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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희

수필가

툭, 어둠을 밀어내는 소리에 눈이 떠졌다. 현관 앞 신문을 가져오는 일로 하루를 연 지 사십여 년이 흘렀으니 그럴 만도 하다. 오늘도 새벽 한기가 묻어있는 네모난 세상을 방바닥에 펼친다.

지면 위로 옛 시간이 흐른다. 병약한 아버지는 어두운 방에서 조간신문을 읽으며 긴 하루를 보냈다. 엄마의 외벌이로 근근이 사는 살림에 먹 잉크 냄새는 과분한 일이었다. 하나 딱히 갈 데도 없고 오라는 데도 없던 아버지에게 몇 줄의 기사는 바깥세상을 엿볼 수 있는 귀한 소식이었으리라. 어쩌면 빈한한 집 가장으로서 누릴 수 있는 단 하나의 지적 사치가 아니었을까. 어쨌거나 아버지의 염치없는 호사 덕에 일찍부터 대처 세상을 구경할 수 있었다.

신문읽기는 자연스레 내 일상의 한 부분이 되었다. 세월의 경험치가 쌓이다보니 나름의 읽는 순서도 생겼다. 먼저 신문지 사이에 껴있는 알록달록한 광고지를 대충 훑어본 후 옆으로 밀쳐놓는다. 다음 B면을 읽는다. 경제란과 오늘의 운세 같은 코너는 건성 읽거나 간혹 건너뛰기도 한다. 이어 A면을 펼친다. 첫 장부터 땅따먹기 하듯 야금야금 활자 영역을 넓히다 부고란에서 발을 멈춘다.

부고를 처음부터 챙겨 읽은 건 아니다. 청신한 봄에 조락의 계절을 어찌 상상할 수 있으랴. 푸릇한 청춘에게 보이지 않는 죽음은 그저 추상抽象일 뿐. 나 역시 저승의 안내자에게 동전을 던지는 일 따윈 생각해보지 않았다. 언제부터 부고를 읽었는지, 왜 관심을 두게 되었는지 아령칙하다. 아마도 홀로 계신 아버지가 황망히 우리 곁을 떠난 후부터가 아닌가 싶다.

부고, 친절하고도 무심하다. 몇 줄로 쓰인 기사는 이승과 저승을 가르는 선이다. 어제 뜨거운 숨으로 여기 머물다 오늘 생의 문턱을 넘어 무無의 시간으로 건너간 자의 기록이다. 부고는 고인뿐 아니라 한 가족의 간출한 역사가 서너 줄 속에 담겨 있다. 나란히 적힌 돌림자에선 직계의 연결성이 보이고, 괄호 안의 글자에선 대를 잇는 직업의 연속성이 보인다.

매일 아침 담담히 부음을 읽는다. 그래도 유독 신경이 쓰이는 휘음이 있다. 어떤 죽음인 들 가슴 아프지 않겠냐마는 한창나이에 세상을 떠난 경우가 특히 그러하다. 그럴 때면 슬픔을 안고 행간으로 들어간다. 운구차 옆에서 고인의 노모가 애가 끊어질 듯 소리 내어 울고 있다. 참척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단장의 통곡이다. 우는 노모 옆으로 젊은 부인이 무너질 듯 서 있다. 입을 틀어막은 주먹 사이로 참을 수 없는 울음이 새어 나온다. 묵념이라도 하듯 숙연하게 바라보다 글 밖으로 나온다.

부고의 짧은 지면도 세월 따라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빙부聘父, 빙모聘母라는 한자를 보았을 때 누구를 지칭하는지 몰라 사전을 찾아보았었다. 지금은 장인, 장모로 순화되고 서壻라는 한자도 사위로 쉽게 풀어 쓴다. 예전에 아들과 사위 이름만 쓰던 남성의 시대에서 이제는 딸은 물론 며느리 이름까지 적는 양성시대로 변했다. 손바닥보다 작은 부고에서 시대의 흐름과 사회의 변천사를 배운다.

부고의 주인은 고인이리라. 망자를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이 부고의 목적 아니던가. 한데 망자의 죽음을 알리는 자리가 살아있는 자들의 잘난 면을 보여주는 알림장으로 변모된 지 오래다. 고인보다 고인의 이름 뒤에 성공한 자녀의 직업이 더욱 도드라져 보일 때면 세상사 얄팍한 민낯을 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이래저래 부고의 소임이 민망할 따름이다.

삶은 죽음을 향해가는 순례의 도정이다. 누구도 피해갈 수 없고 되돌아 나올 수 없는 외길이다. 요즘 부고를 읽다 보면 알 만한 사람들의 이름이 종종 눈에 띈다. 간혹 나와 친분이 있는 이도 있고, 오랫동안 지면에 오르락내리락하던 사회의 저명인사도 있다. 이는 내가 나이를 먹었다는 방증일 터이다. 삶이 유한하다는 걸 알면서도 아는 이름을 보면 괜스레 울적해진다.

앞서간 저들처럼 나도 언젠가 망각의 강을 건너는 날이 오리라. 지극히 평범한 내가 신문 부고란에 실릴 리는 만무하나 몇몇의 지인에게는 부음이 전해질 터. 그들에게 나는 어떤 사람으로 회억 될까. 하기야 그들에게 어떻게 비춰지는 게 뭔 대수겠는가. 살아있는 오늘이 진정한 내 모습인 것을.

찬 기운이 남아있는 신문을 넘긴다. 오늘도 부고 앞에서 한참을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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