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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재숙

시인·한국어 강사

'가을에는 단풍이 아름다워요!' 한국의 사계절을 이야기하다가 가을의 문턱에서 자연스럽게 '단풍'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마침 뉴스에서도 설악산에 단풍이 시작되었다고 했다.

한국어 수업 시간에 '단풍'이라는 단어에 물음표가 달렸다. 한 학생이 손을 들고 단풍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이어서 여기저기서 단풍에 대한 해답을 내놓았다. 그리고 서로 의문의 눈빛을 보냈다. 재미있는 풍경이 벌어졌다. 누군가 단풍에 대한 추측을 이야기하면 나머지 학생들이 맞다, 틀리다로 결정을 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정리를 하는 해답이 나왔다.

'선생님, 단풍은 가을에 부는 태풍 아닙니까?' 목소리가 크고 나이가 지긋한 러시아에서 온 남학생의 한 마디에 교실 안이 정리가 되었다. 한국어를 잘하는 편이며 늘 앞자리에 앉는 학생의 말이 그럴듯하게 들렸던지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분위기가 되었다.

나는 교실 분위기에 빙그레 웃었다. 그러자 다시 웅성웅성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전자칠판 위에 두 컷의 나무 사진을 띄워 보여줬다. 먼저 한여름에 찍은 초록 잎이 무성한 튤립나무를 보여주고 이어서 붉게 물든 단풍나무를 보여줬다. 튤립나무에는 별 다른 반응이 없던 학생들이 화려한 빛깔의 단풍나무를 보자 예쁘고 멋지다고 했다. 굳이 따로 설명을 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단풍의 의미를 단박에 알아챘다. 단풍 여행의 경험이 있는 학생들은 자신이 다녀온 곳을 소개하며 자연스럽게 단풍 이야기가 릴레이로 이어졌다.

방금 봤던 튤립나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나만 아픈 손가락 같은 튤립나무를 떠올리고 있었다. 무덥던 여름날에 나는 튤립나무를 잃었다. 학교 교정에 유난히 내가 좋아하는 두 그루의 튤립나무가 있었다. 아주 키가 큰 튤립나무는 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보고 서 있었다. 나는 늘 그 길을 지나다녔고 목을 한껏 젖히고 나무를 올려다보곤 했다. 그리고 대화를 하곤 했다.

튤립나무는 키가 워낙 커서 꽃이 피고 지는 것을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한다. 여느 꽃처럼 눈에 잘 띄는 것도 아니고, 흐드러지게 잎보다 꽃잎이 먼저 피는 것도 아니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다. 튤립나무는 잎이 무성하게 자라고 그 이파리 사이에 연한 주황빛 꽃이 핀다. 튤립 모양의 꽃이 핀다. 이파리에 숨어서 피는 꽃은 은은한 빛을 발산하며 나의 시선을 끌었다. 나는 사계절 튤립나무를 지켰다.

그런데 무덥던 올여름에는 그 나무에게 시련이 닥쳤다. 마주 보고 선 튤립나무 사잇길을 확장하는 공사를 한 것이다. 길을 넓히는 쪽 튤립나무는 뿌리째 뽑혔고 키 큰 몸통은 토막이 났다. 포크레인이 며칠 동안 땅을 파헤치더니 커다란 나무들이 속수무책 자리를 내놓고 사라져갔다.

지금도 그 자리를 지나며 나는 튤립나무를 그리워하고 있다. 외롭게 혼자 남은 튤립나무가 가을이 되니 노르스름하게 물을 들이고 있다.

계수나무도 어느새 고운 빛을 발하고 있다. 해마다 계수나무가 먼저 단풍을 시작하면 주변 숲으로 번져나간다.

학생들은 속리산 단풍을 이야기하며 작년에 갔던 기억을 떠올리기도 했다. 한편 러시아 자작나무를 이야기하고, 카자흐스탄의 노란빛으로 물들었던 나무 이야기로 이어갔다.

오래전 베트남에서 와 과수원을 하던 결혼이민자가 했던 이야기도 어제 일처럼 떠올랐다. 늦가을에 과수원에 있는 나무에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는 것을 보고 절망하고 슬퍼하던 그가 전화를 했다. 큰일이 났다는 것이다. 과수원에 있는 나무가 다 죽는다며 울먹였었다. 더운 날씨의 베트남에서는 볼 수 없었던 풍경, 낙엽이 지는 모습에 놀랐던 것이다.

단풍 뒤에 숨은 이야기가 단풍만큼 다채롭고 풍성하다.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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