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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0.05.02 17:27:40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조혁연 대기자

신립이 임진왜란 탄금대 전투에서 패해 달천강에 투신할 때 함께 자살한 인물이 있었다. 신립의 종사관이었던 김여물(金汝山+勿·1548~1592)이다. 종사관은 장수를 보좌하는 장교로, 종6품에 해당한다.

김여물은 임란 직전 의주목사로 있었으나 '정철(鄭澈·1536~1593)의 사람'으로 몰려 파직, 의금부에 투옥돼 있었다. 정철은 이때 동인의 모함을 받고 막 실각된 시기였다. 정철은 동인의 영수인 이산해(당시 영의정)와 함께 광해군 책봉을 건의키로 했다. 이는 이산해의 계략이었다. 이 때 선조는 인빈김씨에게 빠져 있던터라 그녀의 소생인 신성군을 책봉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정철은 선조의 노여움을 샀고 같은 그 파장은 같은 당인 김여물에게도 미쳤다.

옥중의 김여물을 구해준 사람은 서애 유성룡이었다. 유성룡은 그가 무략에 뛰어난 것을 알고 자기 막중(幕中), 즉 참모로 쓰려고 했다. 그러자 도순변사로 임명된 신립(申砬)이 그의 재능과 인간 됨됨이를 알고 자기 종사관으로 임명, 함께 출전하게 된다.

'신립이 청하기를, "신이 일찍이 서로(西路)의 진영을 맡았을 적에 여물을 알았는데 재능과 용맹 뿐만이 아니라 충의의 인사였습니다. 신에게 소속시켜 먼저 가게 했으면 합니다" 하니, 상이 또 따랐다'. 선조수정실록에 나오는 내용이다.

그러나 두 사람은 충주 단월에 도착, 작전을 세우는 과정에서 큰 의견 차이를 보인다. 익히 알려진 대로 신립은 탄금대 개활지에 배수의 진을 칠 것을 고집한다. 난중잡록은 이때 신립이 "바다를 건너온 왜적은 빨리 걷지 못한다"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해 놓고 있다. 난중잡록은 의병장 조경남이 임진왜란을 일기형식으로 쓴 기록물로, 현재 전북유형문화재 제107호로 지정돼 있다.

이에 김여물은 "먼저 새재를 점령하여 지키는 것이 좋고, 그렇지 못하면 평지보다는 높은 언덕을 이용하여 왜적을 역습하는 것이 좋겠다"고 주장하나 채택되지 않았다. 장교가 장수를 이길 수는 없었다. 그러자 그는 탄금대 전투의 패배를 예감하고 아들 '류'와 나머지 가족에게 유언을 남긴다. 이 부분도 선조수정실록에 언급돼 있다.

'그러자 김여물은 종을 보내어 아들 김류에게 편지를 부치기를, "삼도(三道)의 군사를 징집하였으나 한 사람도 이르는 사람이 없다. 남아(男兒)가 나라를 위하여 죽는 것은 진실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나라의 수치를 씻지 못하고 웅대한 뜻이 재가 될 뿐이니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할 뿐이다"라고 하였다'.

그의 예감대로 패배, 그것도 처절한 패배가 현실로 다가왔다. '적병이 이미 아군의 뒤로 나와 천 겹으로 포위하자 장병들이 놀라고 두려워하여 모두 달천의 물로 뛰어들었다. 왜적이 풀을 쳐내듯 칼을 휘둘러 마구 찍어대니 흘린 피가 들판에 가득 찼고 물에 뜬 시체가 강을 메웠다'. 난중잡록의 탄금대 전투 기록이다.

신립의 종사관 김여물은 45살 나이에 죽었다. 그의 묘는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에 있다. 신도비의 글은 병자호란 척화파로 유명한 김상헌(1570~1652)이 썼다. 신도비는 죽은 이의 일생을 적은 비를 말한다. '무릇 충신·열사가 나라를 섬김은 국난을 당했을 때 목숨을 바쳐 仁을 이루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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