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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눈이 내린다. 종일 눈이 오락가락했다. 눈이 날리다가 멎었다가 흐린 하늘에 잠깐 여우볕이 났다가. 흩날리는 눈이 쌓이지도 않으면서 괜히 바라보는 사람조차 서성이게 했다. 한 자리에 차분하게 앉아 뭔가 하나에 집중한다는 것이 쉽질 않다.

나는 은근히 눈이 쌓이길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그런 마음으로 수시로 창밖을 기웃거리고 확인을 하며 조바심을 내고 있다. 눈이 쌓이길 바라는 마음을 가져본 일이 언제였던가 기억조차 가물가물하다. 평소라면 눈이 내리면 어쩌지. 길이 미끄러울 텐데, 운전을 해도 괜찮을까? 온통 머릿속이 복잡해졌을 것이다.

눈이 쌓이길 바라고 있는 오늘은 꼭 눈사람을 만들어 볼 생각이다. 그동안 눈이 내리면 눈길을 걸으며 누군가가 만들어 세워 둔 눈사람을 종종 봐 왔다. 다양한 크기에 자유롭게 표현한 이목구비의 장식을 보며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보는 재미가 꽤 있었다. 솔방울이나 나뭇가지로 장식한 눈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회용 용기로 로봇처럼 꾸민 눈사람이 있고, 아이들의 손길이 느껴지는 앙증맞은 눈사람도 종종 보게 된다.

그런 반면 눈을 굴려서 만든 큰 눈덩이 하나 위에 크기가 좀 작은 눈덩이 하나를 올려서 만드는 눈사람 몸통의 형태는 거의 비슷하다. 어쩌면 어렸을 때부터 우리는 자연스럽게 눈사람은 그렇게 생긴 것이라고 알고 살아왔다. 하지만 지난 겨울 눈사람의 형태가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정관념의 틀을 깨게 되는 일이 있었던 것이다.

겨울이 시작되면서 교실 환경을 겨울 분위기로 꾸몄다. 초등학교 2학년과 3학년 한국어 학급 친구들이 모였다.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에서 온 친구들이 함께하는 우리 교실은 늘 축제 분위기다. 더구나 환경을 꾸밀 때는 더 분위기가 고조된다.

작은 손과 다양하고 재미있는 생각들이 모였다. 색종이를 오려 고리를 만들어 늘어뜨리고, 색종이를 접어 눈 꽃송이도 오려서 붙였다. 크리스마스 트리도 접어서 붙이고 선물 상자도 색종이로 접어 장식을 했다. 마치 교실에 따뜻한 꽃밭이 만들어진 것처럼 아늑해졌다. 그때 우즈베키스탄이 고향인 3학년 친구가 눈사람이 필요하다는 제안을 했다. 평소 예술적인 감각이 뛰어난 친구가 이야기를 하자 우리들은 준비하고 있었다는 듯이 모두 눈사람을 만들기 시작했다. 색종이를 원형으로 오려서 눈사람을 만들고 유리창에 붙이기로 했다. 나는 크고 작은 원형 색종이를 책상 위에 펼쳐 놓았다. 우리 친구들은 그 색종이로 저마다의 눈사람을 만들었다. 그리고 표정도 재미있게 표현했다. 그런데, 눈사람의 몸통이 모두 세 개로 이루어져 있는 게 아닌가.

순간 나의 머릿속에 있는, 고정관념 속의 눈사람과 우리 친구들이 만든 눈사람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평소 문화에 관심이 많은 나에겐 이런 순간이 가장 행복한 순간이다. 주말에 있는 성인반 한국어 수업에서도 눈사람 이야기를 꺼냈다. 그러자 러시아가 고향인, 샌드위치와 커피를 매우 좋아하고 수업 시간에 발표를 잘하는 할머니 학생이 앞으로 나와 칠판에 눈사람을 그렸다. 몸통이 두 개인 한국에서 본 눈사람과 러시아에서 늘 만들었던 몸통이 세 개인 눈사람을 같이 그린 것이다. 학생들 모두 한국은 왜 눈사람 몸이 두 개 밖에 없느냐고 물었다. 서로 다르다는 것을 확인하는 귀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이런 게 바로 문화라는 것을 이야기했다. 아울러 문화는 모두 소중한 것이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눈발이 더 굵어졌다. 바람이 불어 눈이 나비떼처럼 날아다닌다. 베란다 안쪽에 있는 칼랑코에도 꽃이 한창이다. 몸통이 두 개인 눈사람과 몸통이 세 개인 눈사람은 내 안에서 춤을 추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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