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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륙문화탐방 - 최초의 청주시민은?

84만 통합시 탄생
1~5세기 걸쳐 송절·봉명·신봉동 유적 발굴
한반도 단일유적 드물게 대규모 마을 형성
청주백제유물전시관 역사의 파노라마 보존

  • 웹출고시간2014.06.26 19:25:00
  • 최종수정2014.06.26 20:16:28
다음 달 1일이면 인구 84만명의 거대도시, 통합청주시가 출범한다. 전국 기초자치단체 중 7번째로 큰 규모다.

9년 뒤인 2023년에는 100만명, 2030년에는 110만명을 차례로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평균수명 연장 및 출생아 수 증가에 따른 자연적인 증가와 택지개발사업, 산업단지조성 등 사회적 인구 증가가 예상된다.

여기서 질문을 하나 던져본다. 84만명의 시조(始祖), 즉 최초의 청주시민은 누구였을까. 서원소경이 이 고장에 설치되던 통일신라시대 사람일까, 아니면 근대적 도시로 탈바꿈하기 시작한 20세기 초 사람들일까.

100만 대도시의 장밋빛 미래를 꿈꾸고 있는 현 시점에서 인구에 관한 재미난 역(逆) 발상을 함께 해보자.

물론 행정적인 면에서 따져본다면 최초의 청주시민은 지난 1946년 청주가 부(府)에서 시(市)로 승격될 당시의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거주(居住)의 개념으로 해석한다면 수천년 또는 수만년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호적이나 주민등록증이 없었다 해도 분명 미호천·무심천변 기름진 땅에서 삶의 터를 잡아 살던 사람들이기에 이들을 최초의 청주시민으로 간주해야 할 듯싶다.

정식으로 보기가 어렵다면 최소한 명예시민증이라도 시공을 초월해 교부해야 할 판이다.

1990년대 말 충북대박물관은 준공업 개발지역인 청주시 흥덕구 봉명동 일대의 문화유적을 조사했는데, 놀랍게도 이곳에서 최초의 청주시민이 떼를 지어 살고 묻혔던 집터와 무덤이 수백기나 발굴됐다.

한반도에서 단일유적으론 보기 드물게 대규모 마을을 형성했으며, 그 마을은 특정시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구석기부터 신석기~청동기~원삼국~고려~조선의 유구가 역사의 파노라마처럼 전개되고 있었다.

봉명동 유적 발굴 당시 모습.

대개 유적은 특정 시대에 국한되거나 지층의 깊이를 따라 시대가 포개져 있기 마련인데, 봉명동 유적은 그런 출토양상과 달리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유적·유물이 산자락을 타고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특히 3~4세기 봉명동 원삼국(삼한) 유적은 1~2세기의 송절동 유적과 4~5세기 신봉동 유적 사이에서 역사의 끈을 절묘하게 이어주고 있다.

봉명동 집터 유적.

신석기 시대의 집터뿐만 아니라 청동기 시대의 간토기 및 당시 한반도에서 가장 큰 저장용 항아리(높이 90㎝)도 나왔고, 최고(最古)의 금석문으로 평가되는 '대길(大吉)'명 소동탁(小銅鐸 : 말방울)도 출토됐다.

삼한시대의 유물인 화분 모양의 토기 중에서 쇠뿔손잡이가 달려 오늘날의 생맥주컵을 연상케 하는 것도 있는데, 이런 토기류는 다른 지역의 출토유물과 형상이 달라 관련학계에서는 이를 '신봉동식 토기'로 명명하고 있다.


수천년, 수만년을 잠들어 있다 알토란처럼 흙을 헤치고 고개를 내민 유물들은 분명 역사의 도시, 문화의 도시로 일컬어지는 청주의 정체성을 입증하는 자료들이다. 한자리에서 청주 역사를 통사적(通史的)으로 규명하는 역사의 징검다리이기도 하다.

이로써 청주는 잃어버린 역사로 치부되는 마한(馬韓)의 실체를 규명할 단서를 잡았고, 각종 연구를 통해 마한사회의 복원을 진행했다.

청주 고대 역사를 만나볼 수 있는 백제유물전시관.

이를 바탕으로 청주시는 1999년부터 2004년에 걸쳐 봉명동·송절동·신봉동 유적·유물을 한데 모아 백제유물전시관을 건립했다.

노다지는 따로 있는 게 아니다. 다만 옆에 두고도 보지 못할 뿐이다. 우리 선조의 삶을 담은 근사한 역사의 그릇이 있는데, 무심코 지나치기만 한다면 그것이 역사의 색맹(色盲)이 아니고 무엇이랴.

이제 며칠 뒤면 미래를 향한 통합청주시의 힘찬 항해가 시작된다. 거센 해풍과 파고를 만나지 않으려면 돌아온 길부터 꼼꼼히 살펴봐야 한다. 돌아온 길, 즉 과거를 잃어버린다면 결코 원만한 항해를 할 수 없다. 미래는 과거와 현재로부터 교훈을 얻고 강해진다.

통합청주시 출범을 앞두고 우리의 조상을 만나보자. 그리고 그들에게 역사의 교훈을 얻자. 청주시를 일구고 지켜온 최초의 청주시민들은 제 역시 이 땅에서 낳고 자란 후손들에게 미래의 해법을 선물해줄 것이다.

/ 임장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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