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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25.02.16 14:23:24
  • 최종수정2025.02.16 14:23:24

김산옥

괴산문인협회 회원

대한민국이 요동을 친다. TV에서는 모든 사건 사고가 축소되었고 온통 정치 문제로 도배가 되었다. 국민들이 두 패로 나누어 탄핵을 저지하려는 者와 통과를 시키려는 者로 사회가 혼란스럽다.

나는 잠들기 전 습관이 되어버린 TV를 켜놓은 채 잠을 청한다. 유튜브에서는 좋아하는 음악을 청취하고 있었다. 그때 TV 영상에 대통령이 계엄령 담화 발표를 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 했다. '계엄령 이라니! 이 평화시기에?' 잠시 지켜보다가 사실임을 알고 경악을 하였다. 무섭다. 남편에게 갔다. 그이도 아직 잠들기 전으로 관심 있는 분야의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었다. 나는 계엄령이 발표되었는데 이게 뭔 상황이냐고 물었다. 남편은 무슨 소리냐고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가짜 뉴스를 들었냐고 하며 믿지를 않는다. 당연하다.

계엄령 시대를 직접 경험한 세대다. 밤늦게 돌아다니는 스타일이 아니어서 일상생활에 큰 지장은 없었다. 단지 바로 밑에 남동생이 10대 후반으로 귀가하기 전이었다.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우려와는 달리 동생은 이틀이 지난 후 무사히 귀가하였다. 거리를 걷다가 영문도 모르고 체포되어 파출소로 연행되었고 경찰이 온몸을 수색했단다.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기에 풀려난 것이다. 그때 신체에 문신이 새겨져 있었다면 동생은 삼청대로 바로 직행이었다. 그 시절은 그랬다. 문신이 있거나 평소 눈에 거슬렸던 이웃이나 적(敵)이었던 사람을 신고하고 노숙자 등 부랑자들은 이유도 모른 채 그렇게 사라졌다. 국가의 암흑기였다.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날 때는 커다란 변동이 생긴다. 고려 말에는 중국의 원명 교체기와 일본의 남북조시대로 지속적인 침략과 권문세족의 사치와 무능으로 고려는 혼돈의 시대였다. 이때 최영 장군과 이성계가 정세를 바라보는 시각이 첨예하게 달랐다. 이성계는 요동을 정벌하라는 왕명을 거역하고 '위화도 회군'을 결정했다. 이 결정은 이탈리아 고대인 줄리어스 시저의 '루비콘강을 건너다'와 유사하다. 칼이 외부가 아닌 내부로 돌려 역성혁명에 성공한 쿠데타로 고려의 마지막 충신이었던 최영을 죽이고 32대 우왕을 폐위한 이성계는 왕좌에 올라 조선을 건국했다. 그러나 가족사는 비극으로 점철되었다. 두 번의 왕자의 난(亂)을 겪으며 사랑하는 아들이 죽는 것을 지켜보았다. 비극적인 삶으로 태조 이성계는 말년을 외롭고 쓸쓸하게 보냈다.

외국의 예도 권력의 암투는 차고 넘친다.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줄리어스 시저(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명언으로 유명하다. 그는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 시대의 정치가이며 무인이고 문인으로 '삼두정치'로 집권 체제의 한 사람이었다. 카이사르가 원정을 나가 북부 갈리아 (프랑스) 정복에 성공을 했다. 그의 계속된 성공은 정적인 품페이우스와 그를 지지하는 원로원 귀족에게 큰 위협이었고, 두려움이었다. 공화정 시대였기에 원로원은 카이사르에게 갈리아를 떠나 군대를 해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만약 명령을 따르지 않을 경우 반역자로 취급될 거라고 경고를 보낸다. 여기서 카이사르는 장고(長考)에 들어갔다. 그리고 내린 결론이 '루비콘강을 건너다'

루비콘강은 로마 본토를 구분하는 경계선이다. 강(江)을 도하하기 전 군사들은 무장을 해제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본국에 대한 도전이자 명백한 내란 행위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로마에 대한 충성을 다짐하는 의식의 일환이었다. 카이사르는 위험을 감지했다. 정치적 생존과 권력을 지킬 것이냐. 아니면 체포되어 굴욕을 겪을 것인가. 선택의 기로에 섰다. 그는 결정을 내린 후 무장한 채 강을 건너 내전에 성공을 하였다. 반대 세력의 우두머리였던 품페이우스는 로마를 탈출했고 공화정 원로원을 식물 정치인으로 만들었다. 이 사건은 로마 공화국의 역사에 커다란 전환점을 만든 사건으로 기록되었다. 비로소 삼두정치(三頭政治)는 막을 내리고 일인 종식 독재관이 되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출현이 시작되려는 시점에서 믿었던 친구에게 암살을 당했다. 이후 양자(養子)였던 옥타비아누스(아우구스투스 초대 황제)가 권력을 장악한 후 로마는 주변국을 속국으로 만들며 오랜 기간 번성을 누릴 수 있었다.

이런 역사적인 배경이 시사하듯 역사의 소용돌이에는 선택의 순간이 닥치면 신중을 기해야한다. '도 아니면 모'가 되기 때문이다. 정치가, 기업, 개인도 마찬 가지다. 매 순간이 선택이다. 잘못된 선택을 하면 불행의 늪에 빠지고, 잘한 선택은 기쁨으로 충만된다. 소소한 것부터 시작해서 끝이 없는 선택의 연속이다. 삶이.

어수선한 사회 분위기가 잘 마무리되어 모두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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