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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8.03.27 22:11:32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논제

아래의 세 <제시문>의 논지를 각각 요약하시오.

[2008학년도 성균관대 수시 2 모의 논술]

역사를 인식하는 관점은 3가지다. 역사는 과거를 심판하고 미래의 행복을 제시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본래의 그대로를 것을 보여준다. 한강의 옛 모습은 현재의 우리에게 새로운 이미지로 다가온다.

<제시문>

(가) 일어난 사건들 그 자체로서의 역사는 우리의 인식 이전에 이미 어떤 형태로든 완성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역사 세계는 완전히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역사 세계를 기술하는 진술들은 존재했던 그대로의 사실을 드러낼 때에만 참이다. 역사 탐구자는 탐구의 과정에 개입되는 자신의 주관적 관점이나 사회적 제약을 통제함으로써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 밝혀낼 수 있다. 이러한 역사 탐구의 근본 원리들을 따를 경우, 역사를 탐구하는 자는 비록 그 자신도 역사의 흐름 속에 포함된다고 하더라도 그 상황을 초월하여 역사 세계를 객관화시키는 일이 가능하다. 주관적, 사회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역사 탐구자는 그런 제약을 배제하거나 통제할 수 있으며, 또 그럼으로써 과거의 사실들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런 관점에서 랑케(Leopold von Ranke)는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역사 연구는 과거를 심판하고 동시대인에게 미래의 행복을 제시하는 임무를 수행해왔다. 그렇지만 현재의 연구는 그와 같은 임무를 수행하지 않으며, 실제로 본래 있었던 그대로의 것을 보여줄 뿐이다.” 이와 같은 역사관의 인식론적 기초는 수동주의 혹은 축적주의라 할 수 있다. 수동적 인식론은 인식주관으로부터 독립된 사물의 존재와 순수한 관찰을 전제하는 것이다. 그것은 모든 참된 지식이란 우리의 감각 경험을 통해 들어오며, 흡사 거울이 사물의 모습을 상으로 비추듯, 우리의 감각은 사물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드러낼 수 있음을 주장한다. 이때 오류는 전적으로 인식과정에 개입되는 우리 주관의 편견이나 욕망에 의해 사물의 상이 찌그러져 나타나는 것일 뿐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류를 피하는 최선의 길은 우리 자신의 개입을 배제하고 전적으로 수동적으로 남는 것이다. (중략) 증거는 역사 세계가 남긴 자료들이다. 증거에 의해 역사 세계는 시간을 넘어 존속한다. 그러므로 증거는 역사 세계의 정보를 제공하며 이것에 의해 역사 서술이 가능해진다. 역사 서술은 다시 증거에 의해 입증되어야 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역사 세계가 재현된다.

(나) 과거는 완벽히 복제될 수 없으며 또다시 재구성될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역사 구성은 필연적으로 선택적이다’라는 원칙은 너무 자명한 것이다. 그리고 이 원칙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를 서술할 때는 이 원칙에 따라 사실들의 선택을 규제하기 때문이다. 이 원칙은 과거의 사건에 부과되는 비중을 결정하며, 또한 무엇을 선택하고 무엇을 생략해야 하는지를 결정한다. 아울러 선택된 사실들이 어떻게 정리되고 배열될 것인가도 결정한다. 게다가 사실의 선택이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모든 역사는 필연적으로 현재의 관점에서 쓰며, 또한 모든 역사는 현재의 역사라는 사상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여 역사는 동시대인들이 현재에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들에 대한 기술(記述)이라는 피할 수 없는 결론에 다다르게 되는 것이다.” (중략)

아주 간단하게 생각해 보아도, 역사 서술에서 사용되는 개념자료들이 역사가 쓰여진 그 당시의 개념자료들임은 쉽게 알 수 있다. 주요한 원칙들이나 가설들에 대해 유용한 자료는 바로 역사적 현재가 공급한 자료들이다. 문화가 변화하듯이 한 문화에서 지배적이었던 개념도 변화한다. 당연히 자료를 검토하고 평가하고 정리하기 위한 새로운 관점이 생겨난다. 바로 이 때에 역사는 다시 쓰여진다. 이와 같이 어떤 특정한 개념들은 어떤 특정한 시기의 문화에서 매우 중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미 완성된 상태의 과거에서 발견되는 ‘사실들’이 과거의 사건을 구성하기 위하여 적용된 특정한 개념들을 정당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같은 견해는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다) 역사란 유전자처럼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것이 아니라 집단적 삶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일종의 사회적 기억장치다. 기억이란 유전자 정보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남아 있는 과거의 잔상들이거나 그것들을 임의적으로 조합해서 재구성한 것이다. ‘나’라는 개인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것이 기억이라면, 우리의 집단적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은 역사다. 기억 상실증에 걸리면 자기가 누구인지조차 모르게 되는 것처럼, 한 민족이 자기 역사를 빼앗기면 신채호나 박은식의 말처럼 국가의 혼과 정신을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

역사란 나의 기억이 아니라 우리의 기억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누구인가? 누가 우리인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역사다. 우리의 기억이 역사가 되면서 동시에 우리가 누구인지를 역사가 정의한다는 것은 순환논법이다. 기억하기 위해 역사를 쓰는가 하면, 역사를 통해 기억이 만들어진다. 기억과 역사 가운데 무엇이 우선하는가는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의 논쟁을 벌이는 것과 같다.

