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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서인문도(書人問道) - 풍수화(風水火)

한국, 경제 ·무력보단 소프트파워 키워야

  • 웹출고시간2015.06.18 14:50:15
  • 최종수정2015.06.18 16:06:15

풍수화(風水火)

저자 : 김용운, 출판 : 맥스미디어, 출간 : 2014년 12월 11일

평소 존경하던 거장들을 직접 뵙는 것이 서인문도를 진행하면서 생긴 또 하나의 개인적 즐거움이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수학자로서 철학을 넘어 역사의 영역까지 넘나드는 김용운 선생이 바로 그런 거장의 한 분이다.

'풍수화'에는 그가 역사를 보는 관점이라 할 원형사관이 담겨있다. 자연환경, 민족사 초기의 역사적 경험, 지정학적 차이가 민족마다 서로 다른 성격 또는 집단무의식이라 할 수 있는 원형을 만들어내고, 그 원형에 따라 유사한 역사적 상황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 원형사관의 골자다.

민족이라는 강으로 들어오는 지류는 시대마다 변하지만, 큰 강 자체는 그대로 흘러가고 이어지는 것처럼 말이다.

가령 일본과 한국의 풍토 차이가 각국의 원형에 미치는 영향은 어떨까· 일본은 인간의 힘으론 어쩔 도리가 없는 자연재해를 주로 겪으면서 순응적 태도, 질서, 침착성을 형성해온 반면, 주로 외부의 침략을 포함한 인재(人災)를 겪어온 한민족에겐 그 재난을 방비해내지 못한 위정자에 대한 원망의 정서가 강력하다는 것이다.

한민족의 원형, 나아가 한중일 삼국의 원형이 뒤얽힌 동북아의 지정학을 풀어내는 『풍수화』의 이야기는 아직도 그 위치가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백강전투 이야기로부터 시작된다.

-백강전투가 왜 중요한가? 왜 그처럼 중요한 역사가 소홀히 다루어졌을까?

"백제가 완전히 멸망한 시점은 사비성 함락(서기660년)이 아니라, 백제부흥을 시도한 백제-왜(일본) 연합군의 백강전투(서기663년)패배 때로 보아야 한다. 백강전투는 백제와 왜의 신라에 대한 깊은 원한의 뿌리가 되었다. 신라는 그 후 사대적 노선을 걸었고, 일본은 당나라 영향권을 벗어나 군사확대노선을 걸으며 한일간 원형의 차이가 생겨난다. 중국은 백강전투 이후에는 한반도에 직접 침략하기보다는 달래고 압박하고 분할하는 전략으로 전환했다. 그 후 백제지역의 뿌리깊은 저항정신의 기원도 백강전투이다. 백강전투에서 최대이익을 얻었던 중국은 한반도의 북위 38~39도선을, 순망치한이란 표현처럼 자신의 영향력을 지키는 소중한 입술로 생각하게 되었다. 백강전투로 만들어진 기본구도에 19세기 이후 미국과 러시아까지 개입하면서 한반도 지정학이 형성된 것이다. 이처럼 한민족의 원형, 지정학, 주변국의 대외노선에까지 근본적 영향을 미친 중대한 역사를 경시해온 것은 중국에 대한 사대주의와 일제 식민사관의 영향이다. 중국에 대해 정통성을 주장 못하는 사대 심리와 일본이 패전한 전투를 다루고 싶지 않은 식민사관의 영향 때문에 깊이 다루어지지 않은 것이다."

-한중일의 민족원형을 바람, 물, 불로 설명했는데?

"최치원이 처음으로 풍류라는 표현을 썼다. 한국적 원형은 자연스러운 문화적 품격이다. 신바람, 풍류, 멋, 문화가 다 여기 해당하고, 이를 담아내는 것이 문화민족, 선비정신이다. 한민족은 내부적으로도 다른 나라에 비해 강한 권력이 불필요한 화평한 공동체였다. 일본의 화(火)는 양면성이 있다. 화산열도에서 천재지변에 대처하고 단결하면서 개인적 겸손과 억제, 집단적 단결이 형성되었다. 문제는 비굴할 만큼 겸손한(和) 개인이, 뭉치면 오만하게 돌변하고 도발(火)한다는 것이다. 백강전투에서 비롯된 신라에 대한 보복심이 변형되어, 주변국 침략과 정복을 정당화하는 소위 팔굉일우 정신으로 발전하게 된다. 섬에서 탈출하고픈 심리 또는 대륙 컴플렉스 때문에 침략을 자기운명으로 하게 되었다고나 할까· 2차 대전 후 일본의 점령군 사령관이던 맥아더도 이 점을 '강자에 비굴하고 약자에 오만'하다고 표현하였다. 중국은 큰 바다의 물(水)처럼 강력한 흡인력으로, 다양한 이질적 요소를 자신의 것으로 융합해내는 중화사상 같은 성격을 가지고 있다. 만리장성 안으로 들어온 것은 다 빨아들이는 홍수와 같다. 과거 중국은 통일하면 요동으로 진출하는 패턴을 반복했는데, 수와 당의 한반도 침략이 연이어 실패한 이후에는 침략보다는 대륙의 통일을 유지하면서 주변국에 대해 이이제이의 분할통치전략으로 전환했다. 이런 점은 최근 중국이 내세우는 중국몽(中國夢)이나 굴기가 공격적으로 흐르는 것을 경계하게 하는 교훈이 될 것이다."


