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많음동두천 22.4℃
  • 구름많음강릉 23.7℃
  • 맑음서울 24.0℃
  • 구름많음충주 23.8℃
  • 구름조금서산 26.0℃
  • 구름조금청주 25.2℃
  • 구름많음대전 24.7℃
  • 구름많음추풍령 23.4℃
  • 구름많음대구 23.5℃
  • 구름조금울산 24.7℃
  • 구름많음광주 25.8℃
  • 구름조금부산 27.9℃
  • 구름조금고창 26.8℃
  • 구름조금홍성(예) 26.0℃
  • 구름조금제주 27.7℃
  • 구름많음고산 25.8℃
  • 구름조금강화 23.1℃
  • 구름많음제천 22.2℃
  • 구름많음보은 23.4℃
  • 구름많음천안 24.0℃
  • 구름조금보령 26.1℃
  • 흐림부여 22.9℃
  • 구름많음금산 24.8℃
  • 구름많음강진군 25.9℃
  • 구름많음경주시 24.7℃
  • 맑음거제 25.1℃
기상청 제공

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아동요리연구소 '매화요리봉사회' 이희순 소장

"행복을 요리할 수 있다는 희망 봤어요"

  • 웹출고시간2013.09.23 19:11:42
  • 최종수정2013.09.23 23:18:50
햇살이 좋았던 지난 봄날이었다. 노인들이 삼삼오오 모여 솜털 달린 애기 쑥의 밑동을 잘라내고 이파리를 하나씩 뜯어 깨끗한 물에 헹궈 냄비에 끊여냈다. 병실마다 조금씩 흘러드는 쑥 향기가 환자들로 하여금 행복한 꿈을 꾸게 만든다. 치매환자가 대부분인 이곳 노인전문병원에서 봄날의 쑥 향기는 아득히 먼 시절의 이야기들을 떠오르게 하지 않을까.


"자, 오늘은 여러분이 좋아하는 쑥개떡을 만들려고요. 처음부터 물을 너무 많이 넣으면 반죽이 질어지니까 적당하게 넣으셔야 됩니다. 손으로 꾹꾹 눌러가며 치대주면 쫀득한 반죽이 될 겁니다. 잘 하실 수 있죠·"

긴 테이블에 둘러앉은 노인들이 헤드셋을 낀 아동요리연구소 이희순 소장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앞에 놓인 멥쌀가루와 물기 뺀 쑥 한 덩어리 그리고 설탕과 따뜻한 물 한 컵……누구나 할 것 없이 재미있는 장난감을 앞에 둔 아이처럼 표정이 환해진다.


수년 전부터 아동요리연구소 '매화요리봉사회'에서는 치매노인과 불우한 환경의 어린이들을 위해 요리봉사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요리에 봉사의 꽃이 활짝 핀 것이다.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일 때, 강물에 빠져 고막수술을 했어요. 그때부터 귀가 잘 들리지 않았어요. 학교수업을 따라갈 수 없었던 아이가 고등학교 때 에는 아예 정규학교를 포기하고 혼자 검정고시로 대학을 들어가겠다고 말하더군요."

이희순 소장은 정규과정의 학업을 포기하겠다며 의자에 벗어놓은 아들의 교복을 보면서 한없이 울었다. 그러다가 혼자 공부해야 하는 아이에게 엄마인 자신이 무언가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너도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하지만, 나도 홀로 뭔가를 하는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그렇게 그녀가 선택한 것이 바로 요리였다. 96년도부터 요리학원을 찾아다니며 한식, 중식 등 닥치는 대로 배웠다.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엄마도 세상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것을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에게 요리는 아들에게 보내는 응원가요, 희망이었다. 요리사자격증을 하나씩 딸 때 마다 아이에게 보란 듯이 자랑했다.

그리고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대우 꿈동산'으로 달려가 4명의 소년소녀가장을 위해 그동안 배운 요리로 봉사를 시작했다. 자신이 성취한 결과물을 다시 누군가와 나눌 수 있는 자원봉사야말로 아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던 것이다. 그와 더불어 노인 복지마을, 기적의 도서관, 서현중학교 등지에서 요리봉사활동을 늘려갔다. 시간이 지나자, 함께 요리봉사를 하겠다는 자원봉사자들이 생겨났다. '매화요리봉사단'이 그렇게 결성된 것이다. 지금은 벌써 회원만 18명으로 늘어났다. 그리고 학교를 그만두고 어머니의 봉사와 함께 홀로 공부하던 아들은 마침내 장애를 극복하고 미국의 명문대인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UCSD)대학'에 입학했다.


"비 내리는 호남선, 완행열차에 흔들리는 차창 너머로……"

치매노인병원에서 그녀는 요리봉사가 끝나면 환자들과 '남행열차'를 꼭 부른다. 노래를 부르면 치매에 걸린 환자들은 저절로 어깨를 들썩거리며 흥얼흥얼 노래를 따라 부르는 것이다. 그 모습에서 그녀는 다시 희망을 보았다. 요리를 하는 손끝에서 잃었던 기억이 되살아나고, 유행가를 통해 가슴 저 밑에 내재되어 있던 가사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이곳 병원에서 전혀 말을 못하시던 한 어르신들이 반복해서 남행열차를 부르더니 노래가사를 띄엄띄엄 따라 부르는 겁니다. 요리와 노래를 통해 다시 잃었던 기억을 살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보였어요."

몇 달 후, 정말 기적 같은 일이 벌어졌다. 말을 잃어버린 노인 한명이 띄엄띄엄 자신의 이름을 말하면서 동시에 말문도 열렸던 것이다. 다음 달 요리봉사를 하러 갔더니 그분이 보이지 않았단다. 어느 정도 치료가 되어 퇴원하셨다는 반가운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인생을 대신 살아주지 못하지요. 요리봉사활동과 같은 특별한 경험을 통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뜻밖의 행복한 삶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하더군요."

벌써 추석도 지나고, 가을만 저 홀로 깊어가고 있다. 아동요리연구소 '매화요리봉사회'에서 또 다시 어떤 요리의 꽃을 피워낼지 궁금하기만 하다.

/윤기윤 기자 jawoon62@naver.com
이 기사에 대해 좀 더 자세히...

관련어 선택

관련기사

배너

배너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