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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75주년 - 초야에 묻힌 이름 찾아 기억하겠습니다

'광복절 노래' 작사가 우당 정인보 선생 납북 후 사망
후손들 생전 두루마기 안장한 초혼묘 충주에 조성
청주 덕촌리 독립운동 마을·한봉수 의병장 유허지 등
선양사업 활발 불구 초야 묻힌 이름 여전히 많아

  • 웹출고시간2020.08.13 20:52:29
  • 최종수정2020.08.13 20:52:39

정순만 선생 후손인 하동 정씨 문중과 주민들의 노력으로 복원된 덕신학교.

ⓒ 안혜주기자
[충북일보] "흙 다시 만져보자 바닷물도 춤을 춘다. 기어이 보시려던 어른님 벗님 어찌하리. 이날이 사십 년 뜨거운 피 엉긴 자취니. 길이길이 지키세 길이 길이 지키세."-광복절 노래 가사

'빛을 되찾은 날'이란 뜻으로 잃었던 국권의 회복한 광복절(光復節)이 올해 75주년을 맞았다.

광복절 기념식에는 어김없이 '광복절 노래'가 울려 퍼진다.

바장조의 음계, 4분의 4박자, 전체 16마디로 구성된 전형적인 두도막 형식 A(aa') B(bc)의 곡으로 선율은 밝고 희망에 차 있다.

특히 노랫말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광복의 기쁨이 '바닷물도 춤을 추게 할 정도라니'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가슴에 와 닿는다.

광복절 노래는 윤용하(1922∼1965) 선생이 음을, 정인보(1893~1950) 선생이 글을 지었다.

윤용하 선생은 '보리밭', '동백꽃', '한가윗 달'의 작곡가로 잘 알려져 있다.

정인보 선생은 '제헌절 노래', '개천절 노래'를 작사했다. 국경일, 기념일마다 정인보 선생이 지은 노래를 불러왔다.

그렇다면 정인보 선생은 어디에서 어떠한 삶을 살았을까.

덕신학교에서 전통문화 체험을 하고 있는 학생들.

ⓒ 안혜주기자
국가보훈처는 정인보 선생의 공적을 '재산과 젊음을 독립운동에 바치다', '한평생 검은 옷으로 지조를 지키다', '붓으로 일제의 탄압에 저항하다', '국학대학을 설립해 국학진흥에 힘쓰다'라고 기록했다.

일제시대 창씨 개명을 피해 1943년 전북 익산군 황화산으로 들어가 산중생활을 하다 광복 후 서울로 귀경했다. 일제로 단절된 우리의 얼을 선양하기 위해 국학대학을 설립하기도 했다. 국학대학장을 역임한 뒤 서울 회현동에서 역사연구와 집필에 몰두하던 정인보 선생은 1950년 6·25전쟁이 발발하며 북한으로 납치돼 한동안 생사가 알려지지 않다가 그해 11월 사망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1990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한다.

그의 육신은 박열, 현상윤, 송호성 등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평양 인근 재북인사묘에 안장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학자이자 교육자이면서 독립운동가였던 정인보 선생의 기록은 충북의 한 초야(草野)에도 남아있다.

'광복절 노래'를 작사한 우당 정인보 선생의 초혼묘.

ⓒ 안혜주기자
집중호우가 잠시 쉬어간 8월의 어느 날, 그가 생전 입던 두루마기를 안장한 초혼묘(招魂墓·유골이 없는 분의 혼백을 모신 묘)가 있다는 충북 충주시 중앙탑면 장천리 장미산마을을 찾았다.

장미산마을 입구에서 20여m 떨어진 곳에 '동래정씨위강선생묘소입구'가 새겨진 표지석이 있다. 표지석을 지나 우측 비탈길을 올라 서니 초혼묘가 보였다. 초혼묘는 안내문이 없어 상석에 음각된 글씨로 간신히 알아봤다.

붓과 펜으로 일제와 항거해온 선생의 삶은 동족상잔(同族相殘)이라는 비극으로 그만 끝이 난다.

정인보 선생처럼 기억에서 잊혀져 가는 이들이 적지 않다.

'충북도의회 단재사상 및 독립운동가 연구모임'이 3개월간 진행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충북 출신 독립운동가는 모두 512명이었다. 하지만 도내 현충시설은 44곳(전국 999곳)에 불과하다.

독립유공자의 발굴과 독립운동 선양사업은 혼자할 수 없다.

독립운동가의 공적 검증에 대한 노력과 유족 찾기, 정부와 지자체·유관기관의 적극적인 자세가 필요하다.

지난해 말 준공된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덕촌리 독립운동 마을이 대표적이다.

덕촌리 독립운동 마을은 독립운동가 정순만 선생의 활동사와 덕신학교 역사를 기록화한 곳이다. 독립운동 마을은 태극기 거리, 애국의 길, 정순만 선생 기념관, 3·1운동 만세광장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전통문화체험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정순만 선생은 하동 정씨 집성촌인 옥산면 덕촌리 반곡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안중근 의사 의거 계획을 주도했고 연해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한인사회 지도자로 민족운동을 했다.

13일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학평리 청암 한봉수 의병장 유허지, 봉분 위 활개(날개) 사면이 집중호우로 무너져 있다.

ⓒ 김태훈기자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학평리에는 청암 한봉수(1883~1972) 의병장 유허지가 있다. 한봉수 의병장은 1907년 군대가 해산되자 의병으로 봉기해 1910년까지 충청, 전라, 경상 등지에서 폭넓게 활동하며 수많은 전투를 벌였다. 1919년 3·1운동 당시에는 내수보통학교 학생들과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한봉수 의병장 유허지는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지만 봉분 위 활개(날개) 사면은 집중호우로 무너져 내렸다.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던 지난해에 '충청북도 독립운동 유적 발굴 및 보존에 관한 조례'와 '충청북도 독립운동 기념사업 지원 조례'가 제정됐다.

아직 찾아내야 할, 기억해야 할 이름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있다. / 안혜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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