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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4.02.15 14:18:09
  • 최종수정2024.02.15 14:18:09

김문근

단양군수

기부 천사들이 세밑 한파를 녹였다.

지난 연말 "단양읍의 한 마을에서 농사를 짓는 일흔세 살 신모 씨가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1천만원을 기탁하겠다는 의사를 밝혀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100만 원이 아니라 1천만 원이라니 쉽게 믿기지 않아 귀를 의심했다.

담당 직원은 평소와 마찬가지로 신씨에게 군수실에서 성금을 전달하는 장면을 사진으로 담아 보도자료를 내어 미담으로 홍보하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그러나 신씨는 "익명으로 성금을 전달하고 사진 촬영은 절대로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완곡히 표출했다는 추가 보고가 올라왔다.

고마운 얘기지만, 그분이 어떤 분인지 오히려 더 궁금하기도 하고 이런 사례가 지역 사회의 본보기가 될 것 같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 집을 찾았다.

그분은 한쪽 눈이 보이지 않는 시각장애인이었고 부인은 소아마비로 걸음걸이가 불편한 장애인 부부였다.

신씨 부부는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20여 년 전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국가의 도움을 받았다. 넉넉지 않은 형편에 1남 3녀의 자식이 학교에 다닐 수 있었던 것은 단양장학회로부터 받은 장학금 덕분이다. 어느 해에는 단양군에서 고추 육모를 제공받아 농사를 지었다. 늘 고마운 마음에 언젠가는 갚아야 하겠다는 마음을 굳혀 왔다"고 가슴 아픈 기억을 풀어놨다.

이들은 "다행히 지난해 농사가 그런대로 잘 되어 성금을 내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1천만 원에서 조금 모자라서 추석 때 9명의 우리 손자 손녀에게 용돈도 안 주고 악착같이 모은 돈이다. 그간 우리 가족이 관(官)에서 받은 도움에 비하면 크게 모자라는 금액이다. 그래서 이름을 감추려 했다"는 심경을 토로했다.

가슴 시큼한 말씀에 목이 메어온다. 정부 보조금을 받는 대부분 사람들은 이를 당연한 권리로 생각하거나 남의 떡이 더 커 보이기 쉬운데 이분은 수십 년간이나 고마움을 잊지 않고 보답하겠다는 마음을 키워오셨다니, 나도 모르게 울컥해지고 목이 멨다.

새해 들어서도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는 이어졌다.

지난달 22일 중년 여성 한 분이 군청 주민복지과를 찾아왔다. 평범하다면 평범한 이 여성은 "힘들게 사는 분들에게 써 달라"면서 현금이 든 봉투를 건넸다. 그는 모자를 눌러쓰고 흰 마스크 차림이라 눈만 간신히 보이는 모습이었다.

담당 직원은 인적 사항과 전화번호를 알려달라고 했으나 그는 "봉투 안에 편지가 있으니 읽어보면 안다"는 말을 남기고 나가는 그분을 뒤따라가 재차 성함만이라도 알려달라고 했지만 "알려고 하면 더는 기부를 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긴 채 종종걸음으로 사라졌다.

봉투 안에는 5만 원권 66장, 1만 원권 35장이 들어 있었다.

도시에서 살다 단양에 정착하게 됐다는 이분이 또박또박 써 내려간 편지에는 "30년 전 연고도 없는 단양에 빈손으로 이사와 살고 있는데 군민 여러분이 많이 도와주셔서 자리 잡고 살 수 있게 되었다. 작은 행복과 웃음도 이웃분들이 만들어 주셨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한다는 마음이지만 게으름과 어리석음으로 베풀 줄 모르고 살아왔다. 단양이라는 따뜻한 울타리에 인심 좋은 여러분에게 받은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루 1만원씩 모아서 작은 기부를 하려고 한다. 어려우신 분들에게 힘이 되면 좋겠다"고 쓰여 있었다.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어려운 이웃을 돕는 사람이 생각보다 훨씬 많다.

순박한 단양 인심이 새해 벽두부터 감동이란 두 글자와 함께 줄을 잇고 있다. 건강한 지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된다.

군민 모두가 본받을 일이지만 특히 군수인 내가 먼저 본받아야 할 일이라고 다짐하며 가슴이 먹먹한 두 사연을 가슴에 새겨둔다.

새해를 맞았다. 이유야 어떻든 이들이 바라는 건 모두가 사람답게 사는 가슴 따뜻한 세상이다. 왼손이 알건 모르건 어려운 이웃과 온정을 나누는 분들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나만 사는 게 아니라 함께 살고자 희생, 헌신, 협동으로 수마를 이겨낸 '시루섬 정신'이 오늘날에도 맥을 잇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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