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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륙호령기개 생생 그러나 이젠 남의 땅

고구려를 찾아서 3

  • 웹출고시간2008.12.01 02:00:4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장수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장군총 앞에서 답사반 일행이 포즈를 취했다.


잔뜩 얼어붙은 고구려의 하늘에선 돌연 진눈개비가 쏟아졌다. 무슨 설움이 그리 많길래 빗물조차 얼었는가. 이끼 낀 성벽으로 착륙하는 저 눈발은 7백 년 사직의 얼룩진 한(恨)이다. 만주벌판을 내달리며 대륙을 호령하던 광개토대왕, 장수왕의 고함이 귓가에 쟁쟁하건만 남의 땅이 돼버린 압록강 저편 집안 시에는 알 수 없는 언어가 고구려 유적을 설명하고 있다.

남의 나라에서 우리 문화는 유량극단 신세가 되어 떠돌고, 입장료는 중국인들이 꼬박꼬박 챙기고 있으니 재주 부리는 사람, 돈 받는 사람이 따로따로다. 고분군의 벽화에서 고구려 여인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국내성, 환도산성에선 고구려 군사들이 개선 행진곡을 부르고 있는데 압록강은 혼절한 듯 아무 말 없이 국경의 밤을 내달린다.

고구려 제2대 유리왕은 22년(기원 3년) 10월에 졸본성에서 압록강 가에 있는 집안(集安)으로 수도를 옮긴다. 고구려의 영역이 점차 넓어지면서 여기에 걸맞는 도읍지를 찾아 나선 것이다. 집안은 땅이 넓고 압록강이 코앞에 흐르고 있어 농사짓기는 물론 내륙, 수운 교통이 편리하다. 이에 평지에는 국내성(國內城)을 쌓고 그로부터 서북쪽으로 2.5km 떨어진 곳에는 환도산성(丸都山城)을 쌓았다.

광개토대왕비가 거대한 전화부스를 연상케 하는 보호각에 갇혀있다.


고구려 성곽배치의 특징은 평지성과 산성을 한 세트로 한 점이다. 졸본성은 상고성자, 하고성자와, 집안은 국내성과 환도산성이, 평양에서는 안학궁과 대성산성이 대칭모양으로 한 조(組)를 이루고 있다. 평시에는 평지에 있는 도성에 살다가 유사시에는 왕과 백성이 산성으로 피신하여 농성(籠城)을 하며 적을 물리쳤던 것이다. 농성이란 성문을 굳게 잠그고 수비에 주력하며 적이 물러갈 때를 느긋하게 기다리는 전법의 하나다. 오늘날 각종 시위 현장에서 '00단체가 농성중..."이라는 말을 흔히 쓰는데 '농성'이라는 용어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 말이다.

집안 시는 도시 통째로 거대한 고구려 박물관이다. 주인 모를 고구려 고분이 즐비하고 광개토대왕비, 장군총, 국내성, 환도산성 등 고구려 유적이 도시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 유장한 역사의 숨결은 시공을 초월하여 고구려의 혼을 토해놓는다.

답사 일행은 우선 환도산성부터 둘러보았다. 삼국사기에 위나암성(尉那岩城)이라고 기록된 환도산성은 집안의 보루다. 해발 676m, 기복이 심한 산성자산의 산봉우리를 감싸고 돌아간 환도산성은 둘레 6천951m로 집안을 방어하는 요새다. 뒤와 옆쪽으로는 작은 판자를 엇갈려 포개놓은 듯한 산맥들이 첩첩으로 성을 둘러싸고 있다. 산성의 남쪽으로는 시야가 확 트인다. 성안에서 흐르는 물은 통구하(通溝河)를 통해 압록강으로 진입한다.

남문을 통하지 않고는 성안 진입이 어려우므로 주력 방어시설은 이곳에 밀집해 있다. 자연조건을 충분히 이용한 성으로 4면의 성벽 쌓기가 제각기 다르다. 성벽높이는 4~5m에 달하나 무너진 곳이 많다. 성문터는 5개가 있다. 망루도 남아 있는데 전화(戰禍)로 인해 그슬린 자국이 완연하다. 성안에는 왕궁 터와 병영 터를 알리는 석렬(石列)이 남아 있을 뿐이다. 성 안팎에는 수십 기의 고구려 고분이 사열을 하고 있다.

