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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사람 이야기 - 청주 가경터미널시장 김효자·박경수 모자

양장부터 한복·이불까지 두루 섭렵한 '원단 장인'
남보다 빠른 유행캐치·손님 취향 맞춤형 이불 추천
정확한 추천과 친절함으로 손님발길 이끌어

  • 웹출고시간2021.11.21 16:35:06
  • 최종수정2021.11.21 16:35:06

청주시 가경터미널시장에서 장미혼수를 운영하는 김효자·박경수 모자가 밝은 표정으로 고객들에게 인사를 전하고 있다.

ⓒ 김용수기자
[충북일보] "어린시절부터 바늘만 잡으면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알았어요."

청주 가경터미널시장 주차장 후문서 시장으로 이어지는 골목 바로 앞에 위치한 '장미혼수'에는 늘 손님맞을 준비가 된 김효자(67)·박경수(47) 모자가 있다.

효자씨는 어린시절부터 원단과 바느질이 좋았다.

초등학교 2학년때부터 큰 옷을 직접 바느질해 품을 맞춰입고 다녔고, 4학년 때 처음 나온 엘리트 원단을 직접 양장점에 찾아가 맞춰 입을 정도였다.

청주시 가경터미널시장에서 장미혼수를 운영하는 김효자씨가 재봉틀로 수선을 하고 있다. 김씨는 양장부터 한복·이불까지 두루 섭렵한 '원단 장인'이다.

ⓒ 김용수기자
효자씨는 "공부는 싫어도 바느질은 그렇게 하고싶더라. 지금까지 바느질을 하면서도 싫증 한 번 나본 적 없다"며 "엘리트 원단으로 처음 맞춰입은 가격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900원이었다"라며 회상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본격적으로 양장을 배운 그녀는 80년대 기성복이 등장하면서 '한복'을 배워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이후 효자씨는 '하루라도 빨리 배워 먹고사는데 도움이 돼야한다'는 생각으로 매일 아침 청천에서 첫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갔다.

서울에서 오전·오후로 개인지도를 두 곳으로 다닌 후 막차를 타고 내려오는 일과가 이어졌다.

효자씨는 "일찍 결혼을 했다보니 더 마음이 급했다"며 "지금보면 고생이었고 힘든 시간이었지만 그때는 젊어서인지 힘든줄 모르고 해낼수 있었던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밤낮으로 한복을 배워 한복 가게를 연 것은 39살 무렵이다.
이미 가게를 열기 전에도 바느질품을 팔았고 연 이후에도 주문은 끊임없이 들어왔다. 그때만 해도 잔치나 가정에 큰 날이면 한복을 입는 이들이 많아 늘 일거리가 많았다고 한다.

효자씨는 "정말 밥 먹을 새 없이, 잔 날보다 밤을 새운날이 더 많았다"고 기억했다.

사창시장서 처음 한복가게를 시작했던 효자씨는 가경터미널 시장이 형성되면서 위치를 이곳으로 옮겼다.

지금 자리에 이불가게를 인수 받으면서 한복과 이불을 함께 운영했던 세월이 이제 25년 전이다.

점차 한복 수요가 줄면서 전통 한복 운영은 접을 수밖에 없었다. 효자씨는 한복을 접어야하던 그날은 '눈물'로 보냈다고 이야기했다.

효자씨는 "그날은 섭섭한 정도가 아니고 눈물이 났다"며 "우리 세대가 가고나면 이제 한복은 어떻게 하나라는 생각이 들더라"라고 전했다.

장미혼수에서 이불만 운영한 지도 17년이 됐다.

이불은 매일 잠자리에서 깔고 덮어 몸에 가까이 하는 시간이 많은 만큼 개인의 취향이 가장 많이 반영되는 품목이다.

그녀는 "겨울에도 간절기 이불을 찾으시거나, 여름에도 겨울 이불을 찾는 분들이 있어 소량으로 또 구비해둬한다"며 "때에 맞춰 팔릴 만큼, 누가 어디서 어떤 느낌을 원하는지를 알아야 알맞게 추천해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책을 보고 외워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경험을 통한 노하우가 중요하다는 것이 효자씨의 철칙이다.

