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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영옥

구연동화 강사·전 수필가

 실로 반백 년을 훌쩍 넘기고야 내가 살던 섬마을 대청도를 찾았다. 바닷가에서 모래언덕과 솔숲에서 보석처럼 빛나는 추억을 하나씩 캐내며 마냥 즐거웠다. 둘째 날은 섬 중앙에 우뚝 솟은 삼각산 등반길에 나섰다. 하늘은 푸르고 바다는 더 푸르러 하얀 백사장이 더욱더 하얗다. 깎아지른 기암괴석의 줄무늬는 또 얼마나 신비스러운지. 어디를 보나 잘 그린 한 폭의 수채화다. 아름다운 정취에 반해 마냥 행복하다가 길옆에 표지판을 보고 섬뜩해졌다. 여기는 지뢰가 묻혀 있는 곳이니 출입을 금지하라는 경고판이었다.

 서해 5도는 물론 나라 전체를 휩쓸고 지나간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피격사건이 상기돼 순간 온몸이 오싹했다. 밤마다 폭격기 소리에 불을 끄고 새까만 어둠 속에서 오돌오돌 떨던 어린 시절도 떠오른다. 선진포항에 내릴 때부터 서성이는 군인들을 만났고 트레이닝복을 입고 훈련하는 군인들도 종종 눈에 띄더니 이곳에는 아직도 주민과 맞먹는 수의 군인이 살고 있었다.

 대청도는 백령도, 소청도, 연평도, 우도와 더불어 서해 5도라 부르며 특히 백령도와 대청도는 북한과 북방한계선(NLL)으로 마주하고 있어 북과 충돌이 잦은 국가 보안상 전략적 요충지다.

 내가 살던 그때도 삼팔선이 눈앞에 보이는 이 섬에는 초조하게 북과 대치하고 있는 군부대가 여럿 있었다. 아구리선이 커다란 입을 열면 피난민들이 쏟아져 나오던 암담한 전시에 생과 사의 기로에 서 있는 젊은이들에게는 위로가 필요했다. 우리 학교에서는 학예회를 마치고 여러 군부대에 위문 공연을 다녔다. 그날은 사탄동의 1연대를 방문했다. 군인들은 고향 집의 두고 온 가족이라도 만난 양 반가워하며 순서마다 힘찬 박수를 보내줬다. 마지막 합창순서에는 한 사람 두 사람 따라 부르더니 모두가 함께 불렀다, 순식간에 거대한 합창단이 됐다. "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무대와 관중석이 하나 돼 손에 손을 잡고 어깨동무를 하고 목청껏 고향의 봄을 불렀다. 연대장님은 매우 흡족해하시며 맛있는 저녁밥을 주셨고 배도 내주셨다. 두 대의 배에 여자아이들과 남자아이들이 나눠 타고 학교로 향했다. 처음 타보는 군함이 신기해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사이에 배는 선착장에 도착했다. 그런데 남자애들을 태운 뒷배는 2시간이 돼도 도착하지 않았다. 게다가 무전기도 불통이어서 행방을 알 수가 없었다. 학부모들은 모두 선착장에 나와 초조하게 서성였다. 시간이 흐르자 기다림은 불길함을 불러오고 그 불길함이 뱃사람들 특유의 난폭함을 불러왔다. 그들은 몽둥이와 연장들을 들고 "선생들 나와라. 도대체 교장은 어디 간 거냐."라고 고함을 질렀다. 교감 선생님은 "교장 선생님도 그 배에 타셨습니다." 하며 학부모들을 설득시켰다. 여기저기서 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곡성이 터져 나왔다. 이미 바다에 가족을 잃어본 이들의 절규였다. 고통의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칠흑 같은 어둠 속 저 멀리서 뱃고동 소리가 들려왔다. 절망의 늪에서 한 줄기 희망이 다가오는 소리였다. 난 이미 어린 나이에 그 희망의 소리를 경험했다. 그 배는 기관의 고장으로 38선 넘어까지 표류하다 간신히 돌아왔다고 한다.

 나라와 민족을 위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잘 모르지만, 힘껏 위문 공연을 하는 일이 나라 사랑의 길이라고 여겼던 어린 시절처럼, 나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충실하고 나와 이웃을 귀하게 여기며 위로하고 다독이는 삶이 애국이라 생각해 본다.

 지난 4월의 어느 날 판문점에서, 백두산 흙과 한라산 흙이 만나고 한강 물과 대동강물이 그 위에 뿌려지며 하나가 되던 역사적인 장면이 떠오른다.

 부산에서 출발한 열차가 평양을 거쳐 시베리아와 유럽으로 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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