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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06.03 21:44:35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함길도 토호 이시애(李施愛·?~1467)가 세조의 정책에 불만을 품고 1467년 난을 일으켰다.이를 평정한 인물이 남이(南怡·1441∼1468)다. 그는 대장 자격으로 토벌군을 진두지휘, 반란군을 진압했다. 그 결과, 적개공신 1등에 책록됐다.

남이는 귀로에 백두산에 올라 그 유명한 북정가(北征歌)을 짓는다. '백두산 돌은 칼을 갈아 다 없애고( 白頭山石磨刀盡) / 두만강 물은 말을 먹여 없어졌네( 豆滿江波飮馬無) / 사나이 스무살에 나라를 평정 못한다면( 男兒二十未平國) / 훗날 그 누가 대장부라 이르리요(後世誰稱大丈夫)'.

남이의 할머니는 태종의 4째딸인 정선공주(貞善公主·1404∼1424)이다. 따라서 세조와 남이는 고종사촌-외사촌 간이 된다. 남이는 이런 종실적 배경에 무인으로서의 실력까지 겸비하면서 초고속 승진을 거듭, 서른도 안된 나이에 병조판서에 올랐다. 남이를 무척 총애하던 세조가 1468년 사망했다.

한명회, 신숙주, 유자광 등 훈구파들의 견제와 공격이 시작됐다. 신흥무인세력의 선두주자였던 남이는 결국 지금의 국방장관(병조판서)에서 해직되어 청와대 경호실 고위직에 해당하는 '겸사복장(兼司복장)으로 밀려났다. 어느날 궁궐 당직을 서는데 혜성이 그의 눈앞은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남이는 답답한 마음을 이렇게 읊었다. 연려실기술의 예종조 남이옥사 편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이때에 와서 예종이 새로이 왕위에 올랐는데, 때마침 하늘에 혜성이 나타났다. 남이는 대궐 안에서 숙직하다가 다른 사람과 말하기를, "혜성은 곧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로운 것을 배치하는 형상이다" 하였다. 유자광은 평소에 남이의 재능과 명성과 벼슬이 자기 위에 있는 것을 시기했는데, 이날 또한 대궐에 들어와 숙직하다가 벽을 사이에 둔 가까운 곳에서 그 말을 엿들었다'.

국문이 시작됐다. 황당하면서 억울해 하는 남이의 모습이 예종실록에 묘사되 듯 그려져 있다. 이때 등장하는 '악비'라는 단어는 남송(南宋) 때의 무장을 일컫는다. 그는 충의가 매우 뛰어났던 무장으로 알려져 있다.

'임금이 유자광과 남이를 면질(面質)하도록 명하니, (…) 남이가 비로소 유자광이 와서 계달한 것을 알고 놀라, 머리로 땅을 치며 말하기를, "유자광이 본래 신에게 불평을 가졌기 때문에 신을 무고(誣告)한 것입니다. 신은 충의한 선비로 평생에 악비로 자처하였는데, 어찌 이러한 일이 있겠습니까"'

유자광은 남이가 계속 부인을 하자 서두에 언급한 북정가를 들고 나온다. '스무살에 나라를 평정 못한다면'(男兒二十未平國)을 '스무살에 나라를 얻지 못한다면'(男兒二十未得國)으로 바꿨다. 역모죄가 성립했다. 남이는 환열, 즉 능지처참에 처해졌고 그의 머리는 7일 동안 저잣거리에 효수됐다.

남이 어머니 역시 '국상 중에 고기를 먹었다'는 이상한 죄목으로 환열됐고, 남이 딸은 한명회 집에 종으로 팔려갔다. 살던 집은 '검증된 간신' 유자광에게 넘겨졌다. 남이는 우리고장 음성 출신으로, 감곡면 영산2리에 밭으로 변한 생가터가 남아 있다. 묘는 경기도 화성시 비봉리에 위치하고 있다. 남이 부인묘는 계속 음성에 위치하다 지난 1971년 화성 남편묘로 이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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