동산만한 고구려의 거대한 무덤은 집안 시에 1만2천여 기나 있었는데 절반가량이 파손되고 지금은 6천여 기가 남아 있다. 마치 경주를 연상케 하는 고분의 도시다. 이곳의 고분은 수렵도, 무용도에 이르기 까지 상당수의 벽화가 노출되어 있었으나 중국의 동북공정 후 '5호분'을 제외하고는 모두 폐쇄하였다.

고구려의 무덤은 돌무지무덤(적석총)으로 돌방(현실)과 돌방으로 통하는 연도를 만든다. 신라의 적석총은 입구가 없어 도굴이 적은데 고구려의 적석총은 돌방으로 들어가는 문이 있어 도굴이 심하게 자행되었다. 집안 시내 고분의 90%는 도굴된 것으로 보고 있다. 5호분에는 희미한 색깔이나 해와 달 그림이 돌방을 비추고 있으며 좌청룡, 우백호, 북현무, 남주작이 여전히 주인의 무덤을 지키고 있다.

집안시 외곽에 위치한 환도산성. 남쪽 벽이 많이 허물어져 있다.


고구려의 두 번째 도성인 국내성은 시내 한 복판에 자리 잡고 있다. 둘레 2천686m에 높이 6m에 달하는 도성이었으나 도시개발로 많이 훼손되어 높이가 1~2m밖에 안 되는 난장이성 으로 변했다. 왕궁 터에는 공원이 들어서고 아파트가 밀집해 있어 얼핏 보면 아파트의 담장 같은 느낌도 든다. 세월의 무게와 훼손을 막지 못하고 토막이 난 것이다. 국내성은 원래 토성이 있던 자리에다 석성을 다시 쌓은 것이다. 국내성 일대는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앞에는 압록강이 있어서 적을 방어하기에 좋은 요충지였다.

북쪽, 동쪽, 남쪽 3면에 적병의 침투를 차단하기위해 파놓은 연못인 해자(垓字)가 있었고 서쪽 벽은 통구하를 자연 해자로 이용하였다. 지금은 해자의 물이 말라붙었으며 도성의 위용도 찾아 볼 수 없으나 초기 고구려 성곽의 길잡이가 되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 치성(雉城)은 무려 14개에 이르며 성문은 본래 6개에 달했다.

집안 시 태왕향(太王鄕) 대비가(大碑街)에 위치한 광개토대왕비는 단연 집안 고구려 유적의 으뜸가는 스타이다. 고구려 제19대 임금인 광개토왕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아들인 장수왕이 414년(장수왕3년)에 세웠다. 비석은 받침돌과 비신(碑身)으로 나누어진다. 받침돌은 길이 3.35m, 너비 2.7m의 화강암으로 만들었고 여기에 홈을 파서 비를 세웠다. 비신은 자갈돌이 듬성듬성 박혀있는 응회암을 사각기둥 형태로 만들었는데 많이 다듬지는 않았다.

비의 높이는 6.39m, 너비 1.3~2.m로 우리나라 최대의 비석이다. 4면에 글자를 모두 새겼는데 각 면에는 비문이 들어갈 윤곽을 긋고, 다시 그 안에 세로로 선을 그어 각 행을 표시하였다. 4면을 합하여 44행 1770여자로 이 중 150여자는 훼손되어 판독이 어렵다. 서체는 예서체로 단아하면서도 고구려의 활달한 기상을 담고 있다. 우리나라 서예계에서는 '호태왕체'라하여 이 서법을 연구하는 동호인이 많다.

