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홍길동전의 율도국과 일본의 오키나와

2017.08.02 13:13:40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서울의 '밤섬(栗島)'도 널리 알려져 있지만 홍길동전에 보면 홍길동이 세운 이상향의 이름도 율도국이라 부른다. 이와 같이 지명에 많이 쓰이는 '율리(栗里)'나 도연명의 이상향인 '율리(栗里)' 들에서 공통적으로 쓰이고 있는 '율(栗, 밤)'은 어떠한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

홍길동이 국왕이 되어 다스렸다는 율도국은 오키나와에 있다는 설이 있으나 조선왕조실록과 연산군일기에는 홍길동이라는 강도가 있었고 그를 체포했다는 기록만 있을 뿐 홍길동이 탈옥해서 조선을 빠져나와 율도국을 세웠다는 등의 기록은 없다. 소설 홍길동전이 쓰여진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오키나와에 실재했던 호족 오야케아카하치가 홍길동과 동일인물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기 때문에 대한민국과 일본의 오키나와 현지에서는 이 주장을 정설로 보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1997년 오키나와의 구미도에서 홍길동 자료 전시전을 개최하고자 하니 관련 자료를 보내달라는 협조를 장성군청에 정식으로 요청한 적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15세기에 홍길동이라는 도적이 나라의 골칫거리였고 그들을 도왔던 관리가 문초를 받는 사료까지 발견되는 점으로 보아 홍길동 세력은 알려진 것보다는 규모가 컸던 것 같다. 그 후에 홍길동이 체포되어 사형을 당했는지 아니면 탈옥하여 그를 따르는 무리들과 함께 행동했는지는 알 수가 없으나 처벌이 두려운 세력들이 국외탈출을 계획했을 거란 추론은 어렵지 않다.

오키나와에 남아있는 유적과 유물로서 홍길동과 연관이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민속놀이, 축성술, 의술, 신품종 볍씨 등을 들 수가 있으며 홍길동의 부인 '고을노'는 당시 그 곳의 안남미(安南米)가 남방계의 쌀이어서 질이 좋지 않으므로 미질이 좋은 조선의 볍씨를 가져가 신품종의 볍씨(쌀)를 전파함으로써 오키나와의 야에야마(八重山)지역에서는 풍요의 여인으로 추앙받고 있다고 한다. 이런 사실들에 의하면, 허균의 홍길동전은 상당 부분 사실에 근간을 둔 소설임이 드러난다. 홍길동이 조선을 떠나고 100여년이 흘러 백성들의 마음에서 잊혀갈 즈음 적서차별에 불만을 품고 있던 허균이 홍길동의 전기를 기반으로 소설화시킨 것으로 볼 수가 있는 것이다.

홍길동이 다스렸다고 하는 율도국과 오키나와는 분명히 어떤 관련이 있어 보인다. 텔레비전 방송에서도 이 내용을 관심있게 다룬 적이 있었지만 이제라도 오키나와현의 협조를 받아 학자들이 공동으로 연구를 할 필요성이 있지 않을까· 연구에는 다양한 과학적인 접근 방법이 필요하겠지만 지명을 통한 어원적 접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되어 '율-'계의 지명을 고찰해 보기로 하자.

우리나라의 섬의 이름에도 '밤섬(율도)'이 많이 보인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내각리의 밤섬(栗島), 전남 신안군 지도읍 태천리의 밤섬(栗島), 경남 고성군 삼산면 삼봉리의 밤섬(栗島), 제주도 서귀포시의 밤섬(栗島) 등이 있으며, 전남 여수시 돌산읍 율림리 밤섬(栗島)은 가까이에 있는 건너편 육지에 대율, 소율, 율림리라는 지명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밤(栗)'과 서로 연관성을 가진 지명임을 알 수가 있다.

허균(許筠)이 홍길동전에서 꿈꾸었던 '율도국'의 실제 모델로 거론되는 섬은 고슴도치를 닮았다하여 '고슴도치 위(蝟)'자를 써서 그 이름이 붙은 '위도(蝟島)'라고 이야기하는 학자들이 있다.

고려시대부터 유배지로 이용되었던 이 섬은 연암 박지원이 <허생전>에서 표현한 이상국가인 율려국의 모델이기도 한데 이 율려국도 홍길동전의 율도국을 실현하고자 한 것이라면 또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율'의 의미가 궁금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율려국은 '밤(栗)'이 아니라 '음악(律)'을 가리키는 것으로 음은 같으나 그 의미가 전혀 다르다. '율(律)'은 '율동(律動)'이요, '려(呂)'는 '여정(呂靜)으로 모두 조절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는데, 둘을 합친 율려(律呂)는 예로부터 음악을 일컫는 말이다. 따라서 '율려(律呂)'는 불평등하고 파란곡절이 끊이지 않는 인간 세상을 구원할 최고의 가치로 알려져 왔으며 율려가 충만한 땅이 바로 태평천국이며 무릉도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도연명의 이상향인 '율리(栗里)'도 그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지명에 쓰인 '밤(栗)'과는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며 지명에 많이 쓰인 '밤'이 '율(栗), 야(夜), 사(巳)'로 표기된 것은 어원이 되는 '배미'가 '뱅이, 뱀이, 밤이, 방이' 등으로 변이되어 그 음을 표기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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