이런 딜레마에서 벗어날 수 있는 탈출구는 일단 둘 가운데 어느 하나를 출발점으로 해서 사고실험을 해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드러나는 진실은 우리의 기억이 역사가 된다기보다는 역사가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하는 코드라는 것이다. 역사라는 코드는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자연적 유전자가 아니라 교육에 의해 주입된 ‘문화적 유전자’이다. 미국의 역사가 월리엄 맥닐 말대로 ‘인간을 진정한 사회적 동물로 만드는 것은 집합적 기억으로서 역사’라는 ‘문화적 유전자’다.
그렇다면 역사학에서 문제는 사회적 기억으로서 ‘문화적 유전자’를 누가 어떤 식으로 조합하고 구성하여 교육을 통해 후손에게 물려줄 것인가이다. 조지 오웰이 『1984』에서 썼듯이 “현재를 지배하는 자가 과거를 지배하고, 과거를 지배하는 자가 미래를 지배한다.” 한 사회 내에서 또는 국제관계에서 어느 한 집단이거나 특정 국가가 현재와 미래의 지배자가 되고자 할 때 일차적으로 날조하는 것이 역사라는 내러티브다.
<해설>

역사에 대한 인식이라는 측면에서 (가)는 객관적 성격을 강조하고 주관적 제약을 배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반면, 대조적인 입장인 (나)에서는 역사 탐구의 주관적 측면을 부각시켜 역사는 결국 현재적 관점에서 해석된다고 본다. 양자를 대조했다면, (나)의 주관적 관점보다 더 도전적인 해석을 하고 있는 (다)의 입장을 제시하면 된다. (나)와 (다)는 공통점과 차이점을 뚜렷하게 드러내어 비교할 것. 다만 주의할 것은 어떤 입장을 옹호하거나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미국 자동차사의 역사를 바꾼 포드 모델 T. 1908년 10월 1일이 공식생일이고 최초생산일은 9월27일이었다. 이후 자동차는 수많은 변화를 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예시 답안>

세 제시문들은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있다. 이것은 문학에서의 시점으로 비유할 수 있다. 먼저 (가)는 3인칭 관찰자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역사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역사라는 이야기에 관여하지 않고 밖에서 보이는 그대로만 표현해야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나)는 역사라는 이야기 속에서 봐야한다. 탐구하고 있는 ‘나’의 주관이 개입된다. 즉, ‘나’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나’, 다시 말해서 주인공이 누구냐에 따라 한 시대의 역사에서도 다양한 견해가 나올 수 있다. 왜냐하면 주인공이 현재 자신의 입장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다)은 3인칭이 아닌 1인칭 관찰자들인 우리의 시점이 된다. ‘나’라는 개인이 아니라 ‘우리’라는 집단의 입장에서 역사를 인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하지만 개인의 주관이 아니라 우리라는 집단의 주관이 개입되어서 우리의 정체성을 형성시켜 주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우리나라 사람들은 우리는 단군의 자손인 단일민족이라는 과거의 ‘우리’가 남긴 사회적 기억이 현재의 우리에게 교육으로 주입시켜 혼혈아들을 ‘튀기’라고 비하하며 멸시하는 풍조를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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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署 '병영문화 개선' 시대흐름 역행

청주청원경찰서 방범순찰대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운동장으로 사용하던 경찰서 내 1천21㎡ 규모의 테니스장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청원서는 예산 19억원을 들여 내달 3일부터 오는 4월(예정)까지 민원실 이전 공사에 들어간다.민원인의 원활한 업무처리 등을 위해서다.문제는 민원실 신축 예정 부지인 테니스장을 방범대원들이 체육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현재 청원서에서 생활하고 있는 의무경찰은 모두 123명(방순대 107명·타격대 16명).복무 특성상 활동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대원들에게 작은 공간이지만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중요 시설이다.하지만 민원실이 이전할 경우 체육활동 공간이 사라지게 되고 청원서는 청주지역 3개 경찰서 중 외부 운동공간이 없는 유일한 경찰서가 된다.일각에서는 문화·체육 시설을 확충하는 등 병영문화를 개선하려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경찰 관계자는 "경찰서에 체력 단련실이 있긴 하지만 민원실 이전 공사가 시작되면 외부 운동장은 이용이 어려울 것"이라며 "외부 운동장 등에서 주 1회 정도 대원들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운동장을 이용할 때 마다 외부기관의 협조를 얻어 사용한다는 얘기다.이 때문에 일부 대원들은 평일 체육활동 등 자유로운 체육활동을 할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한 방순대원은 "복무 중이기 때문에 활동이 제약될 수밖에 없는데 체육공간까지 사라진다니 아쉬울 따름"이라며 "경찰서 외부 운동장을 사용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토로했다. / 박태성기자 ts_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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