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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2.01.05 16:35:28
  • 최종수정2022.01.05 16:35:28

최한식

수필가

-'춘섬 여사' 모셨습니다. 안녕하세요?

"제가 많은 이들 앞에서 얘기해 본 적이 없어 많이 떨리네요. 잘 부탁합니다."

-길동의 신분이 서자(庶子)라 어머니의 설움이 많으셨지요?

"하찮은 제가 뭘 알겠는가만 길동이 태어나기 전년(前年)인가 제도가 바뀌었대요. 저나 내나 원한 게 아니었으니 어쩔 수 없었지요. 시대를 잘 못 타고났다고 해야 할지…."

-부인을 향한 홍 판서의 사랑은 어땠나요?

"그런 걸 얘기해도 되나요? 원래 본부인은 연세가 있고 저 같은 시비들은 어린 경우가 많았어요. 대감님은 가문의 하늘같은 어른이니 총애를 베푸시면 그냥 좋았지요. 대감님이 손을 뻗치시면 거절하기 어려웠고요. 저를 아껴주신다는 느낌은 자주 받았어요."

-길동이 어려서부터 재주가 출중했었다지요?

"제 아들 자랑이 될까 뭐하지만 주변의 칭찬이 자자했어요. 인물이나 체격도 빠지지 않았고요. 글공부도 꽤 잘 했고요."

-아이들이나 어른들 사이에 질투나 그런 건 없었나요?

"출세할 수 없는 서얼들이 똑똑하면 세상에 대한 원망이 많아지고 그게 행동으로 드러나면 "모난 돌이 정 맞는다"고 어려움에 처할 수 있는데다 까딱 잘못되면 가문이 큰 피해를 당한다고 했어요. 그러니 잘난 것도 염려였어요."

-길동이 나이 들수록 근심도 늘어났겠어요?

"열한 살이 됐는데 체격이 어른이었어요. 칼과 활도 제법 다룰 줄 알았지만 어미가 볼 때는 여전히 어린애였지요. 그때 왠지 집안 분위기가 불안불안 했어요. 하루는 길동이 내게 와서 집을 나가겠다고 하대요. 자기를 해하려는 이들 때문에 죽을 뻔 했다더라고요. 자객이 들었대요. 어미가 막아줄 수 없으니 말리지 못했지요."

-그 후론 소문으로만 아들 소식을 들으셨나요?

"그랬지요. 뭔 길이 있겠어요. 남의 집 종이 되든지, 힘과 재주가 있으니 길거리 싸움꾼이 될 것 같아 근심이 많았지요."

-집 나가고 처음 들은 소식은 어떤 거였나요?

"도적떼 대장이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가슴이 '덜컹'하고 내려앉았지요. 그 후로 '해인사'를 털었다고 하대요. 저를 대하는 눈초리들이 무서웠어요."

-얼마나 불안했을까요, 바늘방석 같고 잠도 잘 못 주무셨을 것 같네요.

"하루하루가 그대로 살얼음판이었어요. 좀 지나니 아예 '활빈당'(活貧黨)이라고 별호도 가졌다대요. 불안 중에도 그 이름은 마음에 들었어요."

-탐관오리를 비롯한 못된 벼슬아치들을 혼내주고 민중을 위한 '의적(義賊)'이라 불렸어요. 서민들 마음을 후련하게 해 줬지요.

"어미 마음도 조금만 살펴줬으면 얼마나 좋을까 싶었어요."

-길동의 영향력이 커지니 나라에서 잡아들이라 했잖아요, 그때는 어땠어요?

"소문듣기가 겁났어요. 잡혀도 안 되고, 안 잡혀도 불안하고…. 속이 까맣게 바짝바짝 타들어갔어요. 어디서 잡혔다는 소문을 듣고 까무러칠 뻔 했지요. 여기저기서 계속 잡힌다고 하대요. 아니구나 했지요, 마음이 놓이데요."

-백약이 무효로 방법이 없으니 병조판서를 시켰어요, 안심이 되셨나요?

"아니요, 임금과 대감들 앞에서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 여전히 불안했지요."

-율도국(栗島國)을 세우고 왕이 됐어요. 한을 푸셨나요?

"걱정은 끝이 없지만 그나마 한숨 돌렸지요."

-홍 판서가 죽자 찾아와 삼년상을 치러요, 감회가 남달랐지요.

"물론 그때는 내가 저 세상에서 보았지만 기본이 있고 예의를 아는 것 같아 처음으로 마음이 편안했어요."

-아드님, 홍길동은 풍운의 한평생을 살고 길이 그 이름을 전했습니다. 오늘의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주시죠.

"어머니는 항상 자녀들을 염려하고 걱정합니다. 그것만 기억하고 사세요."

-감사합니다. 홍길동의 어머니 '춘섬 여사'와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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