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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8.06.14 17:47:48
  • 최종수정2018.06.14 17:47:48

여종숙씨의 작품 '산신'.

[충북일보] 불교 회화를 줄여서 불화라 부른다. 불교적 목적을 지닌 그림을 말한다.

불화는 좁은 의미로 법당에 모셔 놓고 예배하기 위한 그림과 넓은 의미로 불교도를 교화하기 위한 그림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불화는 불교가 시작되면서 그려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까지 알려진 최초의 불화는 인도 아잔타 석굴의 벽화들이다.

천문 여종숙(60) 작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불화에 입문 40여년을 오직 불화와 함께 살았다. 지금까지 그가 그린 작품만도 수백여 점에 달한다. 본인의 작품이 어느 절에 있는지도 다 기억할 수 없을 정도다.

불화 작가 천문 여종숙씨.

여 작가의 고향은 경북 상주.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 형부가 사다준 크레용으로 그림을 처음 그렸다. 당시 보통 크레용 색의 종류가 10가지를 넘지 못했으나 여 작가는 30가지가 넘는 색의 크레용으로 다양한 그림을 그렸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후 그의 실력은 남달랐다. 유치원이 없던 시절, 초교 입학 전부터 그림을 그려온데다 천부적인 소질도 겸비했기 때문이다. 소년소녀 신문 등에 작품을 출품하여 수차례 수상하는 등 능력을 인정 받기 시작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미술 선생님의 전문 지도로 체계적인 그림 공부를 하게 됐다.

그림의 시작은 형부가 사다준 크레용이었지만 그 후 오로지 그녀의 의지와 노력으로 실력을 쌓아갔다. 고 3이 되어 돈 안내고 그림을 배울 수 있는 방안이 무엇일까 생각하다 마곡사 5대 금어 적상 이익상 선생의 수제자로 입문하여 불화를 처음 접하게 됐다.

당시는 선생님이 주문을 받으면 함께 작업하는 방법으로 그림을 배웠다. 1980년도 처음으로 본인의 이름을 걸고 그린 불화가 관음보살이었다. 이 작품은 지금도 보물처럼 보관하고 있다.

신중탱화.

10여년 불화에 정진하며 오로지 그림만 그리던 그녀에게 시련이 닥쳤다. 30대 중반 위암 진단을 받은 것이다. 위 천공으로 병원에 입원했는데 위암 진단까지 내려진 것이다. 암 수술을 마치고 평소 잘아는 의사와 상의하니 '고향에 가서 휴양이나 하며 살라'고 말했다. 일종의 사형 선고였다.

집으로 돌아 온 그녀는 치료약도 먹지 않고 오직 그림에 매달렸다. 약이라면 홍삼 달인 물을 먹는 것이 전부였다. 그림에 빠져 아플 새도 없이 살았다고 그녀는 말한다. 돌이켜 생각하면 불화가 병을 낫게 한 것이다. 한번 붓을 잡으면 날새는 줄도 모르고 그리던 때였다. 고통도 아픔도 잊게 한 것이 오직 그림이었다.

여 작가는 2003년도 지금의 속리산 자락으로 이사를 했다. 보은군 속리산면 천왕봉길. 이 자리는 부처님이 정해준 곳이라는 생각이 든다. 환속한 스님과 결혼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부부가 절을 지으려 하는 곳 아래에 집이 있다며 그것을 사라고 권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그 친구는 이곳으로 이사 오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은 산과 계곡만 있는 이곳에 홀로 정착하여 신선처럼 그림을 그리며 살아가고 있다.

약사부처님.

집 앞으로 투명한 계곡물이 흐르고 뒷산과 앞산이 포근하게 감싸주어 천혜의 작업장이며 수행처다. 이 작업장에서 그녀는 하루 3~4시간 잠을 자며 불화에 전념하고 있다.

수백평의 텃밭에 하수오, 잔대, 도라지, 더덕, 구절초, 약쑥 등 온갖 약초를 재배한다. 쉬는 동안에는 잡초를 뽑느라 허리, 다리, 어깨를 움직이니 자연스레 운동이 된다. 60이 되었어도 30대처럼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천혜의 속리산 자락에서 오직 그림에만 정진하며 친환경 약초와 채소를 먹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여 작가가 그린 작품은 일본으로 건너간 호신불이 200여 점, 국내에 전파된 호신불 300여 점, 전국의 사찰 500여 곳에 불사가 모셔졌다. 또 상주 도림사 후불탱화, 신중탱화, 지장탱화, 비천상을 제작했으며 백운사의 오백나한 후불, 신중탱화, 산신탱화를 그렸다. 평생을 오직 불화에만 매달려 참으로 많은 양의 불화를 그린 것이다.

앞으로는 제작 양을 절반 정도로 줄일 계획이다. 주문을 적절히 조절하면서, 전시장에 전시할 작품을 그리는데 매진할 생각이다. 자신의 작품 세계를 일목요연 전시할 아담한 전시장을 만드는 것이 그녀의 마지막 꿈이기 때문이다.

/ 조무주 문화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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