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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기연

음성문인협회장

몇 시간째 책상 앞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내 앞에 놓여진 종이는 백지상태 그대로다. 처음으로 엄마에게 쓰는 편지 첫 구절이 왜 이리 어려운지 지금까지 써 온 글이 무색할 지경이다.

벌써 4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노인 대상으로 수업을 하고 계시는 선생님의 권유로 일흔을 넘긴 엄마에게 치매인지검사를 했다. 그러다가 보건소 치매안심센터에 정식으로 등록을 하고 인지기능에 도움이 되는 약을 먹기 시작했다. 치매프로그램도 참여 하시고 인지등급도 신청해서 받았다.

그렇게 더 이상 나빠지지 않고 생활에 아무 문제 없이 지내실 줄 알았다. 엄마의 변화를 알아 챈 건 지난해 봄부터이다. 일주일에 서너 번 수업하러 오가다 들러서 집안을 살폈다. 점심을 밖에서 사드시고 남은 음식을 포장해 오셨는데 한 번도 그 음식은 먹지 않고 상해서 버렸다. 음식 재료는 있는 줄 모르고 다시 사거나 상자로 사서 버리기 일쑤였다. 쓰레기는 방 안에 그대로 쌓여 있었다. 볼 때마다 엄마를 향한 나의 잔소리는 더해졌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그때마다 보이는 엄마의 태도는 비수로 꽂혔다. '알았어' '다음부터는 안 그럴게'라고 표정 없이 말하는 엄마는 어린아이였다. 모질게 말하고 온 날에는 불도 켜지 않은 방에서 한참을 울었다.

남동생과 같이 살면서 끼니를 챙겨 드시고는 계셨지만 보살핌은 내 몫이었다. 정기적으로 다니는 병원부터 치과 진료도 처음으로 받게 되었다. 더 이상 나빠지시지만 않으면 괜찮은데 병원 약속도 잊어버리고 기억이 점점 희미해지심을 직감했다. 동생과 상의 끝에 한 달 전쯤 주간 보호센터에 보내드리기로 했다. 처음에선 싫다며 완강히 거부하셨다. 아마도 한 달에 들어가는 비용 때문에 자식들에게 부담 주고 싶지 않아서 그랬던 듯싶다.

주간 보호센터 시설을 엄마와 둘러 본 후 다닐 곳이라고 말했다. 이번에도 싫다고 말씀하셨지만 내 뜻을 굽히지 않았다. 처음 센터에 가는 날 아침 일찍 엄마 집으로 가서 옷매무새를 살피고 차가 오길 기다려 태워드렸다. 노란색 승합차가 떠난 자리에 서 있으니 눈물이 난다. 이십 육 년 전 17개월 된 둘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내려오던 그 언덕길이 보인다.

결혼 초 어려운 살림살이를 살뜰히도 챙겨주셨다. 쌀이며 반찬은 물론 첫 아이 분유까지 사 주셨다. 공장에 다니시면서 일하느라 힘드실 텐데도 쉬는 날은 아이를 봐 주셨다. 당시에는 당연히 받아들이고 고마움의 깊이를 몰랐는데 나이가 들수록 엄마에 대한 감사함이 깊어졌다. 더욱이 처음으로 땅을 살 때 빌려주신 돈은 큰 힘이 됐다. 남편과 둘이 결혼할 때 살림을 장만하지 않고 시골집에 살면서 모은 돈으로는 부족했다. 고민 끝에 엄마께 살 땅을 보여드리며 말씀드렸더니 내주셨다. 기댈 곳이 없어서 말씀은 드렸지만 의외였다. 기억이 더 희미해지기 전에 꼭 한번 여쭤봐야겠다.

센터에서 운영하는 SNS에 초대되어 가입했다. 하루의 활동 모습을 올리는데 그 사진 속에서 엄마를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옆모습이나 뒷모습이 보여도 금방 알아본다. 유치원이나 학교 활동에서 내 아이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실망하는 부모의 마음을 오롯이 느낀다. 잘 적응하시고 표정도 점점 밝아지셔서 다행이다.

센터에서 하는 어버이날 행사에서 큰아들이 대신 읽어 줄 편지를 쓴다. 병치레가 잦던 첫 손주를 돌봐주신 엄마께 처음으로 '사랑한다'라는 말을 남겼다. 지금까지 표현하지 못했던 마음을 아들을 통해 전하면서 감정은 복잡하다. 나는 내 아들에게 자리가 뒤바뀌는 아픔을 전해주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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