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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2.08.18 15:41:58
  • 최종수정2022.08.18 15:41:58

한기연

음성문인협회장

시와 음악이 흐르는 설렘으로 나의 문학은 시작되었다. 치마 속에 체육복 바지를 입고 친구들과 교정 뒤편에서 말타기 놀이를 즐기던 말괄량이 중학 시절, 가을이면 며칠 동안 소녀의 모습을 하곤했다. 그 당시 남학교였던 음성고 문학 동아리 '길문학'은 해마다 가을이면 문화원에서 시화전을 열었다.

중학 소녀는 시보다는 사람에 끌려 시화전을 날마다 들러 시화 액자 옆에 꽃과 초콜릿을 붙였다. 시화전 마지막 날에는 '작가와의 만남'처럼 작은 시낭송회를 열고 뒤풀이를 하며 사춘기를 보냈다. 그렇게 호기심으로 '시'를 알게 되었고, 나도 그들처럼 멋진 시를 쓰고 싶다는 꿈을 갖게 되었다.

누구나 한 번쯤 학창시절엔 문학소녀를 꿈꾼다. 꿈을 꾸고 글을 쓰다가 시인으로 문단에 발을 들였다. 시인이라는 허울은 처음에는 으스대기 좋았고, 세월이 흐를수록 그에 걸맞은 글을 내놓지 못해 부끄러웠다. 책을 많이 읽어 글 창고를 가득 채우는 것도 아니고, 습작도 안 하니 졸작으로 명맥만 유지할 뿐이다. 그래도 아직 글을 쓴다는 것은 칭찬할 만하다. 시를 쓰면서 가끔은 낭송을 하기도 한다. 전문적으로 배우지는 못했지만 다른 사람들이 잘한다고 해주니 그 말에 힘을 얻어 낭송의 묘미도 알게 됐다.

오래전으로 거슬려 나의 문학 시작과 낭송까지 생각이 깊어진 까닭은 처음 단체장을 맡으면서 치르는 행사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일 거다. 올해 문인 단체장을 하면서 코로나로 인해 멈췄던 일들이 봇물 터지듯 밀려들기 시작했다. 찾아가는 시화전이야 관내이니 일이랄 것도 없다. 2년 동안 치르지 못했던 반기문전국시낭송대회를 하는 것은 예선부터 난관이었다. 봄부터 준비한 것을 여름에 개최한다. SNS는 물론 주변 인맥을 활용해 홍보했다. 예선 마감일이 다가올수록 긴장감은 고조되었다. 참가자가 적어서 걱정을 많이 했는데 다행히 일주일 앞두고 접수가 몰려 백 칠십여 명이 예선을 치렀다.

시낭송 본선은 전국에서 참여한 스물다섯 명이 실력을 겨룬다. 예선 참가자의 음성파일을 들으면서 목소리가 전하는 시의 의미를 새겼다. 시 낭송을 전문적으로 배워 보고 싶었는데 기회가 없었다. 이번 주 토요일이 본선이다. 누구보다 흥분되고 기대되는 날이다. 예전에 많은 사람 앞에서 시 낭송을 할 때 다른 이가 하는 낭송을 영상으로 보며 연습했다. 그때 어느 낭송가의 시를 들으며 눈물을 흘린 기억이 있다. 그날은 우울하고 힘든데 울지 못해 버티고 있었다. 그런 찰나에 감정이 응집된 낭송가의 시는 눈물샘을 건드렸다. 시가 전하는 메시지가 낭송가를 통해 올바르게 이해되어 기교 없이 강한 파장으로 전해졌다. 핑계 삼아 운 덕에 무사히 넘긴 시간이다.

시를 쓰면서 처음 문학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지만 지금 나는 수필을 즐겨 쓰는 편이다. 삶의 언저리에서 머무는 글이지만 글을 쓰고 있는 삶에 만족한다. 첫사랑의 설렘처럼 학창시절 마주한 시낭송회는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고, 달콤한 추억이다. 그때를 생각하니 다시금 마음이 흔들린다.

몇 년 전에 아마추어적인 실력으로 시 낭송에 대해 강의를 한 적이 있다. 극구 사양했지만, 동아리 형식으로 편하게 수업하면 된다는 말에 현혹되어 수강생들과 시를 낭송했다. 여덟 번 정도의 수업을 마치고 지인과 가족을 초대해서 시낭송회도 열었다. 낭송 시를 수십 번 읽고 외우면서 시의 의미를 새기고, 선곡한 음악에 맞춰 낭송하는 그들의 홍조 띤 얼굴은 행복해 보였다.

예전보다 시를 낭송하는 전문가도 많고, 대회도 곳곳에서 열린다. 시인의 언어가 생명을 얻은 것처럼 또랑또랑한 음성으로 가슴을 파고든다. 눈으로 읽어 내려가는 시와는 전혀 다르다. 제갈공명의 마음을 움직인 유비의 눈물처럼 온몸으로 시를 낭송하는 그들을 만날 날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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