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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순

수필가·한국어강사

갑자기 온 딸 부부를 만나 식당에 가 밥을 먹었다. 둘이 눈짓을 하더니 사위가 할 말이 있다고 한다. 부부싸움이라도 한 것인가 눈치를 보니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머뭇거리던 사위가 작은 종이카드 한 장을 내밀었다. 호기심에 카드를 꺼내 펼치는 순간 난 잠시 숨을 멈췄다. '할머니! 반가워요!'란 인사와 함께 '저는 도담이라고 해요. 엄마 뱃속에서 건강하고 무럭무럭 잘 자라서 태어날게요.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란 문구와 함께 귀여운 아기 캐릭터가 그려져 있었다.

딸이 그토록 바라던 임신을 했고 그 소식을 직접 전하고 싶어 달려온 것이었다. 전혀 짐작도 못 했기에 놀라는 나를 보며 딸의 눈가가 촉촉해졌다. 결혼한 지 이제 일 년밖에 안 지났기에 마음 편히 기다리라고 해도 딸은 하루빨리 아이를 갖고 싶다고 했다. 병원에 가서 받을 검사는 다 받으며 임신하기를 기다렸는데 너무 늦지 않게 찾아와 준 아기가 고마웠다. 나는 할머니라는 낯선 단어보다는 가족이 늘어나는 기쁨에 마음이 하늘로 붕 떠다니듯 가벼워졌다.

아기가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라고 '도담이'란 태명을 지었다. 후각이 예민한 딸이 입덧을 심하게 하면 어쩌나 걱정했지만 다행히 도담이는 출퇴근이 먼 엄마를 이해하는지 입덧도 없이 순둥하게 잘 자랐다.

도담이가 커 갈수록 딸의 배도 조금씩 불룩해졌다. 그리고 얼마 전 도담이는 아들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내심 딸을 낳고 싶어 했기에 딸 부부는 조금 실망한 눈치였지만 아들이건 딸이건 우리 집에 찾아와 준 게 얼마나 고맙냐며 딸의 마음을 어루만졌다. 나 역시도 결혼해서 딸만 둘을 낳아 키웠기에 아들 손자가 어색하지만 손자라도 아들을 키워보라고 보내주신 게 아닌가 싶다.

오래전 내가 첫딸을 낳았을 때 시아버님은 몹시 서운해하셨다. 병원에서 아기를 데리고 집에 왔는데 지근거리에 사셨지만 퇴원한 날 아기를 보러 우리 집에 오시지도 않았다. 둘째 딸을 낳았을 때도 역시나 서운해하셨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남편은 맏이도 아니고 둘째였는데 시어른들은 아들만을 바라던 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세상도 달라진 듯 딸을 선호하니 격세지감이 느껴지지만 저출산 시대에 딸아들 구분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남편과 나는 아들에 대한 선호도가 크게 없는 편이라 우리는 만족하며 딸 둘을 키웠다. 다행히 두 딸도 잘 커 줬고 큰딸은 좋은 배우자를 만난 결혼도 했는데 손자까지 찾아온다니 더 바랄 것도 없었다.

시댁이나 친정에 가족이 많은 편도 아니라서 새로운 아기의 출생은 우리 집에 큰 축복이다. 남편이 갑작스레 세상을 떠나고 나니 큰딸은 자신이 우리 집 가장으로 엄마와 동생을 돌봐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혼자 지내는 엄마를 배려하고 여러 가지로 신경을 써 줘서 나도 미안했기에 예쁜 아기도 낳고 오순도순 잘 살아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싶었다.

초음파로 도담이가 꼼지락거리는 모습을 보면 경이롭다. 첫아기를 가진 딸 부부가 느낄 행복이 내게도 전해진다. 출산 후의 육아에 대한 두려움도 없지는 않겠지만 지금은 태아가 건강하게 잘 자라 우렁찬 울음소리를 내며 순산하기만을 빌고 또 빌어 본다. 남들은 다 싫다는 할머니 소리가 빨리 듣고 싶으니 나 역시도 벌써 손자 바라기가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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