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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딸이 옷에 단추가 떨어졌다며 출근길에 놓고 간다. 벌써 불혹인데 친정엄마만 믿는 딸이 마땅치 않다. 공부만 잘하면 된다고 부추기며 키웠으니 모두 내 탓이라는 생각에 단추를 달기로 했다.

장롱에 넣어둔 반짇고리를 꺼냈다. 얼마만의 바느질인가. 시집올 때 해온 색동반짇고리가 허옇게 바래져 남루하다. 색이 바랜 반짇고리 상자에 지나온 삶의 궤적들이 고개를 내민다. 동글동글 감긴 채로 긴 잠을 자던 실타래가 어쩐 일이냐며 하품하는 듯하다. 쓸모 있을 것 같아 헌 옷에서 떼어놓은 단추들이 눈을 동그랗게 하고 나를 바라본다. 고무줄, 가위 바늘 골무 옷핀까지, 온갖 잡동사니들이 내 삶의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었다니 새삼스럽기도 하다. 오랜 시간 나와 함께한 작은 상자 속에 희로애락이 담겨있는 듯하다.

굵은 무명실 꾸러미에 유년의 방에 있던 어머니의 낡은 반짇고리가 어렴풋이 떠오른다. 겨울이면 으레 안방 윗목에 반짇고리가 놓여있었다. 무명천으로 만 든 반달 골무와 손잡이에 헝겊을 두툼하게 감은 커다란 가위 생각이 난다. 양말 뒤꿈치와 해진 팔꿈치를 깁느라 저녁이면 어머니의 손에는 골무가 끼워져 있었다. 문명의 혜택도 없이 암울한 세대를 살아야 했던 가난한 시절, 바느질은 생계의 수단이기도 했었다. 호롱불 아래 밤이 깊도록 바느질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오래된 영화의 한 장면처럼 뭉클하니 그립다. 일찍이 아홉 살에 바느질을 배워 치마저고리를 손수 지어 입어야 했다는 어머니의 가련한 시절이 바늘 끝에 머물러있다. 좋은 시절을 만났더라면 어머니가 읊어대는 시어들이 빛을 볼 수도 있었을 텐데 검지에 낀 골무에는 만고풍상이 서려 있다. 온갖 고난을 이겨내고 자식의 방패막이 되신 어머니의 일생이 숙연하다.

어머니는 외동딸이 못 미더웠는지 결혼한 후에도 우리 집에 오셔서 이불 홑청을 시치곤 하셨다. 방 한가운데 뽀얀 광목 이불을 펼쳐놓고 바느질하시던 풍경은 한 폭의 미인도였다. 흐르는 세월 앞에 장사 없다는 말처럼 어느 날엔가 바늘귀를 못 찾았다. 실 끝에 침을 발라 실을 곳곳하게 세워 바늘귀를 찾아보건만 번번이 엇나갔다. 나는 바늘귀에 실을 끼워드리며 "엄마 어째 바늘귀도 못 찾으셔요?" 아무 생각 없이 말씀드릴 때 "너도 내 나이 돼 봐라." 하시며 껄껄 웃으시던 어머니…. 어느덧 거울을 볼 때면 한땀 한땀 사랑을 깁던 어머니 모습이 보인다. 어느새 어머니의 나이가 되고 보니 철없던 날의 무례함이 한없이 부끄럽다.

나의 바느질 솜씨도 어머니를 닮아 출중한 편이었다. 하지만 막상 딸의 옷에 단추를 달려니 예전 같지 않다. 굵어진 손마디에 작은 바늘구멍 찾기가 어설프고 난감하다. 하는 수없이 돋보기를 쓰고 바느질을 하려는데 문득 "너도 내 나이 돼 봐라" 하시던 어머니 목소리가 귓전에 들려 온다. 마침 어린 외손녀가 이 광경을 보고 신기하다며 대신 바늘귀에 실을 꼬여준다. 과학의 발달로 로봇이 사람 일을 대신하는 시대에 아이는 훗날 어떤 회상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어둑하던 시절의 반짇고리는 어느새 문명의 옷을 입고 우리 곁에서 멀어져간다. 케케묵은 반짇고리가 자꾸만 내 눈치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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