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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부일의 수필로 찾아가는 문화유산 - 내소사 가는 길

  • 웹출고시간2010.05.20 19:28:23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내소사 가는 길

위치 : 전북 부안군 산내면 석포리

내소사 전경.

지평선이 펼쳐진 만경, 김제평야 들판에 우뚝 솟은 바위 산, 능가산이 풍체를 자랑하고 서있다. 그 산 허리에 내소사가 안겨있다.

옛 부터 신선들이 사는 곳으로 숭배된 능가산, 봉래산, 소래산이 내소사를 둘러 위로는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고 아래로는 중생을 제도하라는 묵언의 진리 같은 산 이란다.

능가산은 그 곳에 이루기가 어렵 다는 이름이고 소래산은 다시 태어나기 위해 찾는다는 산으로 내소사가 능가산자락에서 안겨 법의 진리를 펼치는 곳이라 한다.

이는 산이 선인 선경의 세계를 찾아와 사람들에게 참된 마음으로 소생 하여 돌아 갈 수 있게 한다는 뜻이다.

또는 아침에 깨어날 때 육신이 먼저 깨어나는가, 아니면 정신이 깨어나는 가 청정자연이 설법 하는 산경의 가람 이란다.

이 선경에 초입으로 들어가면 전어 굽는 냄새가 살생을 금지하는 불가의 교리 앞에 찾아온 마음이 편치 않다.

◇ 일주문과 당상나무

내소사 초입에 위치한 당산나무.

상가를 지나 일주문 앞에 오르면 등치 큰 할머니 당산나무가 구백여년의 수령을 자랑하며 서있다.

그 나무에 민속 신앙에서나 볼 수 있는 새끼줄을 두르고 앞에 상돌을 만들어 내소사의 스님과 주민들이 해마다 함께 정월보름날 제를 지낸다한다. 내소사 스님들이 제물을 준비하고 독경을 하며 마을 사람들과 당산제를 지낸다. 이는 민속신앙과 우리 불교가 접목되었기 때문이다.

해방 전까지는 당산나무에 짚으로 새끼를 꼬아 옷을 입었다. 마을과 마을 간에 줄다리기 시합을 한 밧줄로 감아 입혔으나 지금은 옷을 입히지 않고 인줄을 사용한다.

산사(山寺)에 들어가는 첫번째 문인 '일주문'. 본래 기둥을 일직선상에 세웠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말이다.

당산나무에서 오르면 일주문이 "능가산 내소사' 의 현판을 달고 서 있다.

일주문에 들어오던 길에서 조금 비틀어져 서 있다. 다른 사찰에서는 찾아 볼 수 없는 형태이다.

사 적기나 기록은 뚜렷하지는 않지만 내소사는 신라 27대 선덕 여왕 때 해구두타 스님께서 창건하고 소래사라 불렀다 한다. 그 후 고려를 거쳐 조선 인조 11년 청민 스님이 창건 하고 고종 때 관해 스님이 중건하였다 전한다.

일설에 의하면 당나라 소정방이 찾아 군 중 재를 지내고 시주를 하여 소정방이 찾아 왔다는 뜻으로 내소사라 불렀다는 전설이 전하여지나 근거는 없다.

◇ 천상을 이어 주는 전나무 길 그리고 단풍나무 길


내소사의 역사를 알아보고 일주문 안으로 오르면 600m의 전나무 숲길이 하늘을 찌를 듯이 높은 나무의 터널이 이어진다. 그 아래는 조리대가 군락을 이루고 흙과 자갈길로 이어지는데 흙 내음이 나는 오솔길로 전나무 향냄새가 마음과 몸을 닦아 준다.

이 길은 세속의 온갖 시름과 마음에 번뇌를 털고 부처의 세계로 가는 마음을 가다듬는데 필요한 만큼 걸어서 가라는 길이라는 말이 실감 났다.

새소리 바람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보니 키 큰 전나무에 가려 하늘이 보일 듯 하더니 전나무 길이 끝나고 벚나무 길이 짧게 이어지는 곳에 파란 하늘이 가을을 그리고 있다.


전나무 숲길이 끝나면 단풍나무 길이다. 오색찬란한 아름다운 단풍에 저절로 감탄되어 이곳이 무아지경 무릉도원이 아닌가 생각 되게 한다.

