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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천호

황간초 교장

"할아버님, 잔 받으십시오."

"할머님도, 잔 받으세요."

"아버님, 어머님, 두루 잔 받으세요."

"조상님들 모두 오시어 차린 음식 많이 드세요. 그리고 후손들 잘되게 복 많이 빌어 주세요."

윤부장네 가족이 필리핀의 아름다운 휴양도시 파타야에서 추석 명절날 조상께 차례 상을 올린다. 작년까지만 해도 귀향길 꼬박 하루 넘게 걸려서 내려갔다가, 추석 차례를 지내기 무섭게 밀린 고속도로를 엉금엉금 기어서 파김치가 되어 돌아오곤 했다. 그러다보니 추석 연휴를 보내고 나면 명절증후군 여파로 오히려 짜증과 피곤이 밀려오곤 했다. 그런 윤부장이 이번에 큰맘 먹고 숙명적이라 여기며 반복했던 일상에서 탈출을 시도한 것이다. 인천공항에서 비행기로 불과 몇 시간 날아왔는데, 어찌 이리도 딴 세상이 펼쳐질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고 윤부장이 시골 문전옥답 팔아 서울에 있는 대학까지 보내준 부모님의 은혜를 망각한 불효자는 절대 아니다. 비록 낯선 땅이긴 하지만 조상들께 거금을 들여 성대하게 추석 차례 상을 차린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남국의 자스민 향기 가득한 둥근 식탁에 기름기 쫙 뺀 거위 바비큐며, 혀끝에 사르르 녹는 다금바리회, 새우튀김, 싱싱한 파인애플이 보는 이의 입맛을 다시게 한다. 목이 긴 투명한 유리잔에는 이름조차 생소한 위스키가 독한 맛을 뽐내며 찰랑거린다. 특히 명절 때마다 시골에 다녀오면 며칠 동안 스트레스로 인해 심한 편두통을 앓던 아내가 혹 이게 꿈은 아닌지 연신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한다.

이제 윤부장네 가족은 세계 최고의 휴양지로 손꼽히는 이곳에서 멋진 추석 연휴를 즐기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차례 상만 물리면 가족들 모두 요트를 타고 오색으로 빛나는 산호섬을 돌아볼 것이며, 바나나보트를 타고 함성을 지르며 바다를 질주할 것이다. 어디 그뿐이랴. 낙하산을 타고 창공을 날며 에메랄드빛 바다 감싼 석양의 노을빛에도 물들 것이다. 사실 조상 모시는 차례 상을 호텔방에다 차리고 독한 양주로 잔 올린 게 다소 찜찜하긴 하지만, 바뀐 시대 상황에 맞추어 조상을 모시는 것도 세상사는 이치라고 스스로 안도해본다.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윤부장이 야자수 그늘 아래 펼쳐진 은빛 백사장에 누워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사실 그간 명절 때마다 차례 상차리기와 부모님 제사문제로 형제들 간에 말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장손인 윤부장이 당연히 모든 가족행사를 주관해서 받들어야 하는데, 문제는 교회 장로 일을 맡고 있는 아내로 인해 상차리기에 어려움이 여간 많은 게 아니었다. 또 손아래 동생은 해외지사 영업부에 근무해서 명절에 참석하기조차 어려운 형편이었다. 결국 지난 연말 가족 모임에서 치열한 논의 끝에 삼형제가 제비뽑기를 하였는데, 올해는 둘째 동생이 설날, 윤부장은 추석, 시골에서 농사짓는 막내가 부모님 제사를 분담해서 각각 떠맡기로 했다.

윤부장네 가족이 서둘러 차례 상을 물리고 신나게 휴양지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호텔 유리창 밖에서 시골 노인 내외가 자그마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할멈, 아무리 봐도 내 입맛에 맞는 음식은 없는 것 같아."

"글세 말이유 영감, 하얀 쌀밥 물에 말아 굴비찜 얹어 먹으면 참 좋을 텐데...... ."

"그런데 도대체 여기는 어디여· 늘 물방골 고갯길로 돌아 나왔는데 처음 보는 동네여."

"누가 아니래유. 이젠 제삿밥도 해외까지 따라 나가야 얻어먹게 생겼시유.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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