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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10.18 17:38:35
  • 최종수정2023.10.18 17:38:45

안호종

프리랜서

업신여길 능(凌), 하늘 소(霄) 꽃 화(華)

능소화 라는 꽃을 아시나요?

직역하면 즉, 하늘을 업신여기며 피는 꽃 이라는 뜻인데요. 보통 꽃이 피는 절기를 생각하면 봄이 떠오르시죠? 따스한 햇살, 눈이 아닌 비가 내리고, 영하의 추위가 끝나는 시점부터 각양 각색의 꽃들이 만개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능소화는 8월에 만개하는 꽃인데요. 긴 긴 장마와 숱한 태풍 그리고 무더위를 이겨내고 또 정통으로 맞이하며 피는 꽃입니다. 새로 자라나는 식물에겐 거의 자라지 말라는 저주에 가까운 이 계절에, 능소화는 마치 하늘을 업신여긴다며 피어나기 때문에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때는 중국 명나라. 어머니를 일찍이 여의고 부친과 계모 진 씨 밑에서 자란 한 아이는, 생부마저 죽자 계모에 의해 학대를 당합니다. 그리곤 어릴 적에 산중에 버려집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설홍. 그러나 봉황의 도움으로 살아가던 중 8세가 되었을 때, 염라대왕은 이 아이가 옥황상제에게 바치는 천도를 훔쳐먹었다고 생각하여 잡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염라는 설홍에겐 죄가 없고 오히려 불쌍한 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내 염라는 선계로 설홍을 데리고 가서 친모를 만나게 해주곤, 설홍을 인간계로 돌려보내 줍니다.

그러나 설홍이 살아 있음을 계모 안 진씨는 다시 그에게 독을 먹여 죽이려 하나, 설홍은 죽지 않고 털이 나서 짐승 같이 변하게 됩니다. 괴물이 된 설홍은 노리개로 팔려 다니며 온갖 고초를 겪다가, 꿈에 한 노인이 준 선약을 먹고 다시 인간이 됩니다. 때가 흘러 성년이 된 설홍은, 은사인 한 도승을 만나 병서와 무예를 연마하고 있었는데요. 그러던 중 소주(중국의 동남부 지역)에서 '왕승상'이란 사람이 노비에 의해 죽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왕승상은 자신의 딸 왕소저의 꿈에 나타나 자신은 노비에 의해 죽었고 설홍과 혼례를 해야한다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윽고 소주에 도착한 설홍은 때마침 왕소저를 겁탈하러 온 왕승상의 원수, 돌쇠를 죽입니다. 이후 둘은 혼례를 치루어 부부가 됩니다.

형의 복수를 하러온 돌쇠의 동생마저도 처단한 후 과거에 급제한 설홍은 흉노와의 전쟁에 뛰어들게 됩니다. 그 전쟁에서 고립된 황제를 구출하고 적장의 목을 베는 등 혁혁한 공을 세운 설홍은 결국 강동 대원수에 책봉을 받고 행복하게 살게 됩니다.

한 떨기 능소화 같았던 설홍의 삶. 비교와 갈등이 일상이 된 우리네 사회에 많은 울림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능소화의 의미를 알고 나니 능소화를 더욱더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겠지요? 비록 지금은 다 졌지만 때가 되면 다시 필 것입니다. 그러니 우린, 내년 늦여름의 흐드러지게 핀 능소화와 설홍을 기쁜 마음으로 기다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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