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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9.07.07 17:38:19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일제는 천년고도 청주의 얼굴 여러 군데를 마구 할퀴어 놓았다. 1911~1914년, 일제는 이른바 '시가지 개정'이라는 미명아래 둘레 1640m에 이르는 청주읍성을 허물어 그 성돌로 하수구를 쌓는 만행을 저질렀다. 뿐만 아니라 청주목과 충청병영에 있던 수많은 관아 객사건물을 헐거나 다른 곳으로 이전하였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시대 관아 건물은 청주목 동헌인 청녕각(淸寧閣), 망선루, 충청병마절도사 영문 등 서너 채에 지나지 않는다.

청주읍성을 헐은 표면적 이유는 도시 정비였으나 속사정은 다른 것 같다. 임진왜란 때 파죽지세로 북상하던 왜군은 청주성을 순식간에 점령했으나 조헌, 영규대사, 박춘무 등이 이끄는 의병, 승병에 패퇴하여 청주성을 다시 내주었다. 청주성 탈환전투는 육지에서 거둔 최초의 승전보다. 한반도를 강점한 일제는 임란 당시 청주성 전투에서 조선의 의병, 승병에 패배한 것에 대한 앙가픔의 수단으로 청주읍성을 무자비하게 헐었지 않나 하는 추측이다.

1930년대, 일제는 남석교까지 땅 속에 파묻었다. 남석교는 박혁거세 원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돌다리이자 길이가 80.85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긴 돌다리이다. 이때 발생한 큰 물난리로 무심천의 물길이 바뀌자 일제는 남석교를 매몰차게 매몰하였다. 천년고도 청주의 뚜렷한 징표인 두 가지 유물이 졸지에 없어졌다. 청주읍성과 남석교를 복원하자는 여론이 수십 년 전부터 제기되고 있으나 아직껏 결실을 보지 못하고 있다. 엄청난 토지보상의 벽에 부딪히고 있기 때문이다.

청주읍성의 완전한 복원은 불가능하다. 토지보상에다 간판을 가린다는 이유로 주민반대도 만만치 않다. 따라서 청주읍성의 복원은 현실적으로 부분적 복원이라는 차선책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불행 중 다행으로 청주읍성이 헐린 자리는 그대로 남아 있다. 성벽이 있던 자리가 고스란히 보도로 변했다. 그 보도를 따라서 돌기만 하면 청주읍성의 옛 흔적을 더듬을 수 있다.

청주읍성에는 4대문이 있었다. 동쪽에는 벽인문(闢寅門, 서쪽에는 청추문(淸秋門), 남쪽에는 청남문(淸南門), 북쪽에는 현무문(玄武門)이 그 위용을 뽐냈다. 이중 청주약국 앞의 청남문이 가장 규모가 컸으며 일제 때 그 모습을 찍은 사진이 전해진다. 청주읍성을 부분적으로 복원하자면 4대문의 복원이 우선적이다. 4대문 중에서도 청남문의 복원이 아쉬우나 시각적으로는 사람의 통행이 가장 많은 현무문의 복원이 효과적이다. 성안길에서 지하상가로 들어가는 입구에 있던 현무문은 약간의 부지만 매입하면 옛 모습의 재현이 가능하다.

그 옆으로는 시유지 녹지가 있어 이곳을 활용하면 현무문을 포함한 청주읍성의 부분적 복원을 실현시킬 수 있다. 인근 상인의 반대도 지속적인 설득을 통해 잠재울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당장은 상가의 간판을 가릴 수도 있겠으나 오히려 성문을 랜드 마크로 삼아 잘 활용하면 상가의 활성화도 도모할 수 있을 것이다. 나머지는 기존의 담장을 이용하여 벽화 등으로 처리, 읍성의 정취를 재현토록 하는 방안이 있다.

청주와 비슷한 규모의 전주는 풍남문을 재현하는 등 고도로서의 품격을 잘 살려내고 있다. 풍남문은 인근의 한옥 촌과 더불어 고도 전주의 역사 지킴이이자 랜드 마크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다. 제주도의 제주시는 시민운동을 벌여 관덕정을 비롯한 관아를 복원해냈다. 배비장전의 무대가 시공을 초월하여 펼쳐지고 그러한 구경꺼리는 단박에 관광마케팅으로 이어지고 있다.

충남의 해미(海美)읍성은 청주읍성과 규모가 비슷하다. 임란 이후 방어체계가 바뀜에 따라 해미읍성에 있던 충청병영이 효종 때 청주읍성으로 이전하였다. 현재의 중앙공원 자리인 충청병영에는 병마절도사 영문이 남아 있고 고려시대의 건물인 망선루가 제일교회에서 옮겨와 복원돼있는 정도로 읍성을 포함한 목조문화재가 거의 파괴되었다. 해미읍성은 성곽과 관아 등이 잘 보존돼 있다. 해마다 해미읍성에서는 읍성축제가 열린다. 병마절도사의 행차, 저자거리 재현, 죄인 압송 등의 이벤트가 볼거리를 제공한다.

만약 청주읍성도 그대로 남아있더라면 이런 축제의 개최는 물론 관광지나 영화촬영장으로 각광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역사에서는 '만약'이라는 가설은 성립하지 않는다. 이에 읍성의 멸실을 한탄만 하고 있을 것이 아니라 부분적이라도 청주읍성의 재현을 시도해 봐야 할 것이다. 다행히 조선후기에 만든 청주읍성도가 전해지고 있으므로 청주시의 의지와 시민의 문화운동이 힘을 합친다면 부분적이나마 읍성의 복원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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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署 '병영문화 개선' 시대흐름 역행

청주청원경찰서 방범순찰대원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다.운동장으로 사용하던 경찰서 내 1천21㎡ 규모의 테니스장이 사라질 위기에 놓였기 때문이다.청원서는 예산 19억원을 들여 내달 3일부터 오는 4월(예정)까지 민원실 이전 공사에 들어간다.민원인의 원활한 업무처리 등을 위해서다.문제는 민원실 신축 예정 부지인 테니스장을 방범대원들이 체육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이다.현재 청원서에서 생활하고 있는 의무경찰은 모두 123명(방순대 107명·타격대 16명).복무 특성상 활동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는 대원들에게 작은 공간이지만 체육활동을 할 수 있는 중요 시설이다.하지만 민원실이 이전할 경우 체육활동 공간이 사라지게 되고 청원서는 청주지역 3개 경찰서 중 외부 운동공간이 없는 유일한 경찰서가 된다.일각에서는 문화·체육 시설을 확충하는 등 병영문화를 개선하려는 시대적 흐름에 역행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경찰 관계자는 "경찰서에 체력 단련실이 있긴 하지만 민원실 이전 공사가 시작되면 외부 운동장은 이용이 어려울 것"이라며 "외부 운동장 등에서 주 1회 정도 대원들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운동장을 이용할 때 마다 외부기관의 협조를 얻어 사용한다는 얘기다.이 때문에 일부 대원들은 평일 체육활동 등 자유로운 체육활동을 할 수 없다며 불만을 토로했다.한 방순대원은 "복무 중이기 때문에 활동이 제약될 수밖에 없는데 체육공간까지 사라진다니 아쉬울 따름"이라며 "경찰서 외부 운동장을 사용한다는 얘기가 있지만 운동을 자유롭게 할 수 없지 않겠느냐"고 토로했다. / 박태성기자 ts_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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