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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3.01.17 16:36:57
  • 최종수정2023.01.19 14:33:41

이정민

청주시청 도시계획상임기획단·공학박사

어린왕자가 사는 작은 행성, B-612에서는 의자를 조금만 움직여 앉으면 노을을 볼 수 있다. 너무 슬플 때면 해지는 걸 바라보던 어린왕자는 어느 날 마흔네 번이나 노을을 본 적이 있다고 했다. 마흔네 번이나 노을을 보고 싶은 하루는 얼마나 쓸쓸했을까. 그럼에도, 그럴 때마다 위로를 주는 무엇이 있다는 건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어린왕자는 "해가 지는 것을 보려면 해가 질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해가 지는 쪽까지 가야해"라고 지구인에게 조언한다. 그러나 사소하고 반복되는 일상과 잦은 날씨의 변화 안에서 서쪽으로 몸을 향하고, 해가 지는 걸 오래 응시하는 일은 별거 없어 보이지만 동시에 쉽지 않은 일이기도 하다.
# 포르투(Porto), 나의 선셋 포인트

유럽의 도시들이 그렇지만 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의 노을은 특히 아름답다. 도우루강을 사이에 두고 북쪽은 히베이라 그란드(Ribeira Grande) 역사지구, 남쪽은 가이아(Vila Nova de Gaia) 지역이다. 도우루강을 따라 산책로와 노천식당들이 길게 이어져 있다. 삐죽하게 솟은 건축물 없이, 주홍색 계통의 경사지붕들과 성당의 첨탑이 언덕을 채운다.

골목길 곳곳에 와이너리가 숨어있는 가이아에서 히베이라 그란드의 수백 개 성당이 만들어내는 분홍빛 실루엣을 바라보는 일도 즐겁고, 히베이라 그란드에서 가이아와 포트와인(Port Wine, 와인의 변질을 막기 위해 포도 발효가 끝난 후 브랜디를 섞어 만든 와인) 오크 통을 실은 배가 붉게 어우러진 풍경에도 감탄이 인다. 히베이라 광장은 '비긴어게인2' 포르투의 버스킹 장소이기도 하다. 노을을 보기에, 굳이 어디라도 상관없다.

그중에서도 동 루이스 1세 다리, 모루 정원, 세라 두 필라르 수도원이 선셋 포인트로 유명하다. 이 곳에서는 도우루강 저편으로 가이아와 히베이라 그란데에 내려앉는 노을이 한 시야에 들어온다. 도우루(Douro)는 '금빛'이라고 하니, 이미 강에 노을이 깃들어 있다. 해지는 시간, 모루 정원에서 해지는 곳을 향해 앉아 와인 한 잔 들고 있으면 혼자든 둘이든 여럿이든 상관없이 눈길 닿는 곳마다 탄성이 인다. 고요하거나, 사랑하거나, 저마다 환희에 찬.

# 노을 볼 권리(The Right to See the Sunset)

노을을 보는 데에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해지는 시간에 누릴 수 있는 자유와 노을을 조망할 수 있는 장소. 해지는 시간, 노을을 보는 일을 제외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를 누릴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분주하게 저녁밥을 짓거나, 야근을 하거나, 꽉 막힌 도로에 갇혀 있다. 게다가 겨울의 노을은 퇴근보다 빠르다. 고층건물이 빼곡하게 들어선 도시에서는 노을 없이 밤이 오기도 한다.

노을을 조망할 수 있는 장소도 도시에서 흔치 않다. 서쪽을 향해 있는 아름답고 너른 공공공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사는 도시의 선셋 포인트는 어디인가? 청주에는 가까이에 수암골이 있고, 멀리 정북동토성이 있다. 수암골에는 돗자리를 펴고 앉아 서쪽 하늘을 바라보기에 좋은 너른 공간이 없고, 몇몇 주변의 리듬을 깨트린 고층 건축물이 시야를 가린다. 정북동토성은 가는 길도 좁고, 주변은 황량하며, 퇴근시간에 접근하는 것은 더 어렵다.

내가 사는 도시, 집 가까이에 노을을 볼 수 있는 장소가 많으면 좋겠다. 굳이 특별한 곳을 찾아가지 않아도 노을을 감상할 수 있는 도시에서의 삶은 얼마나 풍요로울까. 미세먼지가 잦아든 하늘에 선명하게 노을이 고인다. 굳이 어린왕자처럼 슬플 때가 아니어도, 노을은 공평하게 그것을 보는 모두를 위로한다. 스스로에게 노을 볼 권리를 주겠다고, 2023년 버킷 리스트에 쓴다.

/ 이정민의 도시유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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