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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

수필가

방금 세수한 소년의 얼굴처럼 아침 햇살 사이로 초록 잎새의 나풀거리는 풍경이 아름답다. 하루가 다르게 푸르러 가는 산야의 초목과 짙게 드리운 가로수 물결이 가히 초록 바다이다. 사월에 신록이라니, 예년보다 이른 자연의 선물에 눈이 황홀하다. 봄꽃이 그리도 앞다투며 만발하더니 꽃을 음미할 겨를도 없이 어느새 지고 난 자리에 푸르름 일색이다. 변화하는 계절의 순리에 순응해가며 나는 연둣빛 가로수 길을 걷는다. 아기 손바닥만 하던 잎들이 활짝 피어나 하늘하늘 춤을 춘다. 바람에 실려 오는 향긋한 풀 냄새를 맡으며 유유자적 푸른 길을 간다. "나에게도 이렇게 푸르른 시절이 있었지" 하며 아쉬워하는 사이 흘러간 젊은 날이 저만치서 손짓을 한다. 어느새 초로에 서 있다니, 초록길을 따라 소풍이라도 떠나고 싶은 심정이다.

소풍! 얼마나 설레는 말인가, 소풍의 사전적 의미는 답답한 마음을 풀기 위하여 바람을 쐬는 일이라지만 또 한편으로 소풍(逍風)은 여러 가지 대상을 접하며 나름대로 만족을 느끼는 일이라고 한다. 그러고 보면 사람들은 매일 매일 소풍을 하는 셈이다.

마침 외손녀가 봄 소풍 간다며 한껏 부풀어 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처음 가는 소풍이니 얼마나 설렐까, 손주의 첫 학교소풍에 할미인 나도 덩달아 기대가 된다. 아이의 행복해하는 떨림에 소싯적 나의 소풍도 떠오르고 내 딸들의 소풍날도 어렴풋하게 생각이 난다. 어디로 가느냐고 장소를 물어보니 버스를 타고 외곽에 있는 놀이동산으로 간단다. 아이는 새로 산 가방에 간식을 담고 몇 번이나 쓰다듬어보고 매어보기를 반복하더니 새벽에 일어나 날씨 참견을 한다. 딸의 어릴 적 모습을 보는 듯했다. 도시락 가방을 메고 돗자리를 들고 짝꿍과 함께 버스에 올랐다. 차창 너머로 손을 흔들며 해맑은 웃음을 지어 보였다. 멀어져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사물을 잘 관찰하고 동무들과 행복한 추억을 만드는 소풍이 되길 기도한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니던 1960년대 우리나라의 실상은 매우 빈궁한 시기였다. 그 시절 소풍은 아이들에게 즐거운 날이지만 부모들에게는 부담스러웠을 게다. 4학년 때 그리 녹록지 않던 농가 살림에 어머니는 외동딸인 나에게 소풍날 입으라며 노란 봄 쉐타를 사 오셨다. 늙으신 어머니의 딸에 대한 온정이 두고두고 기억나는 소풍이다. 왼쪽 가슴에 붉은 꽃이 수놓아진 옷은 무명옷을 입던 시대에 최고의 선물이었다. 한껏 으스대는 마음으로 소풍 가던 길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작은 시골 학교는 산이 있고 시냇물이 있는 근처의 가까운 동산이 소풍 장소였다. 교정을 나와 소풍을 하는 들길에는 나들이 나온 밭두렁의 지칭 게와 아기 똥 풀이 우릴 반겨주었다. 멀리 논에서 모내기하던 농부들이 새참을 즐기는 풍경 사이로 우리의 노랫소리가 흘러갔다.

결핍의 시간이었건만 소풍 용돈으로 챙겨주신 50원에서 빨강 새 풍선을 사던 기억도 난다. 주먹밥 하나 김밥 한 줄이 전부였어도 소박하던 우리의 추억이 그립고도 사무친다. 무슨 생각이었을까, 돈 주고 산 새 풍선을 불어 숲에 날려 보내며 보물찾기를 하던 풍경이 보이는 듯하다. 나뭇가지 사이에, 돌 틈에, 풀 섶에 숨겨놓은 보물을 찾으러 어머니가 싸주신 사이다를 아껴 마시며 온 산을 돌던 그 골짜기가 아련히 떠오른다.

오후에 손녀가 소풍에서 돌아왔다. 토핑을 얹어 싼 유부초밥도 소시지에 떡을 입혀 구운 소떡소떡도 알알이 꽂아준 과일까지 인기였다고 했다. "할미, 친구들이 내 도시락이 예쁘고 맛있다고 해서 나누다 보니 나는 겨우 하나만 먹었어. 그런데 왜 배가 하나도 안 고프고 배가 부르지?…."

김이 다 빠진 사이다를 가까스로 남겨 갖다 드리던 어머니에 대한 나의 어린 사랑이 뭉클하다. 그러고 보면 소풍은 사랑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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