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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서인문도(書人問道) -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

유럽 계몽주의 대가들, 공자철학 영향 받았다

  • 웹출고시간2015.08.20 14:27:04
  • 최종수정2015.08.20 19:37:30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

저자 : 황태연, 출판 : 김영사 , 출간 : 2015.05.25

- 이 책의 핵심주장을 요약한다면

"공자의 사상이 18세기까지도 마녀화형과 파문, 분서(焚書)가 주름잡던 유럽을 깨워 근대유럽을 창조한 계몽주의의 뿌리이자 정체라는 것이다. 볼테르, 라이프니쯔, 루소, 케네, 흄, 애덤 스미스 등 18세기 유럽 최고 지식인들에 미친 공자의 영향을 문헌고증을 통해 밝혔다. 계몽주의 대가들은, (흔히 계몽주의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여겨지는) 그리스철학보다 공맹사상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았고, 심지어 공맹사상을 바탕으로 그리스 철학을 탄핵했다."

- 계몽주의 대가들이 공자철학에서 받은 영향을 입증할 근거들이 어떤 것인가

"대표적 계몽철학자 볼테르는 『국민의 도덕과 정신에 관한 평론』, 『철학사전』 등에서 공자의 사상을 그리스 철학이나 기독교 교리보다 높게 다뤘다. 중농주의 경제학의 창시자 케네는 마지막 저작 『중국의 전제주의』를 통해 자기 이론의 바탕에 공맹철학이 있음을 집약적으로 드러냈다. 이 외에도 라이프니쯔, 볼프 등 계몽주의 대가들과 공자사상과의 연관성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인터뷰를 하는 김민석 교수

- 공맹사상(孔孟思想)의 핵심을 공감도덕론(共感道德論)으로 해석했는데

"공자는 인애(仁愛), 측은지심, 연민 등 천성적인 공감감정을 도덕의 실마리로 봤고, 공자와 맹자는 이런 도덕의 단초를 덕성으로 승화시키는 수신(修身)을 강조했다. '하늘이 명한 것을 성(性)이라고 하고, 성을 따르는 것을 도(道)라고 하며, 도를 닦는 것을 교(敎)라고 한다'는 중용의 근본명제나, 맹자의 여민동락(與民同樂), 주역의 여민동환(與民同患), 불교의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다 공감을 강조한 것이다. 인간을 '인간에 대한 늑대'이자 '자연의 정복자'로 귀결시켜 파탄한 유럽 합리주의와 달리, 보편적 생명애와 공감을 강조하는 공자철학에서 인간은 '인간의 벗'이고 '자연의 손님'이다."

- 공맹사상의 국가론을 복지국가론의 원조라고 해석한 근거는

"공맹철학에서 국가의 존재의의는 양민(養民 생계, 경제, 복지)과 교민(敎民 교육, 문화)을 포괄하는 인정(仁政)이다. 반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국가론은 국방·외교·치안에 한정된 야경(夜警)국가로 이어졌다."

- 공맹의 경제철학은 유럽에 어떤 영향을 미쳤나

"논어의 무위이치(無爲而治)사상이 아담 스미스의 자유시장론에 영향을 미친 충분한 정황증거를 다뤘다. 공자의 천인상조(天人相助)사상과 유위이치(有爲而治)는 공자 스스로 실험하기도 했던 '공정한 사회적 인프라-가벼운 세금-교육복지-균형분배' 등 경제·복지정책적 요소를 담고 있다. 최대한의 무위이치와 최소한의 유위이치를 결합한 공자의 경제철학은 균형과 조화의 부민(富民)경제철학이다. 공자사상의 유토피아인 대동(大同)사회는 노후복지, 유아복지, 민생복지, 보건복지가 결합된 복지국가론의 기초가 되었다. 독일에서 꽃피운 질서자유주의론과도 철학적 맥락이 같다. 스위스의 폰 할러는 중국의 농본주의만을 수용한 케네와 달리, 사마천의 농상(農商)양본주의와 무위이치를 결합하여 19세기초 10여 년 만에 영세중립국 스위스를 지상낙원으로 끌어올렸다."

- 공맹의 교육철학에 대한 해석이 흥미롭다

'공자 잠든 유럽을 깨우다' 저자 황태연 교수

"대학의 '천자에서 서인까지 모두 수신을 근본으로 삼는다'와 논어의 '교육에는 차별이 없다'(유교무류有敎無類)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귀족중심 교육관과 달리 공자의 만민평등교육사상을 담고 있다. 이런 바탕에서 조선시대의 서당교육이 이루어지고, 성균관의 부자유생에게도 무상교육, 무상숙식이 제공되는 등 상당한 교육복지가 이미 존재했던 것이다."

- 영·정조 시대의 조선을 세계 1위국가로 본 근거는

"중장기적 생활수준을 보여주는 총요소생산성으로 보면, 18세기에 조선이 중국보다, 중국이 영국 런던보다 잘 살았다. 문화적으로도 당시 조선은 세계최고수준이었다. 경제와 사상에서 우위이던 조선과 동아시아가 오만과 쇄국으로 정체와 퇴보의 늪에 빠진 사이, 유럽은 동양의 사상들을 수입하며 일어선 것이다. 문닫고 오만하면 망하는 것은 역사의 보편적 교훈이다."

