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지명산책 - 가마리

이상준

전 음성교육장·수필가

청주시의 남쪽에 가마리라고 하는 마을이 있다. 원래 청원군 남이면의 지역으로 고려때 그릇을 굽는 가마가 있었으므로 가마골, 또는 가마동(駕馬洞)이라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가중리(駕中里), 가남리(駕南里), 가북리(駕北里), 가서리(駕西里)를 병합하여 가마리라 하였다고 한다.

가마골은 큰 마을이었으므로 한 마을 안에서 그 위치에 따라 부르는 고유의 이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능안이라는 마을은 가마리 마을의 가운데 있다 하여 가중리(駕中里), 오야꼴은 가남리(駕南里), 아래가마는 하가마(下駕馬)로 표기하다가 가북리(駕北里)로, 웃가마는 상가마(上駕馬)로 표기하다가 가서리(駕西里)로 표기한 것은 행정 편의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가마'라는 의미를 글자 그대로 그릇을 굽는 가마와 연결지어 지명의 유래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지명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는 가마의 의미를 잘 모르는 데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된다.

전국의 지명에서 '가마'는 가막, 감, 거무, 거문, 검으로 변이되어 쓰이면서 가마(駕), 검다(黑), 가마귀(烏), 거미(蛛), 감(甘), 검(劍), 곰(熊), 쇠(金), 거문고(琴) 등의 의미를 유추하여 다양한 지명 유래와 전설을 만들어 내어 혼란을 일으키고 있으나 이 모두가 '크다'는 의미의 '가마'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면 지형이나 지명 명명의 유연성으로 보아 정확하게 일치함을 발견하게 된다.

'크다'는 의미의 '가마'라는 고유어의 흔적은 오늘날 '가마솥'이라는 말에 그대로 남아 있다.

일본의 온천관광지인 벳부에 갔을 때 가마도 지옥(かまど 地獄)을 관람하게 되었다. 그런데 가마(かま)라는 말을 한자로 '大釜'로 표기하는 것으로 보아 옛 우리말의 가마솥이 전해져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는 것을 보고 마치 우리 조상들의 숨결을 느끼듯 너무도 반가워 마음에 뿌듯함을 느낀 적이 있으며 앞에 '대(大)'를 표기한 것은 '크다'는 옛 의미를 아직까지 간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가마도 지옥 앞에는 이 지역의 고등학생들이 만든 가마솥 모양의 조형물도 전시해 놓았던 것이다.

'하와이 갔다 왔느냐'하는 인사가 유행어가 될 정도로 한때 인기 관광지였던 '부곡 하와이'라는 관광 명소가 있다. 경남 창녕군 부곡면에 있는 '가마골'을 한자로 표기한 이곳 '부곡(釜谷)'은 이곳이 온천으로 개발되어 유흥 시설을 설치하여 전국의 관광객이 몰려드니 자연히 지명에 대한 언급이 언론을 통해 널리 회자되었다. 조상들이 선견지명이 있어서 온천이 나올 것을 예견하고 '부곡'이라는 지명을 만들었다느니, 이곳 지형이 가마솥처럼 생겨서 물을 끓이는 형국이니 온천물이 나오게 되었다느니 하며 저마다 견강부회하였으나, 우연히 온천수가 나와 개발하였을 뿐 '큰 마을', '큰 골짜기'라는 의미의 '가마골'임이 분명한데 '가마'의 의미를 잃어버린 결과 이러한 해석상의 혼란이 생겨난 것으로 짐작이 된다.

가마뜰(큰 뜰 - 여주군 점동면 흔암리), 가무재고개, 거현(巨峴 - 보은 수한 거현리)

가마골(釜谷 - 음성 원남 하로)

등에서 '가마'가 '크다'는 의미였다는 흔적이 여실히 남아 있으며, 거문바위(琴岩里, 청주시 북이면 금암리), 거문골(琴谷, 제천 백운 운학), 거무실(玄谷, 단양 적성 현곡), 거먹바위(보은 내북 노티리), 가막재, 가막현(보은 수한 소계, 제천 봉양 명암), 감실(영주시 부석면 감곡리), 감악산(제천 봉양 명암), 검부리(음성 원남 문암리), 곰바위(熊岩, 제천 금성 성내) 등에서는 '가마'가 다양하게 변이되어 쓰임을 볼 수가 있다.

음성군 감곡의 '가미실'이라는 큰 마을은 '개미실'로도 불리다가 한자로 '감미곡'으로 표기되고 오늘날의 '감곡면'이라는 지명이 생기게 되었으며 6·25동란의 위급한 상황에서 우리 국군의 첫 승전지로 기록되는 음성의 '감우재'도 '甘雨재'로 표기하고 있으나 앞서 언급한 것처럼 '가무재', 가마재'가 그 뿌리이며 '큰 고개'라는 의미인 것이다. 지금은 도로가 개설되어 고개라고 하기가 어렵지만 옛날에는 호랑이가 출몰하는 험한 고개였던 것이니 이곳을 지날 때마다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