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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NGO의 활동과 방향 - (3) 우리나라 대표적 NGO활동

자선사업에서 교육·경제·환경 활동까지 다양

  • 웹출고시간2007.11.12 08:58:1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NGO는 주로 자선사업에 주력해왔으나 이제는 교육 및 연구, 보건복지, 환경 및 인권보호, 문화·예술 등에 이르기까지 확장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자발적인 시민사회의 등장에 따라 비약적인 발전을 해왔고 교육은 물론 소비자 권익보호와 보건복지, 의료, 문화 및 예술, 종교 환경 보호 등의 다양한 분야에 걸쳐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다양한 유형의 민간단체들이 많은 활동을 하고 있으나 분류를 하는데 있어서는 학자마다 각기 다른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류의 혼동내지는 어려움과는 달리 시민들의 인권대변을 위한 활동에는 큰 지장을 받지 않고 나름대로의 목소리와 권리를 행사하면서 정부기관에서도 과거 NGO의 목소리를 무시하던 관행에서 탈피해 이들과의 대화를 통한 조율과정을 거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NGO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YMCA·YWCA, 한국해비타트운동본부 등을 꼽을 수 있다.

/ 편집자주


#한국YWCA

1922년 4월20일 김활란, 김필례, 유각경 선생에 의해 조선여자 기독교 청년회 연합회가 조직되면서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간 한국YWCA는 초기에는 주로 계몽, 교육, 생활개선, 여권신장, 민족운동 등에 집중됐다.

당시 여성들을 괴롭히던 조혼, 공창제도 폐지와 축첩제의 반대 등을 통해 여성들의 권익보호는 물론 애국정신을 기반으로 물산장려운동에도 앞장섰다. 1950년대~1960년대 YWCA는 박에스터 선생의 영향으로 지도력 훈련을 강화하면서 민주적이며 공적인 영역에서 활동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여성지도력을 배출해 내는 중요한 기지가 됐다.

1970년대에는 소외지역을 위한 활동을 개발해 봉사활동을 하는가 하면 청계천 노동자들을 위한 평화교실을 개설했고 노동자 문제에도 개입해 노동자들의 권익보호와 생활조건 향상, 근로여성들의 직업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에 주력했다.

또한 여행원 결혼 각서 폐지운동, 여성조기정년제 폐지운동, 가족개정법운동에 앞장서면서 여성의 인권신장에 앞장섰다.

1980년대 후반부터 외채를 줄이고 소비를 절약하는 경제자립을 위한 캠페인을 벌이고 실천할 수 있는 프로그램들을 개발했으며 생활 속에서 실천 가능한 환경운동을 벌였이기도 했다.

냉전의 종식과 새로이 개편되는 세계화의 질서 속에서 통일문제를 중심으로 한 평화프로그램을 전개하기도 했다. 365일 평화통일을 위한 기도운동, 연변 한민족여성대회를 열어 민족통일을 전망하면서 흩어진 여성동포가 함께 할 수 있는 역할을 모색했다.

1995년 세계YWCA 100주년 대회를 서울에서 성공적으로 개최해 저력을 드러내기도 했다. 특히 1998년 IMF 파동으로 외환위기 사태가 빚어지자 외화 모으기 캠페인, 사랑의 먹거리 나누기 운동, 실업충격완화 및 창업준비 프로그램, 여성실업자를 위한 재활용공공근로사업 등을 전개하면서 우리 경제 살리기 시민운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현재 한국YWCA는 전국에 54개 회원YWCA를 두고 10만여명의 회원과 함께 이 사회의 평화 이루기에 모든 힘을 기울여 나가고 있다.
#YMCA

1844년 젊은이들의 정신적, 영적 상태의 개선을 목적으로 런던 YMCA가 창립된 이래 YMCA운동은 전세계로 확산돼 1855년 세계YMCA연맹이 결성된 이후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평신도의 범세계적 운동체로 발전해 왔다.

YMCA는 세계 에큐메니칼 운동의 총본산으로서 지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왔으며, 세계 120여개국에 1만여의 조직을 가진 최대의 기독교민간단체로서 새로운 시대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개화기인 1903년 황성기독교청년회를 시작으로 우리나라에 들어온 한국YMCA는 100년이 넘는 역사 속에서 한국의 근대화에 많은 공헌을 해왔다.

한국YMCA는 민족 독립운동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며, 새로운 교육과 문화활동을 소개하는 한편 농촌사업 등을 통해 민중의 복지향상을 위해 노력해 왔다. 또 일제 말기의 수난기와 해방직후의 혼란기를 거쳐 운동을 재건, 자립체제를 구축하고 1976년에는 ‘한국YMCA목적문’을 제정해 운동의 이념을 새롭게 정립했으며 급격한 산업화로 사회문제들이 점차 심각해짐에 따라, 시민사회의 주요 관심사에 대한 올바른 여론을 형성하고 이를 정책화시키기 위해 전국규모로 시민자구운동을 전개해왔다. 1990년대부터 한국YMCA는 시민운동, 환경운동, 시민권익 보호운동, 청소년운동 등을 펼쳐왔으며, 현재 전국 61개 도시에 10만여 회원과 함께 인간다운 따사로움이 넘치는 참여·정의·평화의 지역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1989년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이 경제정의의 기치를 내걸고 시민운동의 첫발을 내딛었다.
경실련은 창립당시 팽배했던 이념적 사회운동과는 달리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기치를 내걸고 사회전체의 이익과 발전을 위해 노력해 왔다.

