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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연극인생 자부심"

문길곤 극단 청사 대표 ·청주예총 회장 인터뷰
지난 9일, 연극배우 40년 기념연극 '당신은 나에게' 막 내려
'꼬마신랑' 유치원생에서 극단 '청사' 대표까지
평생 직업은 '연극배우', "행복전도사 될 것"

  • 웹출고시간2022.12.12 20:36:19
  • 최종수정2022.12.12 20:36:19

문길곤 극단 청사 대표

ⓒ 성지연기자
[충북일보] "어느 누구에게도 연극을 사랑하는 마음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다."

올해로 연극인 인생 40주년을 맞은 문길곤(59) 극단 청사 대표는 지역 연극계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유치원생 시절 처음 올라가 본 무대가 그의 인생 길을 정하게 됐다고 한다.

문 대표는 "유치원생들을 데리고 한 꼬마신랑 각시 공연을 통해 당시 국민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운동회 축하무대에 올랐다"며 "그때 부터 연극인의 길을 걷게 된 것 같다"고 담담히 회고했다.

대학도 연극영화과를 전공하기 위해 준비를 했지만 당시 부모님의 반대로 해당 학과 진학이 불가능했다.

하지만 연극에 대한 열망은 쉬이 꺾이지 않았다.

대학을 입학하는 첫 날 그는 '연극반 동아리'에 가입을 했다고 한다. 그 순간부터 대학 연극반 생활이 학교 생활의 주가 됐다.

군대를 다녀와서도, 학교를 졸업해서도 그의 길은 '연극인'이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극단 '상당극회'에 입단했고, 청주예총에서 운영하던 '따비 예술단'의 전속 단원이자 연출가로 활동했다.

지역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던 그에게 1991년 극단 청사 상임 연출가로의 요청이 들어왔고, 1년 뒤 그는 극단 대표를 맡게 됐다.

세월이 유수와 같이 흘렀다는 그는 지난 40년을 돌아보면 '정말 한눈 안 팔고 연극 인생을 살았다'고 설명했다.

문 대표는 극단에서 매년 2~5개의 작품을 쉬지 않고 이어왔다. 작품 제작, 기획 때로는 연출까지 지금까지 약 100여 작품을 했다고 한다.

문 대표가 배우로서 올랐던 첫 작품은 '표리'다.

스무살 대학에서 시작한 작품으로 '할아버지 역할'을 맡았다.

그는 "당시에는 20살이 70대 역할을 맡는 것이 부담스럽고 이해가 어려웠다"며 "지금 생각해보면 나이를 떠나 노인 역할을 할 때가 연기의 스펙트럼을 넓히는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됐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극단 청사에서 올렸던 '그것은 목탁구멍 속 작은 어둠이었습니다'와 극단 청사의 자매극단인 극단 늘품의 '용의 승천' 작품에서 영조 역할을 했을 때다. 두 작품 모두 배우로서 최우수 연기상을 받게 한 작품이기도 하다.

연극 연출가로서는 악극 '울어라 열풍아'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청주예술의전당이 문을 연 1995년, 공연장 오픈무대로 '악극'을 선택했다. 악극에 대한 향수를 지역민들에게 전하고 싶었다고 한다.

청주의 연극배우들이 총 출연하는 극단 청사만의 창작극 '울어라 열풍아'와 '카추샤는 흘러간다' '울어라 박달재야' 를 3연작으로 연출했다.

그는 "남녀노소 모두 관람할 수 있고, 웃음과 해학, 눈물이 있는 작품을 연출한 것이 가장 마음에 남아있다"며 "내년에는 좀 더 많은 도민들이 공연을 볼 수 있도록 준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40년간 쉬지 않고 달려온 문 대표의 동력은 '연극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 이었다.

그는 "저 스스로에게 '야 길곤아 너 대단하다. 연극을 정말 사랑하는 것 같아'라고 이야기한다"며 "연극할 때만 되면 마음이 불타오르고, 노력한 만큼 관객들의 반응을 보면서 '내가 연극하길 잘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작품만 들어가면 몸도 아프지를 않다"며 "한편으로는 자식으로서 어려운 길을 걷는 것에 대한 부모님에게 책임감, 가족을 위한 책임감도 강했던 것 같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예술인이 힘들다고 또 그중에서 연극이 힘들다고 하는 사람들 속에서 어렵다는 것을 안보이기 위해 더 열심히 한 것 같기도 하다"고 천천히 되짚었다.

이제는 그의 뒤를 함께 걷고 있는 후배들도 많다.

그는 "극단 대표를 30년 전에 맡으면서, 우리 극단 배우들도 직업인으로서 어느 직장에 다니는 사람 못지 않게 '떳떳한 배우'라는 닉네임을 주고 싶었다. 지금도 그 꿈을 높은 것은 아니지만 혼자만이 해결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어서 후배들에게 그 것이 가장 미안하다"며 "배우를 꿈꾸는 사람들도 많이 늘어났고, 그만큼 쉽지 않겠지만 좀 더 멀리 보고 자기 연기에 대한 폭을 넓혀 청주와 충북을 대표하는 연기자들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본인의 평생 직업으로 '배우'라고 당당히 이야기 한다.

문 대표는 "극단에서 대표를 물려주고 난 이후에도 무대로 세워달라고 이야기한다"며 "지금은 예총 회장으로 활동하면서도 '예술활동을 하는 회장님'으로 남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의 또 다른 인생 목표는 '행복 강의 전도사'다.

그는 "'나이별로 행복하게 사는 법'이라는 제목도 정했다. 그간 살아온 굴곡 많은 인생에서 배운 것과 연극을 접목해 1시간의 행복강의를 들으면 마음이 행복해지는 '행복강의 전도사'가 되고 싶다"고 말하며 미소지었다.

/ 성지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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