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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옥

구연동화 강사·전 수필가

지나온 세월 내가 흘린 눈물을 생각해본다. 뛰어놀다 넘어져서 무릎이 깨졌을 때 흘리던 눈물과는 다른 내 영혼 깊은 곳에서 만났던 눈물을 떠올린다. 어릴 적에 잃어버렸던 동생을 찾아 안고 우시는 아버지를 보는 순간 내 속에서 뜨겁게 솟구치던 눈물, 사랑하는 이들을 놓고 기도하면서 흘린 눈물, 부모님께서 세상을 떠나셨을 때 흘린 눈물이 그런 눈물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엉뚱하게도 친구 딸 결혼식에서 또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야 말았다.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아름다운 음악가 신부와 멋있고 능력 있는 의사 신랑을 축복하는 남성 이중창의 아름다운 하모니는 축하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순간, 순백의 웨딩드레스가 가늘게 떨리는가 싶더니 신부의 고운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조명을 받아 보석처럼 반짝였다. 신랑이 장갑 낀 손을 들어 가만히 닦아주는 모습을 보며 나도 그만 울어버렸다. 잘 어울리는 한 쌍의 원앙이라고 흐뭇하던 마음이 애잔한 아픔에 닿은 것이다.

곱게 단장하고 신부 어머니 석에 앉아 있는 표정 없는 내 친구를 본다. 딸이 결혼한다고 해도 해야 할 일을 생각해내지 못하는 어머니! 아기가 되어버린 어머니 대신 혼수는 물론 폐백 음식까지도 손수 준비한 딸아이의 쓰리고 아픈 마음을 알기에….

친구는 운영하는 피아노 교습소와 두 딸이 세상 전부인 듯이 살았다. 자신에게는 매사에 절제하였지만, 딸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 부었다. 총명하고 재능 있는 딸아이는 처음에는 피아노에서 두각을 나타내더니 다음은 바이올린이었다. 매주 개인지도를 받기 위해 서울 오르내리기를 십 수 년이다. 그러면서 남들처럼 유학을 보내지 못해 가슴 아파했다. 딸아이는 타고난 재능과 엄마의 정성으로 음악가의 길을 탄탄하게 다져갔다. 아름다운 선율, 절도 있는 몸놀림, 꿈속에서인 양 그윽한 표정, 탁월한 예술적 감수성에 오늘의 신랑도 매료되었지 싶다.

친구는 처음에는 길을 자주 잃어버리더니 한 가지씩 잊어갔다. 지나온 풋풋한 웃음, 애잔한 눈물, 함께 나눈 사랑, 주고받은 말들, 모두를 잊어간다. 순한 아이처럼 앉으라면 앉고 서라면 서는 신부 어머니를 바라보는 마음은 조마조마하다. 어떤 돌발사태도 일어나지 않기만을 바라는 마음이다. 자랑스러운 딸이 그녀의 삶을 지탱해주는 의미였고 자존심이었는데 오늘 이 모습이 무엇이란 말인가·

그녀는 너무 연약해서 껴안으면 그냥 부서질 거 같았다. 모든 면에서 아기같이 연약하게 되어갔지만, 아기의 귀여움만은 전혀 없는 생기 없는 모습으로 날마다 운동기능과 정신력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균형감각과 소화 기능도 점점 약해지고 있다. 이렇게 날마다 뭔가를 조금씩 잃어가다가 마침내는 생명 자체밖에 잃을 것이 없을 때까지 잃어버리면 어쩌지. 딸이 결혼 상대를 의사로 택한 건 우연이겠지만, 어찌 되었든 의사 사위가 있다는 건 든든하고 고마운 일이다.

나이가 들면 어쩔 수 없이 몸은 약해지지만, 정신력은 붙잡고 살 수 있다고 생각한 건 오산이었나 보다. 비길 데 없이 정신력이 강하시던 내 아버지도 말년에는 손자를 아들로 착각하고 젊어졌다며 기뻐하셨던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다는 아니겠지만, 이런 모습은 우리 인간의 서글픈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오늘 이 순간 맑고 또렷하게 깨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할 줄 아는 욕심 없는 자세가 영혼을 오래 깨어있게 하지 않을까.

돌아오는 길 차창밖에 저녁놀이 아름답다. 친구의 핏기 없는 얼굴도 노을빛에 빨갛게 물들었다. 저물어가는 석양이 아름다운 건 장밋빛 번지는 노을이 고와서만은 아닐 것이다. 태양의 지나온 여정이 더없이 붉고 장렬했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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