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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운동계의 '3만' 정순만을 아시나요

이승만*박용만 등과 함께 생전 '3만'으로 불려
안중근과 거사논의*헤이그 특사에 특별자금도
충북대 박걸순교수, 6년 노력 사료 집대성 '출간'

  • 웹출고시간2013.04.08 18:23:04
  • 최종수정2013.08.04 00:44:01
이승만·박용만과 함께 독립운동계의 '3만'으로 불렸던 독립운동가 정순만(鄭淳萬, 1873~1911)의 생애와 활동에 관한 연구논문과 자료가 처음으로 집대성돼 출간됐다.

충북대학교 사학과 박걸순 교수가 국내외 지역 자료수집과 분석 등 6년여의 노력 끝에 '독립운동계의 '3만' 정순만' 자료집을 최근 경인문화사 이름으로 발간했다.

670여쪽 방대한 분량의 이번 책은 사진·논문·자료편 등 3부로 구성돼 있다. 특히 이중 일제의 비밀문서는 최초로 공개되는 것이어서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또 선생의 아들 정양필과 미주지역 독립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독립운동가로 포상된 며느리 이화숙에 대한 자료도 첨부돼 있어, 사료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정순만 연보

정순만은 충북 청원군 옥산면 덕촌리 하동정씨 집성촌에서 출생하여 독립협회, 상동청년회 등에서 간부를 역임하고 을사오적 암살 기도 등 한말 민족운동을 주도했다.

이후 일제의 탄압으로 더 이상 국내에서의 민족운동이 불가능하자, 1906년 봄 이상설·이동휘 등 동지들과 함께 망명길에 나서 북간도 용정에 터를 잡았다. 여기에서 그는 이상설 등과 북간도 민족교육의 요람인 서전서숙을 개설하고 동포 자제들의 교육활동에 온 힘을 쏟았다.

1907년 4월, 헤이그 특사 파견 소식을 들은 그는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블라디보스토크로 달려갔다. 특사 사절단의 정사인 진천 출신 이상설은 선생과 국내에서부터 호형호제하면서 망명의 길을 같이 나선 동지였고, 부사로 선임된 이준 또한 상동청년회에서 함께 활동하다가 투옥된 동지이기도 하였다.

그 후 선생은 일제의 탄압으로 연변에서의 활동을 마감하고 연해주로 옮겨 '해조신문'과 '대동공보'의 기자 겸 주필로서 한인의 계몽을 위해 크게 활약하였다.

특히 1909년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처단 의거 때에는 계획 단계부터 참여하여 일제로부터 배후 인물로 지목 당하기도 했다.

밀정으로부터 정순만의 살해 소식을 탐지하여 보고한 일제 비밀문서이다. '鄭淳萬 殺害'(선)라는 표현이 보인다.

일제의 비밀문서에 의하면 그는 연해주 한인사회에서 이범윤·이갑·최봉준과 함께 유력한 파(派)의 수장(首長)으로서, '정순만파'를 이루고 있다고 파악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인물이었다.

그러나 1910년, 그가 오발 사고로 블라디보스토크 민회장 양성춘을 쏴 죽이는 불상사가 발생하였다.

그는 그 대가로 1년여의 옥고를 치르고 나와 민족운동의 재기를 도모하다가 양성춘의 형과 미망인에게 처참한 복수를 당하여 파란만장한 일생을 마감하고 이역만리에서 고혼이 되고 말았다.

하동정씨 문중과 정순만선생기념사업회(가칭)는 관련 출판기념회를 11일 오전 11시 30분 선생의 고향인 옥산면 덕촌리 문절공 영당 앞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책과 관련된 문의는 박걸순 교수(☎ 261-3591, 010-9743-2346)에게 하면 된다.

/ 조혁연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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