단풍을 길을 걷다 서쪽을 보니 잘 가꾼 잔디밭에 부도 밭이 있다. 흘러간 선사들의 비와 부도에 선문답을 생각하며 합장삼배를 해본다.

◇ 천왕문 그리고 토담

부도밭에서 도로 나와 단풍 잎 속에서 오르면 천왕문으로 그 좌우에 앙증맞고 야트막한 토담이 앞을 막는다.

담은 밖과 안을 단절 시키지만 내소사의 담은 그리 높지 않은 담으로 안 경내를 볼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예술이 있는 담으로 단절감보다는 중생을 끌어안은 따뜻한 느낌을 준다.

천왕문은 지국천왕, 증장천왕, 광목천왕, 다문천왕이 불법을 수호하고 중생을 지켜 준단다. 담의 관문 천왕문을 지나 경내로 들어가니 절 마당에 야트막한 축대와 계단이 이어지면서 조금씩 높아진다. 그 두 번째 계단에 950년 수령의 할아버지당산 나무를 만난다.

이 당산나무는 일주문 앞 할머니당산나무와 부부나무라고 전하여 진다.

보통 절에서 산신각이나 독성각, 칠성각 민간 신앙을 끌어 들였지만 그 고장의 민간 신앙인 나무를 끌어들인 곳은 보기 드물다.

여기서 한단을 오르면 우리나라 제일의 수백 년 묵은 보리수가 푸른 몸을 내놓는다.

◇ 제 멋대로 생긴 기둥 주추 봉래루

그 앞에는 제 멋대로 생긴 자연석 주추 돌 기둥을 올려 만든 늙은 누각이 서 있다. 높았다 낮았다한 일정치 않은 돌 위에 부분만 다듬어 기둥을 올렸는데 기둥도 돌의 크기 따라 짧았다 길었다한 덤 벅 기둥을 한 봉래루가 서있다.

봉래루 밑으로 머리를 숙여 오르면 대웅보전이다.

◇ 아름다운 전설, 아름다운 꽃살문이 대웅전


보물 제291호인 대웅보전은 조선중기의 다포 집으로 높은 자연석 축대 위에 세워진 전각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 단층 팔작지붕으로 배흘림기둥을 하고 있다.

대들보 앞뒤 기둥 위에 고포를 걸치고 그 위에 동자 형 대공을 세워 종량을 받치고 있는 특이 한 건물이다.

청민 선사가 화재로 잃은 대웅전을 중건하기 위해 고심에 빠져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계시가 있었던지 선우라는 시자에게 일주문 밖에 나가면 도편수가 오셔서 기다릴 테니 모셔오라 하였다. 일주문으로 가보니 웬 사람이 일주문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었다.

그를 모신 다음 날 도편수는 산에 가서 나무를 베어 오고 재목을 자르기 시작 했다. 그러나 도편수는 이상하게도 기둥을 키는 것도 석가래 다듬질도 않고 있었다.

그러더니 삼년의 세월을 나무란 나무는 모두 목침만한 크기로 토막을 내어 다듬기만 하였다.

선우는 도편수가 하는 일이 수상하여 골탕을 먹이려고 나무토막 하나를 몰래 감추었다.

그런 어느 날 깎기를 마친 도편수가 나무를 세는데 수십 번을 세고 또 세며 고개를 떨 구더니 눈물을 흘리는 것이다.

주지스님께 법당을 질 인연이 아니라면서 짐을 쌌다.

이에 선사가 말리면서 왜 지을 수 없느냐고 물으니 목재 하나가 없어져 지울 수 없다고 하였다.

이 말을 곁에서 듣고 있던 선우는 깜짝 놀라 감췄던 목침을 내놓고 용서를 빌었다. 청민선사의 사정으로 다시 법당을 짓기 시작 했으나 도편수는 부정한 목재는 쓸 수 없다면서 선우가 감춘 침목을 빼고 지었다.

그 때문에 지금도 내소사의 출목 한군데가 빠져 오늘까지 출목 없는 건물로 내려오고 있다 한다.

법당을 짓고 나니 또한 단청이 문제다.

선사가 단청으로 고심하고 있을 때 화공이 찾아 왔다. 자기가 법당의 단청을 하겠다면서 약속을 지켜 달라는 것이다.

단청 하는 100일 동안은 아무도 법당 안을 들여다보거나 들어와서는 안 된다는 약속 이다.

약속을 하고 화공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99일 될 때 선우는 이번에도 궁금해서 견 될 수가 없어. 그만에 들여다보고 말았다.

