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한기연

음성문인협회장

여름 늦더위가 9월에도 이어지는 가운데 제법 굵은 비가 내린다. 대학원 개강 후 두 번째 수업은 교수님과 저녁을 먹고 시작하기로 해서 평소보다 일찍 길을 나섰다. '논문연구'라는 주제로 진행되는 교수님 수업은 빠짐없이 듣고 싶을 정도로 흥미롭다.

교수님과 함께 공부하는 학우들과 담소를 나누며 맛있는 식사를 했다. 종갓집 종손이지만 관습에 얽매지 않고 자신의 주관대로 삶을 살아온 교수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가 숙어졌다. 자신있고 당당하게 독립적으로 산 세월이 대단해보인다. 편안한 분위기에서 교수님은 '자신을 위해 살라'는 말을 여러 번 강조했다. 아동심리를 전공하신 분답게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하는 능력을 가지고 계셨다.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는 내내 일곱 빛깔 무지개처럼 아름답게 반짝이던 장면이 떠오른다.

지난 토요일, 도착한 현장은 입구부터 요란했다. 아직 공연 시작까지 한 시간이나 남았는데 많은 이들이 색깔별로 부스를 만들어 홍보하느라 여념 없다. 머리띠부터 별 모양 봉까지 다른 색깔을 살펴보니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를 색깔로 구분하여 각인시키고 있다. 소위 말하는 팬덤이다. 굿즈 상품을 파는 노점상도 있다. 우리 일행 네 명을 본 팬들은 먹잇감을 발견 한 하이에나처럼 달려 들었다. 팬클럽 가입을 종용하며 갖가지 선물 공세를 펼친다. 혼자라면 벌써 마음이 흔들려서 누구라도 상관없이 팬클럽에 가입했을 터이다. 이성적으로 대응하는 일행 덕분에 난관을 뚫고 무사히 자리에 앉았다.

지인의 딸 덕분에 '불타는 트롯맨' 초대권으로 천안 공연장에 왔다. 이미 전국투어 콘서트를 11개 도시에서 25회 했는데, 앙코르 전국 투어를 다시 시작했다. 주변을 둘러 보니 대부분이 50대 이상의 여성분이 많았고 부부로 보이는 경우도 있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뿐 아니라 출연진 모두에게 환호하고 반짝이 봉을 흔들었다. 두 시간 반 넘는 시간 동안 쉬지 않고 소리 지르는 그들이 대단해 보였다. 누가 그들을 여기까지 오게 했을까?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코로나 시기에 트로트 열풍이 불었다. 나 또한 빠짐없이 챙겨 보고 전화투표까지 했다. 노래 한 소절이 내 얘기인 양 서럽고 슬퍼서 울기도 하고, 신나는 리듬에는 어깨를 들썩이기도 했다. 트로트 오디션프로그램은 시즌으로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인기가 사그라들지 않고 이어진 가장 큰 이유는 팬 덕분일 것이다.

작년에 모 방송 프로그램으로 스타를 향한 덕질과 함께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이들의 숨어 있는 사연을 담아내는 토크쇼가 있었다. 스타를 향한 마음으로 우울증을 극복하기도 하고 팬심을 수줍게 표현하는 순애보적 사랑에 감동하면서 즐겨봤다.

청춘의 뜨거운 모습을 보여주는 저들의 일탈은 지금까지 소극적으로 살아 온 삶으로부터 탈출이다. 자기 자신보다는 가족을 먼저 챙기고 무미건조한 일상에 파문이 일면서 스스로 이 자리까지 왔을 것이다. 무대에서 노래부르는 가수보다 그들을 응원하는 마음이 커졌다. 어떤 형식이든 교수님이 말씀하신 '자신을 위한 삶'의 길로 들어 선 것이다. 내 손을 등 뒤로 돌려서 스스로를 안아주고 토닥인다. '그래, 잘하고 있어.'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