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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일희

수필가

해가 바뀌어 나는 열네 살이 되었다. 한 살을 더 먹어도 달라진 건 없었다. 일력을 찢어 새날을 여는 일도, 가득 찬 요강을 비우는 일도 여전히 내 일이었다. 하나 보드레한 일력을 찢을 때마다 손이 곱았고 곱은 손만큼 마음이 시렸다. 초등학교 졸업식 날이 점점 다가왔기 때문이다.

방학 중인데도 하릴없이 학교에 갔다. 찬바람이 웽웽 부는 운동장을 맥없이 돌다 심심하면 애먼 돌멩이를 툭툭 차며 긴 하루를 보냈다. 행여 병태 꼭뒤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서였다. 어느 날은 그 애 집이 있는 한약방 골목길을 잔바람에 일렁이는 그네처럼 바장거리기도 했다. 하지만 겨울 방학이 끝나가도록 병태를 만날 수 없었다.

그 애를 처음 본 것은 세 해 전이었다. 학기 중간에 전학 온 나는 새 학교가 낯설었고 매사가 어설펐다. 그중에서도 짧은 시간 내 으슥한 변소에 다녀오는 일은 늘 아슬아슬하고 무서웠다. 그날도 변소에 가려고 긴 복도를 재바르게 걷다가 7반 교실 앞에 서 있는 한 남자애를 보았다. 힐끔 쳐다보다 그만 눈이 마주쳤다. 여물지 않은 가슴께가 감전이라도 된 듯 찌릿했다.

우리는 복도에서 운동장에서 자주 맞닥뜨렸다. 그렇다 보니 말 한 번 나눈 적 없는 그 애가 왠지 가깝게 느껴졌다. 4학년이 되자 일주일에 한 번씩 특별활동이라는 이름으로 외부 수업을 했다. 과학반에서 7반 남자애를 다시 만났다. 하마터면 반가움에 왈칵 아는 척을 할 뻔 했다. 얼굴이 하얗고 손가락이 긴, 그 애 이름이 병태라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여름 방학이 되었다. 늦은 저녁밥을 먹고 평상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두운 밤하늘에 총총 별이 빛났고 낡은 라디오에선 흥겨운 유행가가 흘러나왔다. '불타는 그 입술 처음으로 느꼈네. 사랑의 발자욱 끝없이 남기며~~' 노랫말이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 수많은 별이 와르르 내게 쏟아졌고, 평상 옆 다북쑥 모깃불이 분분한 향을 내뿜었다. 은은한 달빛 아래 핀 달맞이꽃이 나를 쳐다보며 배시시 웃었다.

과학반 선생님은 5학년이 된 병태와 나를 조장과 부조장으로 세우고 과학교실 관리를 맡겼다. 과학반 아이들은 식물 채집한 종이를 바꾸거나 과학 경진 대회 준비를 하며 오후 시간을 함께 보냈다. 우리는 무엇보다 인체 모형이 있는 어둑한 교실에서 무서운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제일 재밌어했다. 어느 날, 한 친구가 귀신 이야기를 하면서 갑자기 나를 가리키는 바람에 병태에게 와락 기대고 말았다. '얼음땡'이 된 병태는 한참을 고대로 앉아있었다.

과학 선생님이 6학년 담임선생님이 되었다. 선생님은 눈치 빠른 나를 앞자리에 앉히고선 곧잘 심부름을 시켰다. 특히 병태네 반에 갈 일이 생기면 꼭 나를 불렀다. 심부름하는 일이 좋긴 했지만 병태네 반에 갈 때면 후줄근한 옷이, 거무튀튀한 맨발이 유난히 신경 쓰였다. 병태네 선생님은 내가 교실에 들어서면 "병태야, 일희 왔다"며 큰 소리로 병태를 불러 세웠다. 그럴 때마다 병태와 나는 화단에 핀 봉숭아처럼 얼굴이 발개졌다.

그예 졸업식 날이 오고야 말았다. 생업에 바쁜 엄마는 못 온다며 짜장면 값을 내 손에 쥐여 주었다. 지금이야 아무 때나 먹을 수 있는 짜장면이 그때는 특별한 날에나 먹을 수 있는 별식이었다. 나도 졸업식 날 처음으로 동네 중국집에 갔다. 졸업식이 끝난 후 몰려드는 손님으로 중국집은 대목 저잣거리처럼 북적거렸다. 가족에게 축하를 받은 아이들은 입가에 반질반질한 짜장 소스를 묻혀가며 맛있게들 먹고 있었다.

빙 둘러보니 혼자 온 아이는 나밖에 없었다. 빛나는 졸업장을 옆자리에 앉혀놓고 꾸역꾸역 짜장면을 넘기는데 목이 메어왔다. 엄마도 생각나고 병태도 생각났다. 코끝이 찡하더니 윤기가 좔좔 흐르는 짜장면 위로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무도 오지 않은 졸업식도 슬펐지만 병태를 이제는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나를 더욱더 슬프게 했다.

수레바퀴 돌 듯 시간은 흘러갔다. 저 멀리서 교복 입은 병태가 걸어오고 있었다. 나는 단박에 병태를 알아보았다. 그 애가 다가올수록 눈치 없는 심장이 자꾸 나부댔다. 까까머리 병태와 단발머리 나는 반갑다는 말은커녕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서로 곁을 지나쳐 멀어져갔다.

그날, 나의 아름다운 어린 시절이 은행나무 위로 팔랑팔랑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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