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기사

이 기사는 0번 공유됐고 0개의 댓글이 있습니다.

위대한 유산, 효(孝) - 진천 선촌서당 김봉곤 훈장

孝를 가르치는 것이 敎

  • 웹출고시간2015.09.25 09:32:11
  • 최종수정2015.09.25 09:32:11
[충북일보] 서둘러 출발했지만, 진천 선촌(仙촌)서당으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 방향을 잘못 잡은 탓에 약속시간보다 20여분 늦어졌다. 초조한 마음에 비포장도로를 거침없이 내달렸다. 나무숲이 무성한 모퉁이를 도는 순간, 풍경은 모든 사물이 일순 정지한 것처럼 고요했다.

왼쪽부터 3번째 인물이 김봉곤 훈장

진중하고 격조 있는 기와집, 장작을 가지런히 얹어 놓은 담장, 높다란 대문 앞 모래톱이 반짝이는 강변, 그리고 조선시대의 용모로 천천히 비질을 하는 청년의 모습이 타임머신을 타고 온 듯 신비롭다.

"훈장님, 손님께서 내방하셨습니다."

사람을 대하는 공손의 예가 지극했다. 대청마루 위로 널찍이 올려 쓴 편액 '청사안심(淸思安心)'의 문자 향에 마음의 속된 먼지가 씻기는 듯하다.

"맑은 생각, 편안한 생각을 갖게 되면 신선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의미를 풀어주며 반갑게 손을 맞이하는 이는 김봉곤(49)훈장이다. 청학동 댕기머리 소년이 20년 도심에서의 삶을 꾸리다 다시 진천 평산리로 내려와 신촌서당을 열었다. 이곳에서 김봉곤 훈장은 사람으로서의 예와 도리(道理)를 가르치고 있었다.

◇ 만덕(萬德)의 근원, 효(孝)

"공자가 증자에게 이르기를 '신체발부 수지부모(身體髮膚 受之父母)'라고 했어요. 사람의 몸과 머리털, 피부는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감히 이것을 손상시키지 아니함이 효의 시작이라고 했습니다."

진천 선촌서당 김봉곤 훈장

김봉곤 훈장은 19살, 청학동에서 처음 세상으로 나왔다. 전주에서 한학을 배우다 서울로 상경했다. 그곳에서 판소리를 배웠다. 중앙국립극장 창극단에서 6년 동안 18편의 공연도 했으며 91년에는 극단도 만들어 연극에 몸담은 적도 있고, 한국문화학교에서 배우 유호성, 권해효와 연기공부를 하기도 했다.

내년이면 지천명(知天命)에 이르는 김 훈장은 실제로 평생 머리와 수염을 깎지 않았다. 청학동이 아닌, 도심에 살면서 긴 머리와 수염이 불편하지 않았을까.

"청학동에 살 때는 불편한 줄 몰랐지요. 하지만 저와는 생활방식이 다른 이들과 섞여 살다보니 편치 않았고, 깎아 보면 어떨까 망설이기도 했어요. 하지만 결국 그렇게 하지 못했습니다. 근본적으로 효(孝)에 어긋난 행위라는 무의식이 있었지요. 마음에서 허락을 하지 않은 겁니다."

92년 대학로에서 연기를 하면서 MBC 황인용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프로그램'세상사는 이야기'에 출연하며 일약 유명인사가 되었다. 93년 손석희 아나운서의 보조MC를 맡으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시절을 보냈다. 그 뒤 거의 20여 년간 쉬지 않고 영화와 연극, 방송활동을 이어왔다.

디지털화되었던 도시의 삶은 결국 몸에 익숙한 아날로그적 청학동의 삶을 다시 불렀다. 그렇게 결심을 하고 터를 잡은 곳이 지금의 진천 평산리 선촌서당이었다.

◇ 효를 가르치는, 교(敎)

바람이 좋은 툇마루에서 듣는 훈장님의 말씀은'뎅겅뎅겅'풍경소리에 묻혀 운치를 더했다. 소 울음이 오후의 정적을 가르고, 이따금 닭과 오리의 소리가 한가함을 더했다. 김봉곤 훈장은 요즈음 교육을'유아독존(幼兒獨尊)'이라고 정의한다. 석가가 태어났을 때 외쳤다고 하는 탄생게(誕生偈)로'하늘 위와 하늘 아래에서 오직 내가 홀로 존귀하다.'라는 말을 뒤집어'아이들만이 홀로 존귀하다'라며 역설적으로 말한다. 그만큼 아이들의 교육이 잘못됐음을 지적한 것이다.

진천 선촌서당 김봉곤 훈장

"지금은 가정을 자식이 주도하고 학교는 학생들이 이끌고 있습니다. 본말이 전도됐어요.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서구의'YOU 문화'가 만든 폐해입니다.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있죠. 유치원 원장님이나 학교 교장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경어를 쓰고 허리 굽혀 인사를 합니다. 이것은'YOU 문화'를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김 훈장은 이런 현상을 과거'조선시대로의 회귀'라고 표현했다.

