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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보영

수필가

큰 외숙모가 오셨다. 시오리나 되는 산길을 매운 칼 바람을 맞으며 걸어오시느라 얼굴은 붉게 상기 되었고 양 손에는 올망졸망한 보따리가 들려 있다. 보퉁이를 받아 들며 반갑게 맞이하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안방에 든 외숙모는 비단 천에 모란꽃이 곱게 수 놓인 조바위와 두루마기를 벗어 놓고는 시누이인 어머니와 맞절을 하고 있다. 외숙모는 "작은 아씨 그간 가내는 두루 평안하고 아프지 않고 잘 지내셨느냐" 안부를 물었고 어머니는"형님 오라버니도 안 계신데 큰살림하시느라 얼마나 힘드셨느냐."며 서로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동기간의 진한 애정이 녹아 있었다. 외숙모는 어려서부터 잔병 치레가 많았던 손아래 시누이가 늘 염려스러웠고, 어머니는 남편을 일찍 보내고 혼자서 시어른 모시고 아이들 건사하며 종부로써 소임을 다하느라 애쓰는 친정올케가 안쓰러워 노심초사 하셨다.

일 년에 한 두 번은 꼭 손아래 시누이를 보러 오시는 외숙모의 보따리에는 항상 인절미가 들어 있었다. 병약했던 시누이가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 뜸이 잘 든 고두밥을 절구에 찧어 콩고물을 듬뿍 묻힌 인절미였다는 것을 잊지 않고 있는 외숙모의 속 깊은 마음의 표현이었다. 어머니의 머리에 서리가 내렸을 때에도 외숙모가 어머니를 부르는 호칭은 항상 '작은 아씨'였다. 두 분은 만날 때 마다 항상 맞절을 했다.

설 명절을 맞이하여 온 가족이 한 자리에 모였다. 고즈넉하기만 했던 집안에 생기가 돈다. 여느 해처럼 자녀 손들의 세배를 받으며 올 한 해도 무탈하기를 바라며 축복해 주었다. 어느 새 지천명을 바라보는 자식들이 가는 앞날에,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성장해가는 손자들의 앞날에 하나님의 도우심이 충만 하시기를 간절히 기원하며 축복했다. 자식들 역시 연로하신 부모님들이 평안 하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드리는 새해 인사였으리라. 여기에 올 해에는 부부간에, 형제간에 서로 맞절을 하는 예를 갖추어 더욱 훈훈한 자리가 되었다. 부부가 서로 맞절을 하는 것은 부부로 인연을 맺어 한 몸 되어 일가를 이루고 살아 온 것이 감사해서, 앞으로 사는 날 동안에도 서로 존중하며 보듬고 살아갈 것을 다짐하기 위함이다. 형제란 무엇인가. 한 부모의 피를 받아 태어나 닮을 곳이 없으면 하다못해 발가락이라도 닮아 있는 피붙이가 바로 형제다. 셀 수 없이 수많은 사람 가운데서 남편과 아내로 만났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며 한 부모 밑에서 닮은꼴로 태어났다는 것 또한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잊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처음으로 행한 의식 같은 것이었다.

부부간이나 형제간에도 서로 존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이 삶의 도리이고 기본이다. 혼인서약을 할 때에 이미 존경하고 사랑하며 살 것을 약속하지만 잊고 살아가곤 한다. 남편과 아내라는 이름으로 살을 섞어가며 한 세월을 살이 냈음에도 불구하고 황혼이혼이라는 고통스러운 결말을 맞고 마는 것은 얼마나 슬픈 일인가.

절을 하는 행위 속에는 사랑과 존경이 뜻이 담겨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우리네 생활 속에서 점차 사라져 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설 명절이 되어도 이웃 어른께 세배를 드리는 아름다운 세시 풍습은 이제 사라지고 없다. 가족간의 호칭도 촌수와는 상관 없이 편리에 의해 전혀 맞지 않게 부르곤 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이다. 삶의 근간에 녹아 흐르던 예의범절이 퇴색 해짐과 동시에 존중 받고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작은 예절 하나를 행해 봄으로 삶의 근간을 바로 세우는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래본다. 조금은 어설프고 쑥스러운 오늘의 일들이 뿌리를 든든히 내림으로 우리 가족들 모두가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살아 갈 수 있다면 참으로 좋으리라.

어린 시절 내가 자라면서 아버지가 출타 했다 돌아 오실 때마다 절을 해야 해는 것이 너무 야속스러워 불평을 하곤 했지만 돌이켜보면 힘든 시간을 견뎌 낼 수 있었던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외숙모와 어머니가 만날 때마다 맞절을 하시던 아름다운 모습에서, 머리에 흰 서리가 내린 손아래 시누이를 항상 "작은 아씨" 라 부르던 외숙모를 통 해 존중하며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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