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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웹출고시간2015.08.03 13:47:13
  • 최종수정2015.11.01 15:57:37

임미옥

작가

부쩍 시간의 흐름이 빠르게 느껴진다. 오늘같이 고연히 마음이 조급해지는 날은 산을 찾는다. 복잡한 도시의 일상을 벗어나 산행을 하다 보면 아날로그 같은 세상을 만난다. 천천히 흐르는 풍경과 느림의 미학이 있는 곳, 광속으로 내닫는 시대의 변두리에서 이방인처럼 주눅이 들곤 하는 내게, 산은 언제 찾아와도 평안을 준다.

촐촐거리는 계곡물소리가 땀을 식히고 가란다. 물이 소를 이룬 가장자리 큰 바위에 앉으니, 자연이 내안으로 들어온다. 세상과 동떨어진 별천지다. 긴긴 여름햇살이 나뭇가지사이를 비집고 너름 바위 위로 쏟아진다. 시간이 정지한 듯, 고요와 하나가 되었다. 그때, 웅덩이 건너편 바위벽에 시선이 머물렀다. 민달팽이 두 마리다.

손가락만한 민달팽이 한 놈이 또 다른 놈을 향하여 천천히 기어간다. 제 살던 집도 벗어 던진 채 살구 색 살을 길게 드러내고 기어가는 모습이 자못 진지하다. 신방을 차리러 가는가 보라고 동행한 이가 말했다. '저 흘레의 자세가 아름다운 것은 덮어준다는 그 동작 때문 아닐까.' '복효근' 님의 '덮어준다는 것' 이란 시 한 구절이 생각났다. 두 녀석 간격이 두 자는 되니 기는 속도로 보아 아직 상거가 멀다.

그들의 비밀현장을 떠나 걷는 내내 궁금했다. 아니, 놈들의 흘레장면이 궁금했다. 정말 치렀을까? 그리움을 향한 몸짓처럼 기어가는 모습이 지극도 하더니만, 어디로부터 왔을까. 달빛을 타고 지루한 여름날을 견디며 느릿느릿 다가가 한숨 끝에 얻어진 긴 포옹이려니, 덮어도 감춰지지 않는 부끄러움이어도 달콤한 신방이었기를….

한 화가가 알렉산더대왕의 초상화를 그리라는 명을 받고 고민에 빠졌다. 왕의 이마엔 추한 흉터가 있어서다. 화가는 왕의 흉터를 그대로 화폭에 담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흉터를 그리지 않는다면 그 초상화는 진실한 것이 되지 못하니 어찌 고민되지 않겠나. 화가는, 왕이 이마에 손을 대고 쉬고 있는 것으로 처리하여 초상화를 완성했다. 타인의 흉터를 보셨는가? 그렇다면 가려줄 방법을 먼저 생각해야하리.

덮어서 위대한 일에 쓰임 받은 사람이야기가 성경에 있다. 요셉은 정혼한 여인과 동침한 적이 없는데 그녀의 임신사실을 알게 됐다. 유대풍습에선 그 일이 드러나면 마리아는 돌에 맞아 죽어 마땅한 사건이었다. 요셉은 마리아와의 관계를 가만히 덮고자 생각한다. 후에 마리아가 성령으로 임신됐다는 계시를 듣고 기뻐하며 아내로 맞아드렸지만, 절교까지 생각한걸 보면 계시를 듣기까지 그의 고뇌가 짐작된다.

덮는다는 말이 좋다. 덮는 다는 건 상대방에게 맡긴 손에 흐르는, 눈물같이 부드럽고 성스러운 일이다. 덮어주는 일은 생산이다. 수치를 덮어주면 사람을 앞으로 나가게 하지만 드러내는 일은 사람을 주저앉힌다. 아무리 덮는다 한들 위에서 보면 덮은 사람도 덮인 사람도 부끄러운 것투성이다. 그러할지라도, 드러내기 싫은 것들을 안고 살아가는 실수가 많은 사람들끼리 서로 덮어주는 일은 아름다움이다.

청년요셉이 분노와, 배신감을 넘어 덮어주는 인품이 아니었다면, 어찌 예수아버지라는 영광을 얻었으리. 허물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나. 남의 허물을 덮어주기 보다 드러내기를 좋아하진 않았는가· 공동체 안에서도 이웃사이에서도 정치판도, 세상은 온통 드러내는데 초점을 맞춘 듯, 투명을 가장하여 낱낱이 파헤치고자 한다. 그러나 진실도 덮어야할 것이 많다. 진실이라 해서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드러내서 누군가에게 부끄럽고 아픈 진실은 거짓만도 못하다. 허물을 덮어 준다는 건 사랑이다. 남의 허물을 계속 말하는 진실은 날카로운 못과 같을 뿐, 사랑도 정의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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