈출을 앞둔 고모가 보낸 당시의 위문편지도 자랑삼아 보여주셨다. 가족 모두 다 무엇보다도 그걸 아직도 가지고 계신 아버지도 대단하다고 했다. 좀 더 모아지면 어디 아버지 이름으로 박물관이라도 하나 차려드려야겠다는 농담도 오갔다.

아버지의 추억이 담긴 물건들을 보면서 나도 갑자기 내 추억들이 안녕한지 궁금해졌다. 어린 조카가 종이 가득 차게 '큰이모'라고 적어줬다기보다는 그려준 메모지나 본인이 좋아하는 캐릭터라며 아끼고 아끼다가 준 스티커가 차마 쓰레기통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박스에 담겨 서랍 한 쪽에 자리 잡고 있었다. 또 여행에서 우연히 얻은 나를 절대 닮지 않은 캐리커처와 10년도 넘은 폴라로이드 사진들도 책장 곳곳에 널려있었다. 이제는 쓰지도 않는 깎여보지도 못한 새 연필이나 편지지들도 한무더기고, 내가 좋아하던 가수의 앨범도 이제는 카세트플레이어가 없어 틀지도 못하지만 여전히 내 서랍들을 묵직하게 채우고 있었다. 이사를 여러 번 반복하면서도 그 물건들이 나를 따라오고 있는 걸 보면 내 작은 역사일 텐데 너무 소홀히 했나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최근 라디오를 듣다가 귀가 쫑긋해진 책이 있다. 그 제목은 바로 <내방 여행하는 법>. 그자비에 드 메스트르라는 해외 작가의 작품으로, '세상에서 가장 값싸고 알찬 여행을 위하여'라는 부제가 더 끌렸다. 우리의 요즘 일상을 이야기하나 싶었는데 무려 1794년에 발간된 책이란다. 작가가 금지된 결투를 벌인 죄로 42일 가택연금형을 받게 되면서 집안의 물건들을 되돌아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고 했다. 그 물건이 내게 오게 된 경로나 그 책을 버리지 않고 계속 소장하게 된 이유 등 내 물건의 역사를 담고 있다는 말에 내 희망도서 목록에 바로 올려두었다. 진정한 여행이야말로 새롭고 낯선 것을 '구경'하는 일이 아니라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발견'하여 새롭고 낯설게 보는 일이라고 언급한 라디오 DJ의 말을 듣고 있자니 코로나 때문에 해외여행은커녕 국내도 맘대로 돌아다니지 못한다고 불평하던 나를 머쓱하게 했다. 갑작 예전에 읽었던 신영복 교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나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공항에서 일주일을>도 다시 꺼내보고 싶어졌다.

라디오를 듣고나서 내 방을 둘러보았다. 오랜만에 평소 늘 거기 있어 눈에 띄지 않았던 것들을 하나하나 천천히 들여다보니 그 때 함께했던 사람들, 그 날의 풍경이 펼쳐졌다. 평소에는 눈감고도 오갈 수 있는 익숙한 공간이지만 찬찬히 되돌아보는 그 순간 갑자기 새로운 곳에 온 듯 낯선 기분까지 들었다. 재밌는 시간이었다.

누군가에게는 코로나19 사태로, 또 누군가에게는 휴가철로 가족들이 외출보다는 집안 곳곳을 어슬렁거리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서로에게 잔소리를 건네다 목소리가 커지는 아찔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가면서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이나 본인들 눈에만 보이는 생산적인 활동(?)을 찾아간다. 어머니는 생기를 잃어가던 식물을 되살리는 신공을 보여주셨고, 아버지는 그동안 우리 눈치를 보며 소파 뒤에 숨겨두셨던 대형 액자들과 버릴까말까 고민했던 잡동사니들을 과감히 비워내셨다. 나도 쿠션감을 잃어 앉으면 엉덩이가 아픈 식탁의자를 리폼하겠다고 연 초부터 말만 늘어놓았던 것을 7, 8월 주말을 거쳐 붓질과 타카질로 씨름을 한 끝에 모두 완성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콕'하라는 이야기만 들어도 우울증에 걸리겠다는 친구와의 통화에 얼마 전 찾은 대학 시절 함께 찍은 스티커사진과 편지 이야기를 던졌더니 서로 깔깔거리느라 정신이 없었다. 통화 끝에 친구 역시 서랍여행을 시작했더란다. 나 역시 이번 주말은 내 방 앨범여행으로 결정했다.

우리 모두에게 최고의 여행지는 멀지 않은 곳에 있다. 지금은 집이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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