경실련은 ‘모든 국민은 빈곤에서 탈피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다’, ‘비생산적인 불로소득은 소멸되어야 한다’, ‘자기 인생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경제적 기회균등이 모든 국민에게 제공돼야 한다’, ‘정부는 시장 경제의 결함을 시정할 의무가 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왜곡시키는 금권 정치와 정경유착은 철저히 척결돼야 한다’, ‘토지는 생산과 생활을 위해서만 사용돼야 하며 재산 증식 수단으로 보유돼서는 안 된다’는 등의 실천과제를 안고 서민 속으로 뛰어들었다.

출범 당시에 벌인 토지공개념 입법운동은 1990년들어 부동산 투기 근절과 공평과세 확립을 위한 세재개혁과 더불어 음성적, 투기적인 불로소득을 차단하고 형평과세운동의 출발이었으며 금융실명제와 더불어 지난 10년 간 경실련이 끈질기게 벌여온 토지공개념의 사회적 도입과 금융소득종합과세는 기형적인 자본의 운동을 건전한 생산현장으로 돌리며 부의 사회적 재분배를 위해 대단히 중요한 운동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2001년의 ‘수도권 공장총량제 완화 결사반대와 국토균형발전촉구 범시민대회’ 개최와 ‘공공공사입찰제도개선을 위한 최저가낙찰제 전면확대 시행 운동’은 2002년 전년에 경실련이 조사의뢰한 서울시지하철 9호선 담합입찰건에 대해 공정거래위원회가 73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함으로써 활동의 중요성을 입증해냈다.

이후 신용불량자 급증에 따른 ‘신용카드 이용자 설문조사 결과 발표 및 대책’ 발표, ‘부동산투기 근절 근본대책 촉구 집회’ 개최, ‘아파트가격 거품빼기 운동전개’, ‘학교급식지원에 관한 조례제정 청구’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한국해비타트

가난하지만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던 밀라드 풀러(Millard Fuller)라는 한 미국인 변호사는 벤처기업을 일으켜 20대 후반에 이미 백만장자가 됐던 풀러는 가정의 위기를 맞자 하나님 앞에서 새롭고 의미 있는 삶을 찾게 됐고, 1965년 결국 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1973년 아프리카 자이레로 가서 가난한 흑인들을 위해 집을 지어주기 시작했다.

1976년 창설된 국제해비타트(Habitat for Humanity International)운동은 세계 곳곳에서 24분마다 1채의 해비타트 주택이 지어지고 있다.

2005년에는 미국 테네시주 낙스빌에서 20만 번째 해비타트 주택이 건축되는 등 국제해비타트는 전 세계 1백만 명의 무주택자들에게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삶의 희망을 되찾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1980년도 후반 예수원 원장이었던 대천덕 신부(R.A.Torrey) 가 그의 저서 ‘산골짜기에서 온 편지’에서 해비타트운동을 소개하였는데 , 후에 해비타트의 실행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던 고왕인 박사가 이 글을 읽고 한국에서의 해비타트의 필요성을 느끼고 헌신하게 되면서 시작하게 됐다. 1992년 1월에 과기처장관을 지낸 정근모 박사를 이사장으로 추대하여 국제해비타트한국운동본부로 발족했고, 1994년에 경기도 의정부에 첫 번째 한국해비타트 주택이 건축됐다. 1995년에 (사)한국사랑의집짓기운동연합회의 명칭으로 건교부 산하 비영리공익법인 정식 인가를 받아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듬해인 1996년에는 필리핀에 5세대의 집을 지어 줌으로써 해외지원사업의 시초가 되기도 했다.

한국해비타트운동본부는 이후 국내에서 508채의 사랑의 집을 지어줬는가 하면 206세대의 사랑의 집고치기, 특별건축 50세대, 해외건축 516세대 등 놀랄만한 기적이 연속되고 있다.


/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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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署 '병영문화 개선' 시대흐름 역행

청주청원경찰서 방범순찰대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운동장으로 사용하던 경찰서 내 1천21㎡ 규모의 테니스장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청원서는 예산 19억원을 들여 내달 3일부터 오는 4월(예정)까지 민원실 이전 공사에 들어간다.민원인의 원활한 업무처리 등을 위해서다.문제는 민원실 신축 예정 부지인 테니스장을 방범대원들이 체육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현재 청원서에서 생활하고 있는 의무경찰은 모두 123명(방순대 107명·타격대 16명).복무 특성상 활동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대원들에게 작은 공간이지만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중요 시설이다.하지만 민원실이 이전할 경우 체육활동 공간이 사라지게 되고 청원서는 청주지역 3개 경찰서 중 외부 운동공간이 없는 유일한 경찰서가 된다.일각에서는 문화·체육 시설을 확충하는 등 병영문화를 개선하려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경찰 관계자는 "경찰서에 체력 단련실이 있긴 하지만 민원실 이전 공사가 시작되면 외부 운동장은 이용이 어려울 것"이라며 "외부 운동장 등에서 주 1회 정도 대원들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운동장을 이용할 때 마다 외부기관의 협조를 얻어 사용한다는 얘기다.이 때문에 일부 대원들은 평일 체육활동 등 자유로운 체육활동을 할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한 방순대원은 "복무 중이기 때문에 활동이 제약될 수밖에 없는데 체육공간까지 사라진다니 아쉬울 따름"이라며 "경찰서 외부 운동장을 사용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토로했다. / 박태성기자 ts_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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