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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군의 날 특집>70년 만에 무성화랑무공훈장 받은 박재영 옹

지난 24일 6·25 전쟁 참여한 박재영 옹
1950년 입대 후 1954년 전역 전까지 전장 최전선 누비며 공 세워
군 훈장명부 정보 오류로 훈장 받지 못하다 군 도움으로 70년 만에 훈장 수여받아

  • 웹출고시간2024.09.29 16:49:15
  • 최종수정2024.09.29 21: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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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유공자인 박재영 옹이 화랑무공훈장과 훈장증 수여식에서 거수경례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 김용수기자
[충북일보] 국가의 부름을 받고 6·25전쟁에 참여했던 박재영(95)옹이 70년 만에 무성화랑무공훈장을 받게 됐다.

지난 1954년 10월 서훈이 결정됐지만 훈장명부에 이름과 군번이 모두 잘못 기재됐던 탓에 훈장을 받지 못하다 군의 도움으로 공을 인정받게 된 것이다.

청원군 오송읍 쌍청리에서 농사일을 하던 박옹은 6·25전쟁이 발발하면서 1950년 7월 15일 육군 병사로 입대했다.

당시 그의 나이 만 21세.

후퇴하는 국군의 명령을 받아 보은 회인면에서 옥천, 대전까지 내려간 박옹은 기차를 타고 경북 칠곡군 왜관으로 이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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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유공자인 박재영 옹이 6·25 전쟁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 이철성 단장에게 화랑무공훈장과 훈장증을 받고 있다.

ⓒ 김용수기자
동부전선을 돌파해 경주를 거쳐 부산에 진출하려는 북한군을 낙동강 전선에서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미군 장성과 다수의 병사가 포로로 잡히는 등 북한군의 기세는 하늘을 찔렀다고 박옹은 전했다.

당시 6사단 2연대 소속이었던 박옹은 일주일 동안 기본 훈련을 받고 전장에 투입됐다.

그는 국군, 유엔군과 함께 낙동강 방어선에서 힘겨운 방어전을 치렀다.

박옹은 자신이 참전한 6·25전투 중 낙동강 인근에서 치렀던 전투가 가장 치열했었다고 회고했다.

낙동강 방어선은 대한민국의 운명을 가르는 최후의 보루였던데다, 국군과 유엔군은 북한군에 비해 수적, 물적으로도 매우 열세였기 때문이다.

그는 "당시 북한군은 전차 200여 대를 끌고 남하하는 상황이었는데 우리 군은 전차는 커녕 M1 소총과 탄피, 탄두가 고작이었다"면서 "같이 전쟁에 참전한 전우들은 내 부모와 조국을 지킨다는 마음 하나로 자신의 목숨을 던졌다"고 말했다.
며칠이면 낙동강을 넘어 부산까지 점령이 가능하겠다고 생각한 북한군은 국군의 강력한 방어작전으로 남하에 번번이 실패하자 전의를 상실하기 시작했다.

이에 전세를 뒤집을 수 있겠다고 판단한 6사단은 인접한 1사단과 8사단은 긴밀한 작전을 폈다.

근처 평야와 험준한 산에서 악전고투를 체험해 온 박옹이 소속된 2연대에 매복 작전을 지시한 것.

사단의 예상대로 북한군은 2연대가 매복한 곳을 지나갔고, 2연대는 북한군을 향해 사격을 개시했다.

박옹은 "험준한 산악 지리를 잘 알고 있는 국군을 상대로 북한군이 대처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라며 "동시에 하늘에선 유엔 공군의 전략적 폭격으로 북한 병력이 대량 손실됐다"고 설명했다.

전투는 육탄전으로 이어졌고, 교전 중 박옹은 북한군에 총격을 받아 팔 등에 부상을 입었다.

부산의 제5육군병원으로 옮겨진 박옹은 한 달가량 치료를 받았다.

그는 "병원엔 부상병들이 가득했다. 하루에 3천 명 가량이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내려왔다"며 "이 기간에 유엔 사령관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됐다"고 했다.

이후 국군은 부상 정도가 경미하거나 회복이 된 병사들을 소집하기 시작했다.

박옹은 5사단 27연대에 소속됐고, 경기 가평, 강원 청평, 횡성에서 북한군, 중공군과 교전을 벌였다.

박옹은 "사방에 적이라는 말이 딱 맞는 상황이었다. 위에선 북한군을 돕기 위해 내려온 중공군이, 아래에선 북으로 올라가려는 패잔병들과 전투를 치렀다"며 "특히 보급이 끊겼던 패잔병들은 수 일 동안 굶은 상태라 죽기 살기로 덤벼들어 생사를 오갔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3년여간 전장에서 최전선을 누빈 박옹은 전쟁 휴전 1년 뒤인 1954년 6월 15일 일등중사(하사)로 전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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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유공자인 박재영 옹이 6·25전쟁무공훈장찾아주기조사단 이철성 단장에게 화랑무공훈장과 훈장증을 받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김용수기자
이같은 그의 혁혁한 공은 나라에선 인정받지 못했다.

박옹의 전우들은 그간의 노력을 인정받아 무공훈장 등을 수여받았지만 박옹은 받지 못한 것이다.

이는 6·25 전쟁 당시 상황이 급박하다 보니 훈장명부가 제대로 관리되지 않았고, 이 과정에서 박옹의 정보가 잘못기재됐던 탓이다.

그러다 최근 육군인사사령부의 '6·25전쟁무공훈장찾아주기' 사업을 통해 지난 24일 무성화랑무공훈장을 전달받았다.

화랑무공훈장은 대한민국 4번째 무공훈장으로 전투에 참가해 용감하게 헌신, 분투하는 등 보통 이상의 능력을 발휘하거나 기타 여러 공적을 올린 유공자에게 수여하는 훈장이다.

박옹은 올해 충북지역 생존 수훈자 가운데 처음으로 훈장을 전달 받았다.

그는 "70년 가까이 공을 인정받지 못했는데 이제라도 직접 군 관계자들이 직접 찾아와 훈장을 수여해주니 만감이 교차한다"며 "우리 대한민국은 아직 종전 국가가 아닌 휴전 국가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군에 따르면 도내에선 840명의 수훈자가 무공훈장찾아주기 사업을 통해 무공훈장을 전달받았으며, 이중 박옹을 포함한 생존자는 23명이다.

/ 임성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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