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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1.07.14 17:33:26
  • 최종수정2021.07.14 17:33:26

박영희

수필가

비가 내린다. 나직이 내리는 빗소리는 천상에서 들려주는 자장가 소리인가, 잘박잘박 내리던 빗소리의 여운이 선율처럼 다가온다. 간밤에 내린 비로 숲의 녹음은 더욱 짙푸르고 비에 젖은 흙에서는 그리운 고향 냄새가 나는 듯하다. 흐르는 빗물은 알 수 없는 감정의 응어리들을 씻어주는 걸까, 비가 오는 날이면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칠월의 비가 창가로 와서 속삭인다. 좀 진하게 커피를 내려 머그잔을 들고 유리벽에 기대어 섰다. 우수에 잠긴 지나간 상념들이 물안개처럼 피어오른다. 낡은 삽자루를 들고 이른 아침 물꼬를 틀고 오시던 비옷 입은 아버지의 모습, 담 밑에 애호박을 따서 조반을 짓던 어머니의 구수한 된장국 냄새는 장마철 우리 집의 낯익은 풍경이다.

비오는 날은 오솔길이 좋다. 우산을 받쳐 들고 집 근처에 있는 매봉산으로 나갔다. 명주실처럼 부드러운 빗줄기에 어디선가 은은한 꽃향기가 풍긴다. 옅은 꽃냄새의 진원지를 찾느라 주변을 살펴보니 칡넝쿨 사이로 연보랏빛 꽃송이가 송알송알 맺혀있다. 보슬비에 젖은 칡꽃 향기가 가슴으로 스며든다. 모퉁이를 지나 산길 초입에 이르자 올망졸망한 텃밭들이 눈에 띈다. 부지런한 이들이 한 뼘 한 뼘 가꾼 자투리 땅에 풋것들이 옹기종기 모여 내기를 하듯 키 재기를 한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가뭄으로 시들하더니 밤새 내린 단비에 그새 부쩍 자란 모양이다. 이파리마다 파란 윤기가 진하게 흐른다. 가끔 공허하다 싶을 때 산길을 오르며 한참씩 들여다 보곤 하는데 유년의 향수 때문인지 마음이 넉넉해진다. 내 밭도 아니면서 고향에라도 온 듯 텃밭 옆을 서성이며 작물들을 관조한다. 쑥갓, 오이, 들깨, 가지, 고추, 토마토. 마치 금방 세수하고 나온 소녀의 얼굴처럼 싱그럽다. 비탈진 밭에서 의연하고 튼실하게 제 몫을 다하는 푸성귀의 끈질긴 생명력이야말로 내가 배워야할 인내심은 아닐까? 오종종한 푸성귀들과 눈맞춤을 하는 사이 채소 잎 하나에도 삶의 혜안이 담겨져 있음을 깨닫는다.

낡은 함지박이랑 물 긷는 대야, 망가진 물 조리개, 서로 막대기를 세워 그물망을 두른 것으로 보아 텃밭 주인이 제각각인 모양이다. 울타리를 휘감으며 덩굴손을 뻗어가는 호박 넝쿨의 궤적이 내 아버지의 힘줄처럼 도드라져 보인다. 자식을 위해 평생 일만 하시다 몸에 지닌 힘겨운 흔적들…. 갑자기 마음이 먹먹하니 숙연하다. 활짝 핀 호박꽃의 웃음 뒤로 무거운 열매를 이고 길을 찾아가는 호박 덩이가 눈에 띄었다. 만고풍상의 세월에도 무거운 삶의 무게를 담담히 이고 가시던 어머니의 뒷모습을 보는 것처럼 애잔하다. 빗방울이 점점 굵어진다. 어느새 우산 속으로 들어와 얼굴을 비벼대는 빗방울의 감촉이 간지럽기만 하다. 커다란 토란 잎새 위로 빗물이 떼굴떼굴 구르다 또르르 미끄럼을 타는 모양이라니, 솥뚜껑만한 토란 잎사귀를 꺾어 우산을 쓰던 악동들의 추억, 친구와 철길을 걸으며 낄낄대던 비 오는 날의 풍경이 저만치 떠오른다. 다 자란 상추 대궁에 조랑 맺힌 꽃송이를 보니 여름이 조금씩 지나고 있나보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정겨운 빗소리에 언젠가 한번 가 본적 있는 몽골로 추억의 여행을 떠나본다. 수도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했을 때 폭우가 쏟아졌다. 마침 우기였던지 흙탕물이 도로에 가득 넘치고 물구덩이 사이로 버스들은 헤엄치듯 굴러갔다. 구름이 낮게 깔리면 하루에도 몇 번씩 비를 만나는 변덕스런 날씨에도 언짢아 할 줄 모르는 천성이 순박한 몽골사람들, 척박한 땅에서 징기스칸의 후예로 살아가는 극한 가난이 빗줄기를 타고 내 맘에 아프게 흐른다.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하자 몽골에서 "비는 좋은 인연을 맺어주는 축복"이라며 우리와의 인연을 기뻐했다. 게르(유목민의 집) 위로 후두두둑 비가 내린다. 60년대 양철지붕위로 내리던 우리네 빗소리를 연상하며 이들의 번영을 기도한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의 라벤다 꽃에도 진한 초록비가 내린다. 비에 젖은 채 무리지어 다니던 소떼와 말들과 양떼들…. 이국에서의 비오는 날 풍경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머물다 아스라이 멀어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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