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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노획 편지 속 '꼬마소녀' 찾았다

6.25 발발 63주년
전종대옹 '순옥'으로 기억한 이순교 할머니
현재 76세로 고향서 가까운 조치원에 거주
전쟁중 현암사람, 장떡 만드는 등 각종부역
남은 수취인중 4명은 '이미 고인' 최종 확인
SBS, 23일 본보 보도 관련 특집다큐 방영

  • 웹출고시간2013.06.23 20:01:26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순옥양 바드라' 원문 (괄호안은 현대문)

전종대 옹이 1950년 9월 평양에서 보냈던 편지로 우측에 '순옥양 바드라'라는 글귀가 보인다.


고향 삼천(산천)을 떠나 어연간(어언간) 가을이 돌아왔구나. 모든 곡식들은 고개를 수구리고(수그리고) 주인에게 축복을 하고 이때을(를) 답하여 순옥아 그간 내가 떠난 후에 몸이나 근강함은(건강함은) X주어라. 그리고 보면 다 전선생은 집을 떠난 후에 아무연(아무런) 업시(없이) 군무에 봉무하고 있다. 이것은 순옥에긔도(에게도) X는 덕으로 무사히 조국통일 위하여 힘끝(힘껏) 싸우고 있다. 아무쪼록 순옥아 너는 어머니에 교훈을 잘 듣고 조국을 위하여 힘끝(힘껏) 수고를 하여라. 그리고 순옥아 너는 서로 형재(형제)끼리 동무끼리 서로 사랑으로 놀어라(놀아라). 내가 너희를 사랑할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나는 무사하니~ 열심하여라. 할 말은 만으나(많으나) 이만 끝. 전선생. 1950. 9. 20
속보= 6.25 미군 노획 편지 중 받는이(수취인)의 주소가 '충북'으로 돼 있으면서 현재도 생존해 있는 인물이 확인됐다.

본보는 이번 보도건을 마무리 짓는 차원에서 이미 기사화한(6월 10일, 14일, 19일자) 발신인 뿐만 아니라, 수취인 12통의 편지 주인공도 탐문·추적했다. 방법은 전과 같이 주민센터를 통해 지인을 연결하는 수법을 사용했다.

미군이 평양에서 노획한 편지 중 '충북'이 수취인 주소인 인물은 최수철(청원 강서), 이순섭(〃), 이순옥(〃), 전종옥(〃), 리덕기(음성 맹동), 김성래(진천 당부), 김성해(〃), 원영히(단양 보안대), 황호연(청원 강서), 최석영(청원 오창), 문관분(음성 대소), 이원상(충주) 등이다.

그 결과, 12명의 한 명인 '이순옥' 할머니가 당시 수취인 주소지(충북 청원군 강서면 현암리)에서 가까운 세종특별시 조치원읍 침산리에 생존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금년 76세.

이순옥 할머지의 본래 이름은 '이순교'이나, 이는 발신자 전종대(전남 여주 거주) 옹이 1950년 9월 평양에서 편지를 쓸 때 나이 차이(10살)가 많이 나 이름 기억에 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나머지 수취인 가운데 △최수철, 전종옥, 리덕기, 황호연 등 4명은 이미 고인이 됐고 △문관분 할머니는 생존해 있으나 투명 중이며 △나머지 6명은 북으로 되돌아 갔거나 이들을 기억하는 사람이 존재하지 않았다.

다음은 편지에 '순옥양'으로 등장하는 이순교 할머니와의 일문일답이다. 편의상 존칭은 생략한다.

이순옥 할머니(본명은 이순교) 할머니가 조치원 집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 1950년 7월 전종대 옹이 북한 인민군에 강제 징집돼 끌려간 사실을 몰랐나.

"워낙 경황이 없는 때라 당시에는 몰랐다. 전 할아버지가 결혼을 해 현암마을에 왔을 때 그때야 다시 볼 수 있었다. 대략 6.25가 일어난지 10년 가까이 지난 시점으로 기억한다."

- '순옥양 바드라'로 시작되는 편지글에는 전옹이 할머니를 매우 귀여워했던 것으로 나타난다. 할머니 마음 속에는 당시의 전옹은 어떤 모습으로 기억돼 있나.

"굉장히 자상한 오빠였다, 노래도 많이 불러주고 나이 차이가 꽤 많은데도 숨박꼭질 놀이를 같이 했다. 오빠가 나타나면 모두 손뼉치며 좋아했다."

- 취재 과정에서 편지가 공개되면서 주일학교 선생이었던 여수의 전옹과 50여년만에 통화한 것으로 알고 있다. 기분이 어떠했나.

"너무 기분이 좋았다. 그러면서 내 이름이 '이순교'인데 왜 그때 '이순옥'으로 썼느냐고 애교섞어 따졌다. 그런데 너무 오랜만에 통화해서 그런지 주일학교 선생 때의 그런 목소리를 느낄 수는 없었다. 세월이 그렇게 만들었다."

- 북쪽 사람이 현암마을에 들어왔고, 전옹은 북으로 끌려갔다. 그때 마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나.

"공산당이 들어온 후 마을에는 '여성위원단'이 조직됐다. 그리고 여성위원단은 밤마다 소집돼 자정까지 동구나무 아래서 북한 노래를 배워야 했다. 또 2명씩 한 조를 짜 매일밤 이웃마을로 쪽지를 전달하는 심부름을 시켰다. 비밀이었기 때문에 편지 내용을 볼 수는 없었다. 이밖에 어머니들이 아침마다 장떡과 보리 미숫가루를 만들어 공산당원들에게 바치던 모습도 기억난다. "

인민군 50일 치하의 청원 현암마을

- 현암마을 남자들은 어떤 부역에 동원됐나.

"장떡과 보리 미숫가루가 담겨진 광주리를 지게를 이용해 매일이다시피 져날랐다. 모두 짐꾼 노릇을 했다, 어디로 전달하는지 몰랐지만, 자금 생각해보면 전선의 북한군들에게 보내진 것으로 보인다."

- 현암마을은 어느 정도 공산당 치하에 있었나.

"대략 50일 정도 되는 것 같다. 그 짧은 기간에는 머슴들이 큰 소리를 치면서 마을을 활개했다."

한편 SBS는 본보의 보도와 주제가 같은 '정전 60주년 특집 다큐- 부치지 못한 편지'를 23일 밤 11시 15분부터 65분간 방영했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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