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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석

숲 해설가

우리 집 신발장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에 오래된 구두 한 켤레가 있다. 납작한 신발들은 구두코가 안쪽을 향하여 나란히 있지만 오래된 굽 높은 구두 오직 한 켤레만 구두코가 바깥쪽을 향하여 언제라도 뚜벅뚜벅 걸어 나올 자세로 준비되어 있다. 오래된 구두지만 결코 낡거나 더럽지 않고 새 것처럼 반짝반짝 정갈하고 품위 있고 아름답고 우아하기까지 하다.

나의 작은 키는 늘 콤플렉스였다. 꼭 한 뼘만 컸으면 하는 소망은 성인이 되어서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러기에 나의 이상형은 훤칠한 키를 가진 사람 이였다. 그러나 그 것도 뜻대로 되지 않았다. 나는 키가 고만고만한 사람과 결혼했다. 모든 것이 서투르고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것이 어려워서 허둥대던 결혼 생활은 키 작은 나의 콤플렉스를 잊게 해 주었다.

아이들 키가 내 키보다 더 커져서 중학교를 다니고 있을 무렵 우연히 결혼 후 소식이 끊긴 친구를 보았다. 내가 올려다보아야 할 만큼 큰 키에 굽 높은 신발을 신은 그는 우아하고 아름다웠으면 당당해 보였다. 반가웠지만 감히 내가 너의 친구라고 나설 수가 없었다. 초라한 내 모습에 얼른 자리를 피해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가 신은 굽 높은 구두가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그 후 나의 삶은 너무 무의미 하고 짜증스러웠으며 일상이 권태로워지기 시작했다. 일과 술밖에 모르는 남편과 경제적 궁핍함과 시댁과의 불협화음은 나의 숨통을 조이고 있었다. 그 때 마다 친구가 신고 있던 구두가 생각났고 그 구두를 신으면 나의 삶이 달라질 것만 같았다.

남편과 말다툼으로 속이 상했던 어느 날 나는 지갑만 챙기고 남편에게 말 한마디 없이 서울로 향했다. 버스를 타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간 나는 택시를 타고 가장 크고 유명한 백화점으로 갔다. 그곳의 사람들은 잘 차려 입었고 자신감이 넘쳤으며 당당해 보였다. 시골에서 상경한 나는 스스로 초라했고 주눅이 들어 있었다. 누구나 떳떳하게 쇼핑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것을 잠시 잊은 채 두리번거렸다. 지상 육층의 쇼핑 공간을 서너 번 할 일 없이 오르락내리락 한 끝에 나 스스로 당당하리라 주문을 걸고 다시 쇼핑에 나섰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굽이 높은 구두였다. 키 작은 내가 신으면 너무도 잘 어울 것 같았다. 한 뼘 높이의 굽에는 반짝이는 가죽을 덧 댔고 구두코 앞에는 앙증맞은 리본이 단정했다. 용기가 나지 않아 들어가지 못하고 멀리서 그 구두를 살펴보고는 다시 또 한 바퀴를 돌았다. 다시 돌아와 구두 앞에 서서 한참을 바라봤고 다시 발길을 돌렸다. 세 번째 용기를 내어 매장 안으로 들어가 그 신발을 신어 보았다. 내발에 꼭 맞는 구두는 이리보고 저리 보아도 어여쁘다. 키는 한 뼘이 커 보였고 왠지 자신감이 생기는 것 같았다. 너무 잘 어울린 다는 점원의 감언이설이 아니어도 나는 벌써 그 신발에 혼을 빼앗겨 버렸다. 나는 주저 없이 그 구두를 그 당시 우리 생활비의 상당부분을 주고 사고 말았다. 그 신발을 사들고 버스를 탔을 때 후회가 밀려왔고 내가 무슨 짓을 한 것인지 알아차리고 정신이 번쩍 들었으나 마음은 마냥 즐겁고 행복했다.

그 후 그 구두를 신을 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았다. 모든 것이 갖춰져야 그 신발을 신을 수 있다는 막연한 고집 때문에 구두를 신을 기회는 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흘렀고 아이들이 자라서 혼사 이야기가 오가고 마침내 상견례 자리가 마련되었다. 드디어 그날 제대로 차려 입고 고이 모셔둔 구두를 신고 집을 나섰다. 우아하고 고상하게 그리고 품위 있게 걸었다. 나는 키가 훌쩍 커 보였고 스스로 품위 있는 중년 여인이라고 자부했다. 그러나 상견례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나는 발이 불편하여 고통스러웠다. 그동안 굽이 낮고 편한 신발에 익숙한 나의 발이 아름답고 멋진 굽 높은 구두를 완강히 거부 하였다. 한 뼘의 키를 키울 수 있는 기회는 딱 한번으로 끝났다. 다시 그 자리에 얌전히 모셔둔 구두는 신발장에서 다시 밖으로 나갈 날을 또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너무 오래된 그 구두를 다시 신을 날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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