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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8.06 15:09:26
  • 최종수정2023.08.06 15:09:26

안광석

괴산군 불정면 하문리 이장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들 한다.

물은 아무리 깊어도 그 속을 헤아릴 수 있지만 사람은 아는 것 같아도 결코 그 진의를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지금에 와서 보니 누군지는 몰라도 이 말을 만든 사람은 자연의 무서움을 경험해 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불과 몇 주 전, 기록적인 폭우가 전국을 뒤덮으며 무시무시한 상흔을 남겼다.

그 중에서도 우리 괴산군 불정면 하문리는 전체의 반이 넘는 가구가 침수되는 등 살아생전 처음 겪는 큰 피해를 입었다.

으레 안다고 자신했던 물길이 사람들의 오만함을 비웃듯 날뛴 결과,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다.

조금 전까지 베개를 베고 누웠던 자리가 순식간에 물에 잠기는 순간의 황망함은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다.

이런 일을 겪고도 어떻게 함부로 열 길 물속을 알 수 있다고 자신한단 말인가.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공포가 얼마나 사람을 흔들어 놓는지 이때만큼 실감했던 적이 없다.

그럼에도 허리를 꼿꼿이 펴고 아침을 맞을 수 있었던 건 한 길을 알기 어렵다던 사람들의 진심어린 마음 덕분이었다.

하문리가 수해를 겪었다는 소식이 알려지기 무섭게 전국 방방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관심과 성원을 보내왔다.

제방을 넘어온 강물이 휩쓸고 지나간 탓에 찾아오는 것부터 힘들었을 길을 어떻게 지나왔는지, 지금까지도 하루가 멀다하고 도착하는 버스에 탄 수많은 봉사자 분들은 마치 자기 일처럼 피해 회복에 힘을 쏟고 계시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찌든 듯한 폭염 속에서도 웃는 얼굴을 잃지 않는 봉사자들의 모습은 경이로울 지경이다.

마을 사람들은 또 어떠한가.

자신이 입은 피해보다는 남들 걱정을 먼저 하며 안부를 묻고 또 묻고 줄 수 있는 것이 하나라도 더 있지 않을까 고민하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찡하다.

잃어버린 것이 적지 않을 터임에도 남아있는 것들에 감사하고 또 애정으로 지켜가고자 하는 이웃들의 자세에는 새삼 배움을 얻기도 했다.

어떤 이들은 얼굴을 마주칠 때마다 '이장이 제일 고생이 많다'고 따뜻한 위로의 격려의 말을 건네준다.

미운 사람 떡 하나 더 주려는 것은 아닌지 괜히 마음속으로 투정을 부리며 다시금 힘을 나게 만드는 고마운 말이다.

춤바람이 난 고래의 심정이 이해가 간달까.

수해가 준 아픔을 이겨내기까지 아직도 갈 길은 멀게만 느껴진다.

장마가 끝나기도 전부터 찾아온 폭염은 우리에게 또다른 악재가 되고 있다.

그런가 하면 스멀스멀 들려오는 태풍 소식도 심상치 않다.

열 길 물 속이 어디로 흐를지 알 수 없는 요즘이다.

그래도 힘차게 오늘을 시작할 수 있는 것은 한 길 한 마음으로 굳건한 버팀목이 되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다.

혹여나 또다른 어려움이 찾아온다 해도 우리 이웃들이 있어 든든하다.

그래서 나에게 속담을 한 구절 읊어보라면 이렇게 소리내고 싶다.

까마득한 열 길 물 속보다도 한 길 사람의 마음이 더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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