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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9.01.27 16:04:50
  • 최종수정2019.01.27 16:04:50

조일희

수필가

샘이 바닥을 드러냈다. 채우지 않고 퍼내기만 한 까닭이다. 전조증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생각대로 쏟아지던 글줄기가 바람 빠진 작두새미 물처럼 쫄쫄거렸다. 벼린 은유 자리에 무딘 암유가 대신했다. 자연스레 글은 짓다 만 건물처럼 숭덩숭덩 구멍이 났다.

작품 하나를 끝내면 다음 작품이 걱정인 얼치기 글쟁이가 되었다. 비우고 채우는 일이 자연의 순리거늘 퍼 나르기만 했으니 애줄 없다. 다시 채울 수밖에. 누구는 신선한 샘을 찾아 낯선 땅을 여행하고, 누구는 아무도 없는 곳에서 새로운 샘을 파기도 한다는데. 고단한 일상을 벗어날 수 없는 나는 어떡하나. 혹시나 싶어 적바림해둔 글귀를 새삼 들쳐본다. 마음이 조급하니 감성도 무디어지나보다. 분명 진한 감동으로 적었을 글들이 메마른 마음을 적셔주지 못한다.

이러구러 갈증의 시간이 길어질까 두렵다. 편찮은 엄마를 뵈러 가서도 노트북을 껴안고 밤새 괴지 않은 생각을 짜내느라 투닥거린다. 그런 나를 보고 엄마는 끝내 한마디 하신다. "아니, 무슨 부귀영화를 보겠다고 그렇게 힘든 글을 쓴다냐." 어쭙잖게 작가연하는 딸년이 걱정스러운 게다. 나도 안 쓰고 싶다고 볼멘소리를 하려다 말고 스스로 묻는다. 아니다. 나는 쓰고 싶다. 내 안에 있는 슬픔과 분노를 토해내고 기쁨과 희망을 담아 어느 광고 문구처럼 더욱 맹렬히 쓰고 싶다.

나의 목마름을 해갈 시켜줄 시원은 어디 있는가. 여기저기 기웃대다 단비 같은 물줄기를 만났다. 바로 '고전독서낭독모임'이다. 혼자 읽기 어려운 주제의 책이나 방대한 분량에 차마 손대지 못한 책을 함께 읽는 모임이다. 바닥난 글 샘을 채우기에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참가 조건도 후하다. 책에 대한 관심, 지식에 대한 열망, 다름을 인정하는 열린 마음만 있으면 된단다. 더구나 팽팽한 젊음이 아닌 '5060' 늙수그레한 얼굴이 채움의 삯이라니.

모임 첫날, 비슷한 연령대라는 정보만을 갖고 서둘러 갔더니 내가 일등 도착이다. 이어 이 사람 저 사람 속속 도착한다. 서로 눈인사를 마치고 긴 책상에 앉으니 묘한 기분이 든다. 첫날, 새 책, 낯선 사람들이 주는 설렘이리라. 각자 이름을 쓴 네모 판을 테이블 위에 세워놓는다. 이름과 얼굴을 익히느라 면면을 바라보는데 다들 당차 보인다. 나만 푸석이 같아서 처음 품었던 다부진 마음이 자꾸 졸아 든다.

모임을 이끄는 주최자가 나이와 이름, 사는 곳 등 자신을 소개하란다. 낭독 만찬이 시작되기 전 맛보는 애피타이저 시간이다. 서로가 궁금한 듯 바라보는 눈빛이 총총 빛난다. 짐작한 대로 저마다의 자리에서 지력을 발휘하는 막강 내공의 소유자들이다. 내 차례다. 침을 꼴깍 삼키며 말을 하려는데 옆자리에 있던 선생님이 먼저 입을 연다.

"조일희 선생님, 본명이세요?"

"네, 그런데요."

"선생님 작가시죠· 선생님 작품 인터넷에서 읽었어요."

무명작가나 다름없는 나를 알아보다니. 온몸에 찌르르 전율이 인다. 대개는 내가 글을 쓴다고 하면 상대는 알았다는 듯 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좀 더 관심이 있는 사람은 무슨 장르의 글을 쓰느냐, 서점에 가면 당신의 책을 살 수 있느냐고 묻는다. 그럴 때면 아직 작품집이 없는 나로서는 참 난감하다. 지금도 그렇다. 가뜩이나 자신감을 잃고 쭈그러져 있는데 우연찮게 나를 아는 독자를 예서 만나니 마음이 가로퍼진다.

만찬이 시작되었다. 낭독은 처음이다. 익숙지 않아서인가. 읽을 차례를 기다리며 듣느라 긴장해서인가. 혼자 읽을 때보다 집중이 되지 않는다. 다행히 한 순배 돌자 조금씩 다른 이의 말소리가, 글의 내용이 귀에 들어온다. 낭독 중간 중간 자유롭게 서로의 생각을 나누었다. 바닥난 지식의 샘에 청량한 물을 흘러 보낸 시간. 나를 채우는 두 시간이 분초처럼 금세 지나갔다.

낭독은 한 잔의 감로수처럼 달디 달았다. 다음 시간에는 어떤 청수가 나의 샘을 채워 줄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어깨너머로 불어오는 바람이 톡 쏘는 탄산수처럼 상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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