- 과거 동아시아의 사대조공 질서, 그리고 오늘의 중국을 어찌 보는가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섬기는 사소(事小)와 작은 나라가 큰 나라를 섬기는 사대(事大)의 동아시아 선린외교는, 문명개화를 명분으로 이웃을 폭력적으로 침탈한 제국주의에 비해서는 상대적 장점이 있다. 물론 UN과 국제법이 등장하기 이전의 얘기다. 그런 중국에서 공산주의가 아닌 공자사상을 앞세우고 있다. 대한민국은 간체자가 아닌 본래의 한자를 유지해온 유일한 나라이자, 공자사상의 각종 문화유산보전과 고전번역능력에서 중국을 훨씬 앞지른다. 중국은 공자로 회귀하고 있는데, 막상 공자의 해석에선 대한민국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 문명의 성공과 실패요인을 설명한 문명패치워크이론을 쉽게 이야기해달라

"역사 속 모든 융성한 문명은 '짜깁기'이다. 문명은 순혈(純血)도 아니고, 정체성 없이 '잡스러운 것'도 아니다. 화학적으로 '융합'되어 단일화되는 것도 아니며, 반드시 갈등하고 충돌하는 것도 아니다. 정체성을 바탕으로 교류하고, 서로 영향을 미쳐 갈등 없이 짜깁기되는 것이다. 짜깁기된 축구공이 단단한 것처럼 말이다. 서구에서 등장한 '서구화론', '문명충돌론', '세계화론', '문명융합론'들은 다 오류이다."

- 오래 전부터 주창해온 중도개혁주의를 공맹사상의 관점에서 설명한다면

"극단을 피하고 개혁을 실현하는 중용의 철학과 정치가 중도개혁주의의 핵심이다. 지속가능한 개혁은 역사적으로 중도세력의 몫이었다. 극단적 진보는 기존문명을 폐기했고, 새로 건설해도 소련처럼 곧 무너졌다. 지속적 기술발전에 맞춰 법과 제도를 바꿔주는 개혁이 없으면 공동체는 퇴보한다. 중도개혁주의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

- DJP연합론과 지역등권론으로 첫 개혁정권(김대중 정부)탄생의 이론적 기초를 놓았다. 중도-진보 계급연합론에 기초한 야권연대론, 그리고 최근 진보진영에서 강조되는 소득주도성장론에 대한 평가는· 어떤 정치체제로 가야 하나·

"선거전략상 중원, 중산층, 중도를 포기하는 전략은 절대 승리 못한다. 극단적 좌파까지를 포괄하는 야권연대전략은 필패(必敗)의 좌편향 전략이다. 성장과 분배, 수요와 공급은 자전거의 두 바퀴이다. 소득주도성장론이 전통적 진보의 틀을 벗어나 성장론에 주목하는 것은 긍정적이지만, 계급차별적인 기업중과세 정책 또는 '이름만 바꾼 분배경제론'이 되면 시장과 성장에 장애가 될 것이다. 부자증세가 필요하다고 꼭 기업에 중과세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근로자 뿐 아니라 기업도 가급적 세금은 낮은 것이 좋다. 외교·안보·국방·통일 등 초당적 분야를 국가수반인 대통령에 맡기고, 당파간 갈등이 존재하는 다른 내정을 총리에게 맡기는 분권형 대통령제가 바람직하다."

인터뷰를 마치면서 '역시 학자는 학문으로 말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법관이 판결로 말해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우리 사회에선 학자의 정치적 발언과 참여가 종종 논쟁의 대상이 되곤 한다. 저자는 한 때 깊숙이 현실정치에 참여했고, 그 후 오랜 동안 오로지 학문적 작업에 열중해왔다. 그 입장에 동의하고 않고를 떠나, 저자처럼 단단한 학문적 내공으로 현실에 적용되는 정치이론을 펼쳐내는 이론가를 보는 것은 신선한 자극이다. 깊은 학문적 바탕 없이 가벼운 정치적 말장난을 즐기는 이른바 폴리페서(정치교수)들에 지친 때문 아닐까 싶다. 인터뷰가 끝난 후 현 야권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저자가 던져준 중요한 해법 하나를 곰곰이 되새겨본다.


◇ 저자 황태연은?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서울대 외교학과. 독일 괴테대학 박사. 영어, 중국어, 불어, 독어, 러시아어의 원전 독해가 가능하다. 치열하고 다양한 문헌고증과 방대한 지적 섭렵으로 동서양 철학 모두를 꿰뚫고 있는 탁월한 학자.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의 이론적 근거가 된 지역등권론 등 다양한 현실정치적 전략개념을 제시한 이론가이기도 하다. 다음 저서로 구상 중인 (가제) 『공자, 미국을 건국하다』에서는 벤자민 프랭클린, 토마스 제퍼슨 등 미국 건국 선구자들의 공자 학습이 미국 독립혁명의 철학적 기반으로 파고들었음을 입증하려고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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