-백제와 왜의 역사적 관계에 대한 분석이 흥미로운데?

"각종 자료로 볼 때 백제와 왜는 언어, 문화, 혈연적으로 연결되어 큰 나라와 분국의 관계를 이루었다. 일본에서 과거 백제를 큰 나라라는 뜻의 구다라로 부른 점, 백제멸망 후 백제계가 왜의 학계와 교육계를 장악한 점, 일본 황실언어에 백제어가 전승된 점, 왜에 백제의 지방행정 조직관인 담로 격으로 백제 왕자가 파견되어 있었던 점 등 많은 근거를 들 수 있다. 백제멸망 후 일본에 정착한 백제계와 신라계의 대립은 겐시-헤이시 가문의 대립을 거쳐 내려오고, 백제계의 뿌리는 한국침략을 추진한 정한론에 이어져 오늘에까지 이른다. 이런 백제계 뿌리의 현실을 절대 수용할 수 없는 일본으로선, 역사서술에서 임나일본부론, 일선동조론처럼 역사적 열등감을 우월감으로 전환하는 왜곡변조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신라중심의 삼국사기에서 백제사를 묵살한 것도 일본의 역사변조에 도움을 주었다. 현시점에서는 이런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증거를 발굴하고 보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상호 적개심만 있는 상태에서는 그 모든 것들이 무의미하므로, 서로 냉철한 역사적 대화가 가능하게 하도록 소프트파워를 키우는 접근을 하는 것이 좋다."

-역사적 교훈 위에서 오늘날 중국과 일본에 대한 대처를 생각해본다면?

"당나라 고조는 신라와 연합해 백제를 멸망시킨 후, 신라와 구백제세력의 화해를 조율하기 위해 당-신라-구백제의 3자 회담을 주선했다. 중국의 외교력과 위상의 극대화를 노리고 한반도분할통치 차원에서 분할-견제-견인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이 전략이 오늘의 6자 회담에까지 이어진다. 당시 당고조의 심정과 오늘 시진핑 주석의 심정이 일맥상통할 것이다. 신숙주가 1471년 해동제국기에서 일본과 화(和)를 유지해야 한다고 유언한 것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일본과의 외교는 단호하되 품격있게 해야 한다. 천황을 흠집 내고 자존심에 상처를 주거나 제3자에게 험담하기보다는, 스스로 반성하도록 일본 내부를 파고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북한문제를 푸는 데도 자금력 등 일본의 협력이 꼭 필요하다. 중국의 동북공정과 일본의 식민사관은 뿌리가 같다. 중국의 역사왜곡엔 한마디도 못하면서, 일본의 역사왜곡만 문제 삼는 것도 옳지 않다. 한국은 경제와 무력으로 대국적 전략을 구사하긴 어려우니, 최대한 문화의 소프트파워를 키우는 것이 현실의 절박한 생존과제이다."

-남북통일의 방법론으로 영세중립(永世中立)론을 주장했다. 고려가 몽고에 패하기 전까지 자주노선을 취하긴 했지만, 신라가 당나라와 연합해 통일을 추구한 이후 오늘까지 한반도의 통일국가가 자주적 중립노선을 관철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았는데?

"분단상황에서 중립을 주장하면, 한반도에 가까운 중국의 영향력을 극대화하는데 이용될 수 있다는 문제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현재 북한 핵문제와 통일을 해결해야 할 상황에서 최대의 지상과제는 비핵화이다. 영세중립론은 비핵화 실현을 위해 주변국과 북한을 동시에 설득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수단이 아닌가!"

개인적으로는 여전히 수학에서 최고의 학문적 위안을 얻는다면서, 난해한 기교로 전락해 대한민국 최고의 낭비가 된 수학교육을 개혁해야 한다는 열정을 토로하는 당대의 수학자 김용운 선생에게 팔순을 훌쩍 넘어서도 역사를 연구하게 하는 열정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애국이란 말조차 좋아하지 않지만, 자식과 후손들에게 더 좋은 나라와 환경을 만들어줘야 하는 것이 책임이란 생각에 우리의 과거와 미래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역사를 연구한다는 김용운 선생이 인터뷰를 시작할 때 던진 첫마디가 강렬하다. '크게 놀아야 합니다.' 크게 보고 크게 생각하고 크게 움직이지 않으면 헤쳐가기 어렵다는 뜻일 게다. 대한민국! 크게 놀자!.

△저자소개 김용운

1927년생. 일본 와세다 대학, 미국 어번 대학원, 캐나다 앨버타 대학원에서 각각 이학석사 및 박사과정 수료. 수학사학회 회장, 한양대 대학원장, 방송문화진흥원 이사장 역임. 5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하며 철학자, 수학자, 문명비평가로서 활동. 『한국어는 신라어 일본어는 백제어』, 『천황은 백제어로 말한다』, 『인간학으로서의 수학』 등 100여 권의 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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