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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미화

무심수필문학회 사무국장

커피를 내리지 못하고 차에 올랐다. 신혼부부인 아들 내외와 영광에 있는 선영(先塋)에 가는 길이다. 새 식구가 된 예쁜 며느리와 함께하는 첫나들이가 묘한 설렘을 준다. 고속도로 주변 산야에 평화로운 기류가 느껴진다, 잔설로 도드라진 겨울 산의 능선이 감흥을 보탠다.

휴게소의 카페에 들렀다. 한산한 매장의 카운터 앞이 정체 상태다. 계좌이체로는 결제가 안 된다는 직원의 말에 고객은 더욱 난처한 표정이다. 얼핏 정황을 살폈다. 두 명의 여직원이 일하는 공간, 테이크 아웃 컵 두 개가 한쪽에 놓여 있다. 주문을 받는 동시에 한 사람은 음료를 준비한 모양이다. '그럼 어쩌지?'를 반복하며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남성의 모습에 시선이 갔다. 왜소한 체격을 가린 입성이 나들이 차림은 아닌 듯했다. 작업복 같은 회색 점퍼가 정갈하고 소박해 보인다.

직원의 응대가 단호하다. 업무 지침에 충실한 태도에는 해결책의 여지가 보이지 않는다. 뜻하지 않은 상황에 마음이 분주해진다. 타인의 상황에 공감할 것인지, 소극적인 관망자로 기다릴 것인지.

"제가 대신 계산할 테니, 제 계좌로 이체하시겠어요?"

어설픈 내 오지랖에 그는 인사를 거듭하며 나갔다. 커피를 들고 가족들이 기다리고 있는 야외 테이블에 합류했다. 그때 잠시 나를 갈등의 기로에 세웠던 주인공이 작은 트럭 옆에 서 있는 것이 보였다.

조금 전의 경험담을 가족들에게 들려주었다. 남편이 '신종사기에 말려든 거 아니냐'며 겁을 주듯이 놀린다. 남의 말을 곧이곧대로 듣는 편인 내겐 지울 수 없는 흑역사가 있다.

30여 년 전, 레슨을 겸한 작은 플라워숍을 운영할 때였다. 어느 날 한 청년이 들어왔다. 맞선을 보기 위해 제주도에서 올라왔다는 그는 공항에서 오는 동안 지갑을 분실했다고 했다. 당황한 기색으로 곤란한 상황을 설명했다. 도움을 청하는 태도가 침착하고 정중했다. 핸드폰과 신용카드가 일반화되기 전이었다. 가게의 유선 전화로 가족과 통화까지 하는 그의 언행에는 의문점이 없었다. 집에 돌아가면 바로 보내주겠다는 말을 믿고 필요한 돈을 빌려주었다. 몇 시간이 지난 후에야 서툰 세상사 공부를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허탈감과 자괴감이 밀려왔다. 한동안 후유증이 이어졌다. 낯선 사람을 대할 때면 색안경부터 쓰게 된 것이다.

차담을 나누다가 자초지종을 들으신 본당 수녀님이 위로와 함께 일침을 놓으셨다. '분별력 없는 신뢰는 누군가에게 죄짓는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는 말씀은 깨달음을 주는 아픈 회초리였다. 현명하고 책임감 있게 세상을 바라보라는 처방전이었다.

때로 우리의 사회적 자아는 정체성의 혼란을 겪기도 한다. 사회사상가 제러미 리프킨은 일찍이 그의 저서 ≪공감의 시대≫에서 공감의 확장과 필요성을 강조했다. '다른 사람의 곤란한 처지를 알게 되었을 때, 공감하고 지지해 주려는 노력이 우리에게 활력이 된다.'

공감의 순기능을 믿는다. 배려의 나비효과를 상상해 본다. 지금 이 순간 우리의 공감과 사소한 배려가 인류의 미래를 지탱해 주는 원동력이 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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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DIVA 콘서트' 김소현·홍지민·소냐 인터뷰

[충북일보] 이들은 이번 공연을 앞두고 "나이 차이가 크지 않아서 서로 친하다. 서로 무대에서 만난 지 오래됐는데 이번 콘서트 덕분에 만나니 반갑다"며 "셋이 모이면 생기는 에너지가 큰데 이를 온전히 관객들께 전해드리고 싶다"고 이번 공연에 대한 소감을 말했다. 홍지민은 "사실 리허설 등 무대 뒤 분위기가 굉장히 화기애애하다. 셋이 만나면 서로 칭찬하기 바쁘다"며 "긍정적인 분위기, 행복한 에너지는 전파된다고 생각한다. 서로 사이가 좋다 보니 무대에서도 합을 더 잘 맞출 수 있다"고 무대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이어 김소현은 최근 일본 공연, 새 뮤지컬 합류 등으로 바쁜 일정에 공연 준비까지 소화해내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 "오랜만에 뮤지컬 무대에 선다. 맡은 배역이 위대한 인물이고 처음 도전하는 캐릭터라 연기를 하면서 배울 점이 많다"고 운을 뗐다. 이어 "하지만 공연 준비부터 실제 무대까지 모든 일이 정말 행복하고 즐겁다. 일 자체를 즐기니 힘든 것도 잊고 일정을 병행하고 있다"고 답하면서 "이번 공연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만날 수 있어 더욱 기대된다. 공연을 보러오시는 모든 관객께도 지금의 행복을 가득 담아 힐링의 시간을 선사하겠다"고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