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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06.22 18:54:5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나는 6.25 둥이다. 6.25가 발발하던 그해에 나는 피란길에서 태어났다. 만삭의 몸으로 피란을 간 어머니는 보통 고생이 아니었다. 혼자 몸도 추스르기 어려운 판에 아이를 가졌으니 다른 사람보다 곱빼기나 되는 고된 피란살이를 한 것이다. 어머니는 보은에서 영동으로 피란을 갔다. 영동 어느 마을에서 며칠을 머무르다 그 마을에서 다시 남행을 하는 순간 미군 비행기가 그 마을을 폭격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 마을이 노근리인지 여부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하신다.

한 많은 피란길에서 사내아이가 태어났다. 피란민들은 산부에게 골방을 내어주었고 어머니는 할아버지의 솜바지를 뜯어 배냇저고리를 만들었다. 그때 태어난 동갑나기 아이들 중 사내아이가 여자아이보다 훨씬 많았다. 사내아이면 그런대로 길렀으나 계집아이면 낙동강 물에 띄우기도 했다는 것이다. 전쟁 중에는 남아선호 사상이 더 치열했다.

우리 친구 중에는 유복자가 여러 명에 달한다. S씨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결혼생활이 불과 일주일이었다. 그 짧은 허니문을 끝내고 그의 아버지는 조국의 부름을 받아 낙동강 전투에서 전사했다. 청상과부가 된 S씨의 어머니는 그 후 평생 수절하며 아들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다. S씨는 아버지의 얼굴도 제삿날도 정확히 모른다. 다만 언제 돌아가셨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비슷한 날에 선친 제사를 지낸다. Y씨 역시 유복자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속리산에서 공비토벌 작전에 참가했다가 전사했다. 이런 이유 등으로 6.25 둥이의 숫자가 적을 수밖에 없고 초등학교 학급 편성도 2개 반 밖에 되지 않았다.

처음엔 교실이 없어 천주교 등 종교시설에서 바닥에 엎드려 공부를 했는데 2학년이 되니 판잣집 교실이 지어졌다. 아침 조회는 "무찌르자 공산당, 막아내자 일본야욕"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시작했다. 반공 웅변대회나 반공 포스터 그리기 대회도 자주 열렸다. 아이들이 그린 포스터에는 북한사람들이 뿔이 난 도깨비나 손톱이 매우 긴 이상한 사람들로 표현됐다. 거리 곳곳에는 간첩 신고 요령에 대한 포스터가 늘 붙어 있었고 간첩신고에 대한 훈시가 매일같이 실시됐다.

수상한 자에 대한 신고 요령은 대개 이랬다. "남한의 담뱃값을 잘 모르는 자. 북한 방송을 청취하는 자. 구두에 황토 흙이 묻어 있는 자" 등이었다. 아스팔트 포장이 전무했던 시골 길에서는 구두에 황토 흙이 묻기가 다반사였다. 당시 북한 방송은 출력이 세어 라디오 다이얼을 돌리다 보면 쉽게 잡혔다. 북한 방송이 나올라 치면 얼른 다이얼을 돌리거나 이불을 뒤집어썼다. 듣지 말라는 북한 방송은 왜 그린 쟁쟁거렸던지...

적개심에 불 탄 나머지 반공교육의 수위만 높였지 실질적인 면을 간과하기 일쑤였다. 교사들의 지도방침대로 간첩을 식별, 신고하려면 안 걸려들 사람이 별로 없을 정도였다. 구두에 흙이 묻은 자가 어디 한 둘인가. 또 포스터에 등장한 대로 도깨비 같은 모습을 한 어리석은 간첩이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60년 대 까지는 북한이 우리보다 더 잘살았다. 당시 우리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 달러 정도였고 북한은 이보다 높았다. 그럼에도 우리가 북한보다 더 잘산다고 했다. 이런 사실을 정확히 알려주는 교사가 있었다면 아마도 관계기관에 끌려가 물고가 났을 것이다. 70년대부터는 역전이 되어 이제는 남북한의 경제력 차이가 10배 이상 벌어졌지만 말이다.

6.25가 발발한지 올해로 60주년을 맞는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이 전쟁은 3·8선을 휴전선으로 바꾸어 놓았을 뿐이다. 삼천리금수강산은 수많은 젊은이들의 피로 물들은 채 도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아직 6.25가 끝난 것이 아니다. 휴전협정은 전쟁을 중단한 것이지 전쟁이 끝난 종전 상태가 아니다. 한반도의 허리는 여전히 동강나 있고 천안함 사태 등 북한의 공격은 간헐적으로 이어진다. 전쟁은 평화의 어떤 전제조건인가. 인류사에서 보아왔듯 전쟁은 힘의 균형이 깨어질 때 터지기 마련이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는 반드시 국력을 키워야 한다. 그게 유비무환(有備無患)이다. 민족의 염원인 남북통일은 언제 오려나. 6.25 둥이의 흰 머리칼이 자꾸 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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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署 '병영문화 개선' 시대흐름 역행

청주청원경찰서 방범순찰대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운동장으로 사용하던 경찰서 내 1천21㎡ 규모의 테니스장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청원서는 예산 19억원을 들여 내달 3일부터 오는 4월(예정)까지 민원실 이전 공사에 들어간다.민원인의 원활한 업무처리 등을 위해서다.문제는 민원실 신축 예정 부지인 테니스장을 방범대원들이 체육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현재 청원서에서 생활하고 있는 의무경찰은 모두 123명(방순대 107명·타격대 16명).복무 특성상 활동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대원들에게 작은 공간이지만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중요 시설이다.하지만 민원실이 이전할 경우 체육활동 공간이 사라지게 되고 청원서는 청주지역 3개 경찰서 중 외부 운동공간이 없는 유일한 경찰서가 된다.일각에서는 문화·체육 시설을 확충하는 등 병영문화를 개선하려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경찰 관계자는 "경찰서에 체력 단련실이 있긴 하지만 민원실 이전 공사가 시작되면 외부 운동장은 이용이 어려울 것"이라며 "외부 운동장 등에서 주 1회 정도 대원들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운동장을 이용할 때 마다 외부기관의 협조를 얻어 사용한다는 얘기다.이 때문에 일부 대원들은 평일 체육활동 등 자유로운 체육활동을 할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한 방순대원은 "복무 중이기 때문에 활동이 제약될 수밖에 없는데 체육공간까지 사라진다니 아쉬울 따름"이라며 "경찰서 외부 운동장을 사용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토로했다. / 박태성기자 ts_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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