"양반집 자녀에게 하인들이 높여 인사하고 허리 굽히는 것과 다를 바가 없어요. 아무런 의식이 없는 무조건적인 존중은 질서를 무너뜨립니다. 교(敎)라는 글자를 풀어쓰면 효(孝)도 효와 칠 복(攵)자가 결합됐어요. 결국 효(孝)를 가르치는(攵)것이 교(敎)인 것이죠. 교육(敎育)이란 말에서 교(敎)자를 빼면 기를 육(育)자만 남지요. 짐승에게는 교육이란 말이 아닌, 비육(肥育)이나 사육(飼育)이라고 표현합니다. 교육은 오직 사람에게만 해당됩니다. 인공적인 행위인 교(敎)를 통해 짐승과 구별되는 사람을 만드는 것입니다. 효를 제대로 이해하고 가르치면 올바른 교육이 되는 것입니다."

결국 다시 효(孝)다.

◇ 보편성과 공공성, 예(禮)

며칠 후면 추석이다. 김봉곤 훈장이 보낸 어린 시절, 지리산 청학동의 추석은 어떠했을까.

"청학동의 추석은 무엇보다 맛있는 것을 먹어서 좋았고, 쉬어서 행복했고, 때때옷을 입어서 기다려졌지요. 가난했으니까요. 놀이도 참 많았어요. 줄다리기, 자치기, 못 치기, 땅따먹기, 새총 쏘기, 널뛰기 등 모두 혼자가 아닌 함께 어울리는 놀이문화였습니다."

진천 선촌서당 김봉곤 훈장

김 훈장이 기억하는 청학동의 추석은 따뜻하다. 가난한 삶이었지만 그대로 추석은'혼자가 아닌, 조상과 마을사람이 어울리는 대동의 문화'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그는"역사란 이어받고 이어주는 것입니다. 선조들이 있었기에 내가 있는 것입니다. 그 고마운 마음을 예로 표현하는 것이 차례입니다. 그래서 추석은 효의 결집이며 예를 실천하는 문화의 장이었습니다. 어른들의 모습을 통해 아이들은 그런 문화를 자연스럽게 배우며 예를 익혔습니다."라고 말한다.

청학동의 아이들이 뛰어다니면 어른들은'글 빠진다.'며 말렸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혼 빠진다.'며 피했다. 청학동 마을에 등산객이 찾아오면 부시맨처럼 달아났다. 답답하다고 여겼던 조상이 물려준 청학동의 오랜 아날로그적 삶은 이제 우리의 전통문화로 남아 가르침을 준다.

진천 선촌서당에서는 방학을 이용해'예와 효'를 바탕으로 옛 선비정신과 전통예절교육을 한다. 이곳 너른 시골학교에서 투호놀이, 물놀이, 미꾸라지잡기, 고구마 구워먹기, 감자 캐기 등 다양한 체험과 어우러진 사람의 도리(道理)를 자연 속에서 익히다보면 심심할 틈이 없다.

아이들이 교육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현관에 있는 부모님 신발부터 바르게 놓는다. 억지로 시켜서 될 일이 아니다. 스스로 깨달아 바르게 행동하게 만들어 주는 곳이 선촌(仙村)서당이다.

/ 윤기윤기자

△ 김봉곤 훈장의 선촌서당

충북 진천군 문백면 평산리 69-6 043)534-2738
배너
배너
배너

랭킹 뉴스

Hot & Why & Only

실시간 댓글

배너
배너

매거진 in 충북

thumbnail 308*171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

[충북일보] 정효진 충북도체육회 사무처장은 "충북체육회는 더 멀리보고 높게 생각해야한다"고 조언했다. 다음달 퇴임을 앞둔 정 사무처장은 26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지방체육회의 현실을 직시해보면 자율성을 바탕으로 민선체제가 출범했지만 인적자원도 부족하고 재정·재산 등 물적자원은 더욱 빈약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완전한 체육자치 구현을 통해 재정자립기반을 확충하고 공공체육시설의 운영권을 확보하는 등의 노력이 수반되어야한다는 것이 정 사무처장의 복안이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학교운동부의 위기에 대한 대비도 강조했다. 정 사무처장은 "학교운동부의 감소는 선수양성의 문제만 아니라 은퇴선수의 취업문제와도 관련되어 스포츠 생태계가 흔들릴 수 있음으로 대학운동부, 일반 실업팀도 확대 방안을 찾아 스포츠생태계 선순환 구조를 정착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선 행사성 등 현장업무는 회원종목단체에서 치르고 체육회는 도민들을 위해 필요한 시책이나 건강프로그램을 개발하는 등의 정책 지향적인 조직이 되어야한다는 것이다. 임기 동안의 성과로는 △조직정비 △재정자립 기반 마련 △전국체전 성적 향상 등을 꼽았다. 홍보팀을 새로 설치해 홍보부문을 강화했고 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