손님이 이불을 사러오면 효자씨는 사용하는 사람이 누구인지, 나이와 사용공간까지 꼼꼼히 확인한다.

효자씨는 "간혹 '그런 것까지 말해야 하냐'고 반문하는 이도 있지만 딱 맞게 추천해주면 손님도 흡족하고 나도 일이 줄어든다"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불도 유행을 많이 타다보니 재고는 쌓아두지 않는다고 한다. 10년 이상을 배워야 손해보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늘 유심히 손님을 관찰하고, 유행을 캐치하는 건 효자씨의 일상이다.

효자씨는 "생각보다 유행을 크게 타는 것이 이불이라 유행을 늘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이불도 컬러와 소재를 보는 감각이 있어야한다"고 말했다.

이어 "손님들이 와서 찾는 패턴, 소재, 컬러 등은 흘려듣지 않고 늘 귀담아 듣는다"며 "이불공장에서 보내주는 디자인 책자도 저녁이면 공부해야한다"고 덧붙였다.

장미혼수가게 한 켠에는 여전히 재봉틀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끔은 베갯잇도 손봐야하고, 제품에 있는 하자 부분을 다듬어야해서다.

오랫동안 한복집을 운영했던 터라 효자씨의 기술을 아는 이들의 수선 의뢰도 들어온다.

"조금 헤지거나 튿어진 부분들을 수선해달라는 사람도 많다. 얼른 버리기 아쉬운 것들은 다들 손보아가며 갖고싶어하는 것 같다"

효자씨는 늘 가게 안에서 창을 통해 오가는 손님들을 살핀다. 가게 앞 매대에 손님이 오면 누구보다 먼저 나가 맞이한다.

찾아온 손님에게 짧은 감사 인사라도 전해야 하기 때문이다.

효자씨는 "2천 원짜리 베갯잇을 사든, 10만원짜리 이불을 사든 모든 손님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며 "안녕히가세요, 감사합니다라는 이 인사는 허투로 하는 인사가 절대 아니다. 진심을 전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진심으로 모든 손님을 대해야 한다는 것은 아들에게도 가장 강조한 부분이기도 하다.

손님들을 위해 효자씨는 장사해 온 지금까지 문여는 시간과 닫는 시간은 늘 일정하게 유지해왔다. 늦어도 아침 8시 20분에 문을 열어 저녁 9시 반까지 가게를 지킨다.

장미혼수 문이 닫힌 날은 효자씨네 아들과 딸의 결혼식뿐이었다.

간혹 '왜 그렇게까지 하냐', '그렇게 돈 모아 뭐꺼냐'며 핍박을 하는 이도 있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효자씨는 '나 자신과의 약속'이 있어 전혀 굴하지 않았다.

청주시 가경터미널시장에서 장미혼수를 어머니와 함께 운영하는 박경수씨가 판매대에 진열된 이불 등을 정리하고 있다.

ⓒ 김용수기자
효자씨는 "가난은 대물림 될수밖에 없더라. 그래서 내가 이렇게 가난으로 힘들게 산 만큼 자식에게는 절대 물려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며 조심스럽게 전했다.

아들인 경수씨와 함께 운영한 지는 4년정도 됐다.

경수씨는 가게를 함께 하는 것이 소원이라는 어머니 말에 하던 일을 접고 함께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경수씨가 함께하면서 효자씨는 든든해졌다. 손님 응대부터 배달까지 꼼꼼하고 차분하게 일하는 경수씨 덕분이다.

효자씨는 "내아들이지만 참 성격도 차분하고 꼼꼼하다. 보고 있으면 '나보다 더 낫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미소를 지었다.

이어 "손님한테 설명도 잘하고 물건에 신경도 많이쓴다. 배달을 하더라도 인사도 잘하고 나보다 더 친절해 믿음직스럽다"며 "'부족해서 어쩌나'라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이제 물건 구입쪽으로만 좀더 경험을 쌓으면 될 것 같다"고 덧붙였다.

30년 세월동안 그저 열심히 하면 되겠지 생각해 무조건 열심히만 해왔다는 효자씨는 "지금 이 상태로만 잘 유지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고 이야기를 마쳤다.

/ 성지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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