이 비는 고구려의 시조 추모왕(주몽)의 건국설화를 비롯하여 광개토왕의 약력 업적, 비의 건립경위 등을 설명하고 있다. 광개토대왕의 정복활동을 연대순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능을 지키는 수묘인 330 가구에 대한 내력 및 관리법령을 담고 있다. 광개토왕이 죽은 뒤 만 2년이 되는 414년에 세운 능비는 고구려의 멸망과 더불어 잊혀져 있다가 1880년 무렵 다시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하였다.

집안시 중심가에 있는 국내성. 그간 훼손되어 아파트의 담장처럼 보인다.


아직도 이 비의 일부 해석을 두고 한 · 일 역사학계 간에는 첨예한 대립을 보이고 있다. 이른바 '신묘년(辛卯年)조'기사가 임나임본부설의 근거로 일본 측 학자에 의해 주장되고 있는 판이다. 비문의 일부가 마모되어 판독이 불가능한데다 일 측의 비문날조 의혹이 강력하게 제기되고 있다. 중국 측은 이 일대의 정비를 위해 300여 호에 달하는 농가를 이주시키고 광개토대왕비, 광개토대왕릉, 장군총 일대를 말끔히 정비해 놓고 입장료를 받고 있다. 광개토대왕비는 국보 제205호인 중원 고구려비와 똑같은 모습의 4면비로 글자체도 똑같으나 규모면에서 훨씬 크다. 중국은 노천에 있던 비석에 보호각을 씌워놓았는데 어쩐지 답답한 모양이다. 보호각은 거대한 전화 부스를 연상케 한다. 4면을 유리로 막아 광개토대왕의 함성이 갇힌 듯하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으나 사진 찍기가 매우 불편하다. 비신 바닥에는 동전이 수북하다. 기복신앙의 유습이다.

능비의 서남쪽 약 300m 지점에는 광개토대왕릉이 있다. 수많은 고구려 고분 중에서 유일하게 피장자가 밝혀진 무덤이다. 태왕릉(太王陵)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벽돌이 이곳에서 나온 바 있다. 명문 벽돌에는 '원태왕릉 안여산고여악(願太王陵 安如山固如岳)이라고 새겨져 있다. "호태왕이시어, 산처럼 편안하고 산맥처럼 굳건하소서'라는 뜻이다. 현지에서는 광개토대왕이라는 용어보다 '호태왕'이라는 명칭을 더 즐겨 쓴다.

이곳에서 1.3km 떨어진 곳에는 동양의 피라밋이라 일컫는 장군총이 만주벌판을 굽어보고 있다. 누구의 무덤인지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으나 아마도 장수왕의 무덤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장수왕은 427년 수도를 집안에서 평양으로 옮겼는데 어찌하여 집안에 무덤이 남아 있을까. 그것은 재임 중 집안에 무덤을 만들어 놓았다가 죽어서 고향에 묻힌 것이 아닌가 하는 해석을 불러일으킨다. 밑변길이 32m, 높이 12m에 달하는 장군총은 모두 1천100여개의 화강암을 계단식으로 쌓아 외견상 피라밋처럼 보인다. 무덤방은 다섯째 계단에 있으며 지금도 왕비와 합장을 한 듯한 관대(棺臺:관을 놓는 자리)가 있다. 무덤방이 있는 상층부로 올라가려면 나무계단을 이용해야 한다. 무덤도 거대하지만 무덤 주위의 12개 받침돌도 엄청나다. 안타깝게도 1개의 받침돌은 없어졌다. 무덤을 지키는 호석(護石)인데 이를 12지신과 연관시켜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일행은 비행기를 타고, 버스로 갈아타고 국경을 넘으며 하루 종일 달려간 고구려 답사 길인데 결국 고구려 땅이던 낭비성(청주), 국원성(충주) 등지서 출발하여 고구려 땅인 집안에 도착하였으니 고구려의 영토가 얼마나 광활했나를 가늠케 한다. 손오공이 재주를 피워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다.

이번 유적답사에 안내를 맡은 박상일 청주대 박물관 학예관은 "만약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더라면 이 넓은 영토가 모두 우리 땅일 것이라고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역사에서는 만약 이라는 가정법이 성립하지 않고 필연의 결과만을 따진다"고 말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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