안에는 화공이 없고 황금 빛 날개를 가진 새 한 마리가 이리저리 날아 단이며 날개로 붓처럼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선우가 넋을 잃고 쳐다보는 순간 황금 새는 깜짝 놀란 듯 문 밖으로 날아가 버렸다. 그 후 그림을 다 그리지 못하고 내소사 법당 양쪽 중도리에 쌍으로 그려졌어야 할 용, 선녀 그림이 왼쪽만 그러져있고 오른쪽은 빈칸으로 남아 있다.

전하여 오는 설에 의하면 도편수는 호랑이, 화공은 관음보살의 화현이라고 한다.

또한 법당 안 불상 뒤에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백의관음보살좌상이 그려져 있는데 그림이 오래되어 관리에 만전을 기하여야 할 것 같다.

대웅보전 정면 3칸 여덟 짝 문살이 온통 연꽃과 국화꽃으로 수를 놓아 화사한 꽃밭을 이르고 있다. 채색 되었지만 비바람에 씻겨 나뭇결만 남아있는데 오히려 고풍 스로운 맛과 하나하나 새긴 조각과 어울려 우아해 보인다.

꽃무늬가 간살 위에 떠 있어 안에서 문을 보면 꽃무늬 그림자는 보이지 않고 마름모꼴 문살그림자가 비쳐든다. 이는 화려 하면서도 시끄럽지 않은 내소사의 정신을 보여 주는 것이라 하다.

◇ 필경 법화경과 고려 동종

보물 제277호 고려 동종

내소사에는 그밖에 보물들이 내려오는데 조선 태종 때 이씨 부인이 죽은 남편 유근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글자를 한자 쓰고 절을 하는 일자 일 배의 글을 써 공양한 보물 제278호인 법화경 절본 사본 7권이 전해진다.

법화경의 사본이 끝나자 죽은 남편이 나타나 여인의 머리카락을 만졌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경내 보종 각에 보물 제277호인 고려 동종이 걸려 있다.

이 동종은 1958년 청림 리에 사는 최씨 문종에서 제각을 세우려고 땅을 파다가 종이 발견 되었다고 한다.

발견 당시 이상하게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여러 사람들이 두들겨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종을 쳐서 소리나는 사람이 가져가기로 하였는데 내소사 스님이 치니 아름다운 종소리가 나서 내소사로 가져와 오늘에 이른다.

이 종은 고려 23대 고종 9년 주조된 것이다.

고려 후기 대표적인 종으로 조선 철종 때 내소사 보종 각으로 옮겨 지금도 보관사용하고 있다.

종위에는 여의주를 희롱하는 용에 종고가 달려있고 종 상대와 하대사이에 네 개의 유곽과 삼존 상이 주조되어 있다.

상하대 모두에 보상화 당초문으로 채워 상대 위에 여의주문과 입화를 장식 했다.

유곽안에는 연주문이 새겨진 네곳에 가로 세로 세 개씩 아홉 개의 종유를 주조 했다.

유곽과 유곽사이 삼존불이 양각되어 있는데 연화대 위에 선정 인을 한 본존불이 안치되고 좌우 원형 대 위에 합장을 한 보살들이 서있다.

이 삼존 상에 나부끼듯 몇 줄의 양각선이 새겨 있으며 그 위에 보개가 떠 날리고 유곽 아래는 연화문을 넣은 당좌가 장식되어 있다.

종은 높이 1.3m 직경 67Cm로 전형적인 전통 고려 후기의 종이다.

이 범종소리를 듣고파 기다리다, 앞을 보니 봉래산이 병풍처럼 펼쳐져 내소사를 금계가 알을 품듯이 서있다.

불가에서 즐탁동시 라는 말이 있다. 이는 어미 새가 알을 품어서 부화할 때가 되면 새끼가 껍질을 깨고 나오려하는 것을 "즐" 이라 한다. 알을 품고 기다리던 어미 새가 이를 느끼고 탁탁 쪼아 부화를 돕는다. 이를 탁이라 한다.

이는 불교의 근본교리이며 사상 인연의 선 불교적인 표현이다.

내소사는 구름속 선경이다. 인이 산에 오르면 선이요, 또한 무량광전 범종 소리는 하늘의 소리다. 내소사의 범종이 울린다. 여기에 마음을 합장 하니 경내가 온통 일승원음 하늘에 진리 주악이며 연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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