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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07.04.04 07:42:41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요즘 한미FTA문제로 국론이 분열되고 있는 듯한 모습을 보면서 국회비준이 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산을 또 넘어야 하느냐는 걱정을 하게 된다. 사실 한국은 미국이라는 초강대국가와 무역경쟁을 하기에는 너무 빈약한 나라이다. 그러니 농민 노동자는 물론이고 참여정부의 핵심인사들까지 나서서 반대를 하는 것도 수긍이 간다. 돌이켜보면 역사는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서 그 운명이 바뀌었다.

만약 고구려가 삼국통일을 했다면 우리 민족이 한반도의 구석으로 쫓겨나 옹색한 삶을 살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고구려는 신라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부강한 나라였다. 그런데도 신라에게 점령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은 순전히 개방과 폐쇄의 갈림길에서 쇄국을 선택하였기 때문이다. 만약에 고구려가 당나라와 대립하는 대신 개방을 선택했더라면 삼국통일의 주인공은 고구려로 바뀌었을 것이다.

당연히 우리 민족의 무대는 만주벌판이었을 것이고, 대륙의 패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였을 것이다. 비슷한 역사는 조선시대로 내려오면서도 수없이 많았다. 조선은 일본에 비해서 문물이 발달한 선진국이었는데도 임진왜란 당시 참패했다. 그 이유는 일본이 조선보다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적극적이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일본은 조총이란 신무기로 무장을 한 반면 조선은 여전히 창이나 활로 싸움을 하는 군사력 차이로 나타나게 된다.

이를 분기점으로 해서 수천 년 동안 유지되어온 조선의 우세가 역전당하고 말았다. 만약에 조선이 일본보다 먼저 서양문물을 받아들였다면 조총이란 신무기도 먼저 보유했을 터이고, 일본정벌에 나섰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아쉬운 역사는 계속된다. 만약에 일본이 명치유신으로 천지를 개벽하고 있을 때 대원군이 쇄국만 고집하지 않았더라도 한일합방이란 치욕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1960년대에 경제에 눈을 뜬 이후 피나는 노력을 했지만 아직도 GNP는 일본의 절반에도 못 미치고, 세계를 상대로 무역을 해서 벌어들인 외화의 대부분을 일본에 빼앗기고 있다. 그 격차가 줄어들어야 할 텐데, 그럴 가능성은 고사하고 오히려 심화되고 있으니 답답한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은 비단 경제에 국한된 문제도 아니다. 한반도의 허리가 두 동강이 나고, 동족 간에 전쟁을 치른 것으로도 부족해서 원수처럼 살고 있다.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일이 다 대원군의 쇄국이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만약에 라는 질문은 박정희에게도 돌아간다. 만약에 박정희가 한일국교정상화를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만약에 박정희가 외자를 도입해서 경제개발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남북격차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북한은 우리보다 잘 살았는데 오늘날처럼 변한 것은 순전히 개방이냐 폐쇄냐의 차이였다. 박정희가 일본·서독·월남·중동 에서 외화를 벌어들여 경제개발을 할 때 김일성은 자립갱생을 외쳤다. 쌀이 없으면 보리를 먹고, 기름이 없으면 석탄을 때라는 식이었다.

그렇게 살아온 40년 세월이 북한은 여전히 최빈국으로 남아 세계를 향해 구걸을 하게 만들었고, 북한보다도 못살던 남한은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하여 북한을 돕는 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린 지금도 유사한 질문을 받고 있다. 만약에 한미FTA비준을 거부한다면 어떻게 될까? 만약에 한미FTA협정을 맺는데 성공한다면 어떻게 변할까?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성공을 보장할 수는 없다. 개방이든 폐쇄든 위험은 따르게 마련이지만 개방도 하지 않은 나라가 성공한 역사는 없다. 자원이라고는 인력뿐이 없는 우리가 먹고 살 수 있는 방법은 무역이니 FTA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이다. 뒤쫓아 오는 중국을 따돌리고, 일본을 따라잡기 위해서도 FTA는 어쩔 수 없다. 천만다행인 것은 일본보다 먼저 한미FTA를 타결한 것이고, 일본보다 먼저 개방을 한 첫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최 종 웅 / 논설위원·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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