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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주읍성 발굴조사, '충주읍성 위상' 확인

고려시대 희귀 장식벽돌 출토, 남한서 출토사례 거의 없어

  • 웹출고시간2023.09.07 13:31:29
  • 최종수정2023.09.07 13:31:29

국원문화재연구원은 충주읍성 발굴조사에서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대형기와 건물지가 다수 확인됐다고 7일 밝혔다.(사진은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서조문 전돌)

[충북일보] 국원문화재연구원은 충주읍성 발굴조사에서 남한에서는 출토사례를 찾기 힘든 서조문 전돌이 출토됐다고 7일 밝혔다.

국원문화재연구원은 충주시의 충주읍성 복원·정비 계획에 따라 지난해 충주사고 위치고증을 위한 정밀발굴조사를 진행해 최근 조사 결과를 내놨다.

충주읍성 내 중요 건물지로 추정되는 곳에서는 관(官)자명 기와, 연화문과 귀면문 막새 등 통일신라부터 조선시대에 이르는 대형기와 건물지가 다수 확인됐다.

특히 이번 발굴조사에서 출토된 서조문 전돌(벽돌)은 충주읍성 건물의 위상이 높고 매우 화려했음을 보여주는 중요유물이라는 게 중원문화재연구원의 설명이다.

충주읍성 터에서 출토된 서조문 전돌은 고려 전기 때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가로 53㎝, 세로 30㎝, 두께 6㎝ 크기의 점토로 만든 벽돌로 두 마리의 새가 꽃가지를 물고 있는 형상이 새겨졌다.

서조문 벽에 새겨진 새는 어지러운 세상에 평화를 가져다주는 '난조'로 보인다는 게 문화재연구원의 추론이다.

학계에서는 봉황이나 앵무새로 볼 수 있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호준 연구원은 "서조문 전돌은 고려시대 장식용 벽돌로 서양 건물의 대리석 조각으로 보면 된다"며 "고려 시대 충주의 위상이 당시 개성(수도)과 다르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이라고 평가했다.

이번 발굴조사에서는 읍성 내 1호와 2호 건물지가 충주사고이거나 실록각, 관아지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충주사고는 조선시대 국가의 중요 책자를 보관하던 곳이다. 충주사고에는 고려사, 태조실록~명종실록을 보관했다.

하지만 1592년 임진왜란 발발 20여일 만에 충주사고에 보관됐던 실록은 불에 탔다.

문화재연구원은 대형 건물지와 하층 유구 조성 시기를 판단하기 위한 추가 발굴조사를 진행하고 학술 세미나도 열 계획이다.

충주시는 충주읍성 복원과 정비 계획에 따라 2017년부터 발굴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충주 / 윤호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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